신문사에서 한 남자를 찾는다. 세상에 항의하며 크리스마스이브에 목숨을 끊겠다고 편지를 보낸 존 도우다. 사연이 기사로 나간 뒤 온 도시가 그에게 관심을 쏟는다. 문제는 그런 남자…
신문사에서 한 남자를 찾는다. 세상에 항의하며 크리스마스이브에 목숨을 끊겠다고 편지를 보낸 존 도우다. 사연이 기사로 나간 뒤 온 도시가 그에게 관심을 쏟는다. 문제는 그런 남자가 없다는 것이다. 편지를 쓴 사람은 기자 앤 미첼이다. 신문사는 기사를 철회하는 대신, 기사 속 인물을 연기해 줄 사람을 구한다.
프랭크 카프라의 존 도우를 만나다는 처음부터 거짓말의 작성자를 공개한다. 관객이 기다리는 것은 사기꾼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이 아니다. 없는 사람에게 진짜 얼굴이 생기고, 그 얼굴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벌어질 일이다.
바버라 스탠윅이 연기하는 앤은 해고 통보를 받고 마지막 칼럼을 쓴다. 신문사를 새로 사들인 사주 아래에서 편집장은 발행 부수를 끌어올릴 자극적인 기사를 원한다. 앤의 평소 칼럼은 그 요구를 채우지 못한다. 그런데 실업자의 절망을 꾸며내자 사정이 달라진다. 자기 일자리를 잃은 기자가 가상의 실업자를 내세워 일자리를 되찾는다.
앤은 편지가 거짓이라고 편집장에게 털어놓으면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제 와서 조작을 인정하기보다 기사를 이어가는 것이 신문사에 이롭다고 설득한다. 독자의 관심을 끌수록 진실을 밝히기 어려워지는 거래다. 신문사가 존 도우를 찾기 시작한 순간, 잘못된 기사 한 편은 여러 사람이 함께 유지해야 하는 사업이 된다.
그 역할에 뽑힌 사람은 게리 쿠퍼의 롱 존 윌러비다. 팔을 다쳐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는 야구 투수로, 치료받을 돈이 필요하다. 앤에게 직장이 필요했던 것처럼 윌러비에게는 다시 공을 던질 기회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세상을 이끌겠다고 나선 사람은 아니다. 신문이 원하는 사연을 가진 척하는 일이 그에게는 생계를 위한 일자리다.
신문사가 이름을 붙이고 옷을 마련해주어도, 첫 방송에서 원고를 떨며 읽는 윌러비의 긴장까지 없애주지는 못한다. 잘 맞는 옷과 유명해진 이름 사이에 아직 그 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남자가 있다. 존 도우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일은 편지 한 통을 쓰는 것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간다.
앤은 윌러비의 라디오 연설문도 쓴다. 내용이 잘 풀리지 않자 도움을 얻는 곳은 아버지가 남긴 일기다. 세상과 이웃을 믿던 아버지의 생각이 가짜 인물의 입으로 나갈 말이 된다. 편지는 앤이 지어냈지만, 연설에 담은 이상까지 아무 근거 없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앤이 아끼는 기억과 돈을 벌려는 계획이 한 원고에 들어간다.
이 사정을 알고 윌러비의 첫 연설을 들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는 남이 써준 글을 떨리는 태도로 읽는다. 듣는 이들은 존 도우의 호소를 듣지만 관객은 그가 존 도우로 고용된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그가 말하는 이웃에 대한 관심까지 거짓이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말하는 사람의 신분을 의심하는 일과 그 말이 담은 바람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앤과 윌러비의 관계도 여기서 조금씩 달라진다. 자신이 준비한 문장을 다른 사람이 읽으면, 글쓴이는 잠시 듣는 사람이 된다. 앤에게는 특히 아버지의 생각이 낯선 남자의 목소리로 들려온다. 윌러비가 맡은 역할이 앤에게도 중요해지는 이유를 이 연설문에서 짚어볼 수 있다.
이때 영화는 윌러비가 자기 연설을 곧바로 믿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서두르지 않는다. 첫 방송 뒤 그는 동행하던 ‘대령’과 함께 달아난다. 좋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그 말에 자기 이름을 걸고 계속 살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 간격을 좁히는 것은 다음 연설문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들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윌러비가 만나는 버트 핸슨은 동네의 존 도우 클럽을 대표해 찾아온 사람이다. 그가 들려주는 것은 거대한 사회 개혁안이 아니다. 평소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이웃에게 먼저 인사를 해봤다는 이야기다. 시끄럽고 무뚝뚝하다고 여겼던 남자는 알고 보니 귀가 잘 들리지 않았고, 자신도 핸슨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큰 소리로 건넨 인사 한마디로 오래된 오해가 풀린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연설은 이런 사소한 일로 옮겨간다. 모두가 이미 사이좋게 지냈다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더 귀에 들어온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전에는 인사를 건네는 일도 쉽지 않다. 핸슨은 자신이 품었던 편견과 그 생각이 바뀐 계기를 말한다. 존 도우의 말이 생활 속에서 어떤 행동으로 바뀌었는지 윌러비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대답을 듣는 자리다.
앞서 마이크 앞에서는 윌러비가 말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 이제 핸슨이 말하고 윌러비가 듣는다. 사람들을 움직인 자신의 능력에 도취되는 것과, 그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가는 것은 다르다. 윌러비가 존 도우 역할을 계속하기로 마음을 바꾸는 데에는 이 만남이 있다.
존 도우라는 이름을 신문사가 만들었다고 해서 핸슨의 경험까지 신문사가 지어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웃에게 말을 건 사람에게는 자기 이야기가 생겼다. 관객도 그 경험을 들어버렸기 때문에, 조작을 밝히고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돌리자는 말만으로는 개운해지기 어렵다. 거짓말로 시작된 운동 안에 이미 거짓말이 아닌 일이 생겨 있다.
이 절에는 후반부 집회 장면의 전개가 포함됩니다.
신문사 사주 노턴은 그 운동을 자기 정치 기반으로 쓰려 한다. 에드워드 아놀드가 연기하는 노턴에게 이웃들의 결속은 지지 세력을 만들 기회다. 앤은 자기 일자리를, 윌러비는 치료비를 생각하며 시작한 일에서 노턴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본다. 존 도우를 앞세우는 사람들끼리도 얻으려는 것은 달랐다.
윌러비가 집회에서 노턴의 계획을 밝히려 할 때, 노턴은 마이크 선을 끊게 하고 그가 가짜라는 내용을 담은 인쇄물을 돌린다. 노턴은 이 운동을 회비를 가로채기 위한 사기극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실제로 맞는 말 하나를 섞는다. 윌러비는 편지를 쓴 존 도우가 아니다. 그 주장만큼은 사실이다. 다만 그를 존 도우로 내세운 신문사의 책임과 노턴의 계획을 설명할 기회가 막힌다. 사실 한 조각이 설명 전체를 가로막는 무기가 된다.
그동안 존 도우의 말을 널리 퍼뜨린 장치가 이번에는 존 도우의 말을 지운다. 수많은 사람 앞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발언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누가 마이크를 켜고 신문을 찍는지에 따라,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의 설명도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 영화가 신문사에서 시작해 집회장까지 커지는 동안 함께 커진 것은 영웅의 영향력만이 아니었다. 그를 말하게 하거나 침묵하게 할 사주의 힘도 커졌다.
윌러비에게 믿음을 준 핸슨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 장면이 더 괴롭다. 누가 옆집 사람인지 알아가는 데에는 직접 말을 걸고 대답을 듣는 시간이 필요했다. 거대한 집회에서는 그 짧은 대화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연설에 감동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들에게 자기 사정을 설명하기도 쉬워질 것 같지만, 영화는 말이 전달되는 조건까지 보게 한다.
존 도우가 가짜라는 것을 관객은 시작부터 안다. 그런데도 그가 만난 이웃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인다. 속임수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 관람이다. 누가 쓴 말인지, 누가 대신 말하는지,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를 나누어 보면 영화 속 희망을 쉽게 믿기도, 전부 비웃기도 어려워진다.
◆ 앤의 복직 협상 — 편지가 가짜임을 털어놓는 순간에도 앤은 기획을 이어가자고 설득한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 왜 신문사 안에서는 손해를 계산하는 문제가 되는지, 편집장과 앤의 대화에서 살펴볼 만하다.
◆ 연설문과 아버지의 일기 — 존 도우에게 말할 내용을 써주는 앤에게도 그 말의 출처가 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생각을 기억하고 첫 방송을 들으면, 원고를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고용 관계보다 복잡해진다.
◆ 버트 핸슨의 이웃 이야기 — 잘 알지 못하던 이웃과 친해진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들어보자. 윌러비가 설득하는 쪽에서 듣는 쪽으로 바뀌는 장면이다. 관객에게도 존 도우 클럽은 큰 규모의 운동에서 구체적인 사람들의 경험으로 가까워진다.
◆ 신문과 라디오가 있는 자리 — 존 도우를 유명하게 만든 기사가 실리는 곳, 그의 목소리가 방송되는 곳을 함께 보자. 얼굴을 내세우는 윌러비와 그 얼굴을 알릴 수단을 가진 사람 사이에는 권한의 차이가 있다.
◆ 시민 케인 (1941, 오슨 웰스) — 신문 재벌의 생애를 따라간다. 존 도우를 내세우는 노턴과 직접 주인공이 된 케인을 함께 보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어떤 인물로 믿게 하려는지가 권력의 문제와 이어진다.
◆ 그의 연인 프라이데이 (1940, 하워드 혹스) — 신문사를 떠나려는 기자를 편집장이 특종으로 붙잡는다. 기사를 잘 쓰는 재능과 사적인 욕심이 뒤엉키는 편집국의 코미디다. 앤이 직장을 되찾으려 벌이는 협상과 견주어볼 만하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