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가계부로 들여다본 청와대 이웃의 삶 | MovieLAB LAB

1979년 10월 26일, 안소연 감독의 할머니는 가족의 밥상에 올릴 조기와 밤을 샀다. 대통령이 피살된 날이기도 하다.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은 수십 년 동안 써온 할머니…

할머니의 가계부로 들여다본 청와대 이웃의 삶 | MovieLAB LAB

1979년 10월 26일, 안소연 감독의 할머니는 가족의 밥상에 올릴 조기와 밤을 샀다. 대통령이 피살된 날이기도 하다.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은 수십 년 동안 써온 할머니의 가계부에서 이 장보기 기록을 꺼낸다. 정치사의 큰 사건으로 기억하는 날짜에 한 가족이 먹고살았던 하루가 함께 적혀 있다. 청와대 건너편에서 오래 살아온 가족의 손녀가 찍은 이 영화는, 권력의 변화가 이웃의 생활에 어떻게 닿았는지 묻는다.

가까이 산다고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할머니의 증언에는 군부독재 시절 집을 수리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는 일조차 막혔던 경험이 나온다. 자고 일어나니 대문 앞에 경비 초소가 생겨 있기도 했다. 뒤에 청와대가 개방되자 감독은 할머니와 함께 처음 그 안으로 들어간다.

2016년 탄핵 집회와 그 뒤의 탄핵 반대 시위는 확성기의 소리로 집 안에 들어왔다. 감독은 소음을 측정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과정을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거리는 자신도 촛불을 들었던 곳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끝을 알 수 없는 소음 속에서 지내야 했다. 집 안과 집회 현장 양쪽을 경험한 사람에게 이 문제는 시위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의 선택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대통령 집무실이 옮겨간 뒤에도 영화는 가족이 되찾은 조용함에만 머물지 않는다. 감독은 전직 대통령의 양산 사저 주변 주민들을 찾아간다. 그곳에서도 평화롭던 동네가 시위 소음으로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자기 가족을 떠올렸다고 한다. 소리가 들리는 곳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웃의 고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정원에는 자식과 손주들이 태어났을 때 심은 나무들이 있다. 할머니가 그 나무들을 손질하는 모습이 영화의 끝에 놓인다. 감독은 집과 가족을 지켜온 할머니를 그 나무들과 함께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의 집에서, 여러 세대의 탄생을 기억하며 지금도 돌봄이 이어지는 집으로 시선이 옮겨가는 마무리다.

관련 작품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