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집에 사는 가족인데 방에 들어갈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배우였던 시절의 사진과 화려한 장식에 둘러싸여 있고, 다른 부부의 공간은 흰 벽과 그림으로 꾸며져 있다. 이…
한집에 사는 가족인데 방에 들어갈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배우였던 시절의 사진과 화려한 장식에 둘러싸여 있고, 다른 부부의 공간은 흰 벽과 그림으로 꾸며져 있다. 이 사람들은 같은 집을 물려받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집주인이 죽고 조사가 시작되면, 방을 구경하는 일이 그 안에 사는 사람을 의심하는 일로 바뀐다.
질 파켓-브레너가 연출한 비뚤어진 집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사립탐정 찰스는 옛 연인 소피아의 부탁으로 그녀의 할아버지가 죽은 경위를 조사한다. 저택에는 삼대가 함께 산다. 감독이 풀어야 할 과제도 여기서 생긴다. 소설에서 문장으로 구별되던 가족들을, 영화에서는 관객이 얼굴과 목소리와 생활공간으로 알아보아야 한다.
글렌 클로즈가 맡은 이디스는 죽은 가장의 첫 아내와 자매인 사이다. 소피아에게는 큰이모할머니이며 집안의 어른이다. 질리언 앤더슨의 마그다는 배우인 소피아의 어머니다. 같은 집의 여성들이라고 한데 묶기에는 세대도, 가족 안에서 살아온 자리도 다르다. 찰스는 그 차이를 거쳐 죽은 사람과 각자의 관계를 알아가야 한다.
클로즈는 출연을 결정할 때 글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에서는 가족 전체가 식탁에 둘러앉아 유언을 듣는 장면도 새로웠다고 했다. 배우 한 명의 비밀을 따로 따라가는 것과 여러 사람이 같은 소식을 함께 듣는 장면은 다르다. 누가 말을 하는 동안 누가 듣고 있는지, 같은 일에 서로 어떻게 반응하는지까지 한자리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배우의 얼굴을 알아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 얼굴이 집안에서 누구에게 말을 건네는지 따라가면 관계가 더 분명해진다. 가족의 어른에게 하는 말과 배우자에게 하는 말은 같은 정보라도 무게가 다르다. 범인을 맞히려고 모두를 같은 크기의 용의자로 세워두면, 이들이 함께 살아온 집안의 서열과 불편함을 놓치기 쉽다.
미술감독 사이먼 보울스는 가족마다 다른 생활공간을 만들었다. 마그다의 방에는 커튼과 타조 깃털, 배우 시절의 홍보사진을 놓았다. 로저와 아내의 공간에는 흰 벽과 영국 미술 작품을 택했다. 소품은 시대를 표시하는 장식이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이 무엇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지 알려준다.
마그다의 사진을 보면 집 안에도 배우로서의 시간이 남아 있다. 가족에게는 어머니나 아내인 사람이 자기 방에서는 여전히 다른 이름과 모습을 간직한다. 반면 흰 벽과 절제된 장식은 같은 저택 안에서도 다른 생활방식을 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족들이 같은 건물을 공유한다고 취향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화면에서 하나로 보이는 실내는 실제로 네 곳의 촬영 장소를 연결해 만들었다. 보울스는 문과 복도를 이용해 공간 사이의 연결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실제 건물 한 채의 지도가 아니라, 찰스가 이 가족을 찾아다닐 수 있는 하나의 저택이다. 서로 다른 방이 이어져야 사람들의 차이도 한집 안의 갈등이 된다.
문을 통과해 다른 방으로 들어갈 때 장식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아도 좋다. 누가 어떤 물건을 두었는지 알게 되면 그곳에서 오가는 대사도 다르게 들린다. 공간은 인물 소개가 끝난 뒤 감상하는 배경이 아니라, 처음 만난 가족을 알아가는 과정에 참여한다.
파켓-브레너가 소설을 고를 때 관심을 둔 것은 사건을 둘러싼 삶이기도 했다. 앞서 다크 플레이스를 만들 때는 미스터리와 함께 1980년대 미국 농촌의 위기, 그 안에 놓인 인물들에게 끌렸다고 설명했다. 자신에게 낯선 지역이어서 원작자 길리언 플린과 캔자스시티의 장소들을 돌아보기도 했다. 줄거리 밖의 생활을 알아보는 일이 각색의 준비가 된 셈이다.
그는 빽빽한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 좋아하는 대목도 포기해야 했고, 과거와 현재의 균형을 잡는 일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 장면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남기면 영화 전체의 진행은 다른 문제가 된다. 이 고민을 알고 비뚤어진 집을 보면, 가족의 이력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배우와 방의 차이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방식에 주목하게 된다.
배역이 정해지는 과정에도 현장의 판단이 끼어든다. 다크 플레이스에서 크리스티나 헨드릭스는 처음에는 다른 역할을 맡기로 했다가, 촬영 초반 패티 역의 배우가 빠지면서 그 역할을 제안받았다. 감독은 그녀가 지닌 무게감이 그 인물에게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감독의 선택은 소설 속 인물을 배우의 이름과 일대일로 연결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함께 일할 배우가 인물에게 무엇을 더할 수 있는지 판단하며 구체화된다.
비뚤어진 집에서도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각자의 공간을 오갈 때 소설의 가족이 영화 속 가족이 된다. 찰스가 새로 알게 되는 사실만큼, 이미 서로를 오래 알아온 사람들이 그 앞에서 어떻게 말하는지가 중요하다. 저택에 낯선 사람이 들어왔기에 평소의 관계도 새롭게 의심받는다.
추리소설의 영화화를 볼 때 결말을 얼마나 잘 감췄는지만 따지면 놓치는 재미가 있다. 여러 인물을 짧은 시간 안에 구별시키는 배우의 모습, 한집 안에 다른 삶을 배치하는 미술이 이 영화의 단서가 된다. 집을 구경하며 가족을 알아보고, 가족을 알아갈수록 그 집이 편안한 보금자리로만 보이지 않게 된다.
파켓-브레너의 각색을 살필 때도 이런 구체적인 선택에서 출발할 수 있다. 소설의 분량을 줄였다는 결과보다 어떤 정보가 얼굴과 방으로 옮겨갔는지 보는 것이다. 범인을 아직 모르는 관객과 원작을 읽은 관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 같은 소식을 듣는 가족 —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말하는 사람뿐 아니라 듣는 사람도 보자. 같은 사건이 집안의 각자에게 어떤 무게를 갖는지 비교할 수 있다. 대사 하나의 정보와 가족 사이의 반응을 함께 읽는 방법이다.
◆ 방에 남겨둔 자기 모습 — 사진과 장식이 많은 공간에서 어떤 물건이 눈에 들어오는지 살펴보자. 가족 안의 역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취향과 과거가 있다. 인물을 소개하는 말과 그가 머무는 방을 나란히 볼 수 있다.
◆ 문을 지나 바뀌는 분위기 — 방마다 달라지는 벽과 가구, 장식에 주목해보자. 서로 다른 생활이 하나의 저택으로 이어진다. 공간이 넓다는 사실보다 그 안에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지가 중요해진다.
◆ 집 안으로 들어온 옛 연인 — 찰스는 소피아와 과거가 있지만 그녀의 가족을 조사하는 입장이다. 가까웠던 사람의 부탁을 받아 낯선 집안을 들여다보는 처지다. 개인적인 관계와 조사에서 얻는 정보를 나누어 따라가면 그의 위치가 분명해진다.
◆ 부탁 하나만 들어줘 (2018) — 친구가 사라진 뒤 그 사람의 삶을 다시 알아가는 이야기다. 가까운 사이였다는 믿음과 실제로 알고 있는 정보 사이의 간격을 비교할 수 있다. 가족과 친밀함이 진실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 추락의 해부 (2023) — 남편이 집 밖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아내가 기소되고 부부의 관계가 법정에서 다뤄진다. 가족의 사적인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증거로 읽힌다. 한집에서 함께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다르게 설명될 수 있는지 보게 한다.
◆ 더 디너 (2017) — 두 형제와 배우자들이 저녁 식탁에 모여 자녀들이 저지른 일을 두고 대화한다. 가족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서로 다른 판단으로 이어진다. 함께 앉아 있다는 겉모습 아래 갈라지는 입장을 볼 수 있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