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지가 폐허다. 활주로에는 착륙했는데 마중 나오는 사람이 없다. 타임 배리어 너머의 공군 소령 앨리슨은 한 차례 비행하는 동안 먼 미래로 넘어왔다. 그가…
시험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지가 폐허다. 활주로에는 착륙했는데 마중 나오는 사람이 없다. 타임 배리어 너머의 공군 소령 앨리슨은 한 차례 비행하는 동안 먼 미래로 넘어왔다. 그가 도착한 해는 2024년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지나간 해지만, 1960년에 개봉한 이 영화에서는 돌아갈 방법조차 알 수 없는 미래다.
로버트 클라크가 연기하는 앨리슨은 우주 가까이까지 올라갔다가 지상으로 돌아온 시험비행사다. 낯선 곳에 불시착한 것이 아니어서 더 혼란스럽다. 자신이 떠났던 기지가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그가 아는 사람과 생활이 사라졌다. 에드가 G. 울머는 빠른 비행이 끝난 자리에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풍경을 놓는다.
앨리슨이 미래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그곳 사람들이 그를 믿어준다는 뜻이 아니다. 지하 요새로 끌려간 그는 첩자라는 의심을 받는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평소처럼 설명해도 통하지 않는다. 그가 속한 시대를 먼저 납득시키지 못하면, 신분을 밝히는 말도 증거가 되기 어렵다.
이 낯선 세계를 알려주는 사람은 요새 지도자의 손녀 트리렌이다. 트리렌은 말을 하지 못하며, 영화는 그에게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다고 설정한다. 앨리슨의 설명을 믿지 않는 이들 사이에서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다. 사진과 신문 자료를 보여주면서 지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전한다.
함께 말을 주고받기 어려운 두 사람이 자료를 펼쳐놓고 과거를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앨리슨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트리렌에게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의 역사다. 같은 사진을 보면서도 한쪽은 앞으로 닥칠 재난을 알고, 다른 쪽은 이미 벌어진 일을 설명한다.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이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다르게 만든다.
앨리슨이 듣는 재난의 설명은 핵실험의 영향이 쌓여 대기를 약화시키고, 우주 방사선에 노출된 지구에 질병이 퍼졌다는 것이다. 그 재난은 영화 속에서 1971년에 일어났다. 앨리슨은 멀쩡히 떠나온 세계의 일이 어디로 이어질 수 있는지 듣게 된다. 미래의 폐허를 이해하는 것이 자기 시대를 다시 보는 일이 된다.
요새 사람들은 지하에서 살아남았지만 병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트리렌과 과거에서 온 앨리슨은 이들에게 다음 세대의 가능성이다. 앨리슨 자신은 돌아갈 길을 찾는데, 요새의 지도자는 그가 남아주기를 바란다. 낯선 사람을 붙잡는 이유가 단지 의심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앨리슨에게 호감을 느끼는 트리렌의 마음도 그 기대와 함께 놓인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일에 요새 전체가 바라는 결과가 걸려 있다. 하지만 앨리슨을 한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만 생각하면 그가 떠나온 삶은 빠진다. 영화의 귀환 문제는 비행기를 다시 띄울 수 있느냐에서, 누구의 바람을 위해 그 비행기를 써야 하느냐로 커진다.
요새에는 앨리슨보다 먼저 시간의 장벽을 넘은 과학자들도 있다. 각기 다른 때에 출발해 같은 미래에 갇힌 사람들이다. 앨리슨의 비행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이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귀환은 한 사람만의 소원이 아니게 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바꾸고 싶은 일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목적지가 같아 보여도 같은 편이라고 믿기 어려워진다.
이 미래를 찍은 곳은 텍사스 달라스의 박람회장이었다. 1936년 행사를 위해 세운 큰 건물 안에 촬영용 공간을 만들었다. 미술을 맡은 에른스트 페그테가 삼각형을 반복하는 구조물을 들여놓았다.
울머가 원한 삼각형을 바탕으로 거대한 역피라미드 모양을 만들고, 위치를 바꾸어 복도와 열린 공간을 구성했다. 나무틀에 천을 씌운 구조물이었다. 크기가 커도 옮길 수 있게 만들어, 같은 모양을 여러 공간에서 쓰는 방법이었다.
큰 건물은 소리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주연이자 제작자인 클라크는 건물 안에서 말하면 동굴이나 깊은 우물처럼 울렸다고 회고했다. 제작진은 남는 공군 낙하산을 주변에 걸어 소리를 흡수했다. 화면을 넓게 쓸 수 있는 장소를 찾은 뒤에는 배우의 말을 녹음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일이 필요했다.
요새의 삼각형은 화면에 기묘한 무늬를 더하면서, 실제로 배우가 지나갈 통로를 나눈다. 앨리슨은 그 안에서 출구를 찾는다. 비행할 때에는 멀리까지 갈 수 있던 인물이 지하에서는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조차 다른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영화의 2024년을 이미 지나쳤다. 그래서 앨리슨이 미래라고 믿는 풍경을 보며 그와 다른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곤란함은 지금도 쉽게 이해된다. 돌아갈 곳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곳이 사라졌고, 새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른 삶을 기대한다. 타임 배리어 너머는 이 곤란함을 빈 기지와 지하 요새, 다시 타야 할 비행기 사이에 놓은 SF다.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을 때
앨리슨이 착륙한 뒤 찾게 되는 기지의 모습을 보자. 비행의 성공을 확인해줄 사람과 익숙한 생활이 사라진 장소다. 먼 곳에 도착했다는 설정과 달리, 알던 곳이 낯설어진다는 데서 불안이 시작된다.
사진으로 설명하는 역사
트리렌이 앨리슨에게 자료를 보여주는 장면을 따라가보자. 두 사람은 같은 재난을 한쪽은 과거로, 다른 쪽은 미래로 이해한다. 정보를 알려주는 장면이면서 서로를 이해할 방법을 찾는 시간이기도 하다.
앨리슨에게 남아달라는 이유
요새 사람들이 앨리슨을 대하는 태도가 무엇 때문에 달라지는지 보자. 그가 필요한 이유를 알게 되면 호의에도 구체적인 바람이 붙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앨리슨의 귀환을 각 인물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볼 만하다.
삼각형이 만든 길
요새 안에서 구조물이 사람을 가리거나 통로를 만드는 방식을 보자. 같은 모양이 반복되지만 인물이 서 있는 곳과 빛의 방향에 따라 공간의 인상이 달라진다. 앨리슨이 넓은 하늘을 날 때와 지하에서 이동할 때의 차이도 함께 볼 수 있다.
케이프 커내버럴의 몬스터 (1960)
외계인이 사람의 몸을 차지한 뒤 미사일 시험장 주변에서 활동한다. 발사가 거듭 실패하자 원인을 둘러싼 의심이 생긴다. 타임 배리어 너머가 시험비행 뒤의 낯선 세계를 보여준다면, 이 영화는 발사 현장 안에 숨어든 위협을 다룬다.
크롤링 핸드 (1963)
우주에서 온 생명체에 사로잡힌 비행사의 잘린 팔이 지상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주 비행이 끝난 뒤에도 위험이 남는다는 상상을 신체 공포로 옮긴다. 하늘에서 돌아온 사람이 이전과 같을 수 있는지 묻는 또 다른 이야기다.
유카 플랫의 야수 (1961)
핵실험장에 쫓겨 들어간 과학자가 방사선에 노출된 뒤 괴물로 변한다. 기술이 인간의 몸을 바꾸는 공포를 한 사람에게 집중한다. 지구 전체에 퍼진 재난을 설명하는 타임 배리어 너머와 변화의 규모를 달리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