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과 오래된 친구가 된다 | MovieLAB LAB

채미희(이상희)는 처음 만난 조성숙(홍승이)에게 자신이 오래전 헤어진 단짝이라고 주장한다. 성숙에게 미희는 낯선 사람이다. 그런데 그 말을 받아들이고 친구로 지내기 시작한다. 이…

처음 만난 사람과 오래된 친구가 된다 | MovieLAB LAB

채미희(이상희)는 처음 만난 조성숙(홍승이)에게 자신이 오래전 헤어진 단짝이라고 주장한다. 성숙에게 미희는 낯선 사람이다. 그런데 그 말을 받아들이고 친구로 지내기 시작한다. 이완민 감독의 〈누에치던 방〉에서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이 없는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에게나 털어놓을 법한 이야기를 나눈다.

미희는 10년 가까이 고시를 준비하며 거듭 실패한 사람이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여학생을 따라가다가 성숙을 만난다. 낯선 여학생에게 이끌리는 마음과 성숙에게 불쑥 다가가는 행동에는, 지금의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절박함이 있다. 감독은 어린 사람을 따라가는 미희에게서 자기 과거를 돌아볼 길을 찾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눈을 피하던 사람이 찾는 친구

미희는 평소 사람들의 눈을 잘 보지 못한다. 옷을 사러 갔을 때 계산을 서두르는 점원에게 화를 터뜨리기도 한다. 이상희는 상대에게 싫은 말을 전할 때 시선을 피하는 감독의 모습을 연기에 참고했다. 미희가 먼저 말을 걸고 관계를 붙잡으려 할수록, 그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익숙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도 함께 보인다.

성숙에게도 기억 속의 친구가 있다. 학창 시절 단짝 김유영(김새벽)이다. 어린 성숙은 이주영이 연기한다. 두 친구는 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알려주고, 운동장에서 해를 보며 존재에 관한 고민을 나눈다. 민망할 법한 모습부터 혼자 풀기 어려운 생각까지 같은 사람에게 보일 수 있었던 사이다. 미희의 불편한 시선을 알고 나면, 친구끼리 서로의 얼굴을 살피는 이런 사소한 행동이 더욱 부럽게 느껴진다.

그 시절의 성숙과 현재의 성숙을 연기한 두 배우는 촬영 전에 만나지 않았다. 이주영은 홍승이의 습관을 따라 하기보다, 함께 어린 시절을 연기할 김새벽과 시간을 보냈다. 감독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물으며, 답을 미리 정하지 않고 인물을 따라가려 했다고 말했다. 같은 얼굴과 버릇이 세월을 연결해주는 방식에만 기대지 않는 선택이다.

성숙이 찾아온 사람들을 모두 받아주기만 하는 인물로 남아야 할까. 촬영 중 홍승이는 그런 역할에 문제를 제기했다. 감독도 모든 것을 수용하는 인물로 성숙을 생각한 데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미희에게 필요한 친구가 생기는 일에는, 성숙에게 또 한 사람의 부담이 생길 가능성도 함께 있다. 오래된 친구라고 불러주는 것만으로 두 사람이 편해질 수는 없다.

기억은 같은 색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얼굴은 또 있다. 유영을 연기한 김새벽이 현재의 미희 앞에 나타난 여학생도 연기한다. 감독은 이들을 전혀 무관한 두 인물로 보아도, 유령 같은 존재로 보아도 된다고 했다. 같은 얼굴이 다시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같은 인물이라는 결론으로 갈 수는 없다. 성숙에게는 기억 속 친구의 얼굴이고, 미희에게는 지하철에서 따라가고 싶어진 낯선 얼굴이다.

영화의 색도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 감독은 현실의 채도를 낮추고, 과거와 비현실의 장면에는 누런 색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의 꿈과 지금 돌아보는 과거가 함께 들어가는 화면이다. 꿈에서 꽃을 던졌는데 주워 드는 것은 종이와 펜인 장면도 있다. 앞서 본 물건이 다음 순간에도 같은 물건일 것이라는 예상이 어긋난다. 기억을 따라가다가 꿈으로 건너가듯, 눈앞의 것을 사실 하나로 고정하기 어려운 영화의 감각이 이런 연결에서 드러난다.

과거를 함께 겪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 맺는 관계까지 거짓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미희가 성숙을 찾아오기 전에는 없었던 시간이 두 사람 사이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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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