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 한 그릇과 요시모토 바나나의 여름 | MovieLAB LAB

〈바다의 뚜껑〉의 마리(기쿠치 아키코)는 고향 바닷가 마을로 돌아와 빙수 가게를 연다. 관광객이 북적이는 곳은 아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맛을 내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놓을 수 …

빙수 한 그릇과 요시모토 바나나의 여름 | MovieLAB LAB

〈바다의 뚜껑〉의 마리(기쿠치 아키코)는 고향 바닷가 마을로 돌아와 빙수 가게를 연다. 관광객이 북적이는 곳은 아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맛을 내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놓을 수 있는 가게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감독 도요시마 게이스케는 가게를 꾸리고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을 차근차근 담는다. 시원한 빙수에 먼저 눈이 가다가, 이 작은 가게에서 일하는 두 여자가 궁금해진다.

마리와 함께 지내게 된 하지메(미네 아즈사)는 얼굴에 화상 흉터가 있다. 자신을 돌봐준 할머니를 떠나보낸 뒤 이 마을에 왔다. 두 여자는 가게 일을 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서로의 아픈 사연을 털어놓기 전에 함께할 일이 생긴다. 얼음을 갈고 손님을 기다리다 보면, 조심스럽게 대하던 사람과도 어느새 말이 편해진다.

좋아하는 가게를 직접 만드는 일

마리는 자기 몸으로 길이를 재고 페인트를 칠하며 가게를 꾸민다. 물건을 하나씩 놓아가는 모습을 보고 나면 작은 실내가 달리 보인다. 누군가 완성해놓은 예쁜 가게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주인이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빙수에도 마리의 취향이 담긴다. 부드럽게 간 얼음에 당밀 시럽을 얹고, 귤 음료도 내놓는다. 복잡한 메뉴로 손님을 놀라게 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정성껏 내놓는 가게다. 촬영 때 빙수도 기쿠치 아키코가 직접 만들었다. 함께 연기한 미네 아즈사는 얼음의 부드러운 질감과 시럽의 맛을 기억했다. 기쿠치가 갓 갈아준 빙수를 먹었던 경험이 그의 연기에도 남아 있다.

손님이 적은 마을에서 장사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가게를 열었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마리가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빙수를 만들고 어떤 물건으로 가게를 채울지,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자신의 몫이다. 직접 길이를 재고 페인트를 칠하는 모습에서는 그 기대가 먼저 보인다.

먼저 곁에서 일해보는 사이

하지메의 얼굴에 난 흉터는 금방 보이지만 그의 성격을 알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마리가 하는 일을 보고, 가게에서 자신이 할 일을 찾아가는 동안 하지메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드러난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흉터가 생긴 사연보다 지금 마리와 어떻게 지내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미네 아즈사는 하지메와 마리의 거리가 좁혀지는 과정을 미리 정해놓고 연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대를 보며 생기는 반응을 따라갔고, 표정과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느 장면에서 갑자기 친해졌다고 선언하기보다, 서로를 보는 눈길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마리가 하지메에게 물에 뜨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에도 두 배우의 실제 경험이 담겼다. 미네는 수영에 서툴렀고, 기쿠치가 힘을 빼고 뜨는 요령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함께 가게를 꾸리던 두 사람이 물가에서도 몸을 의지하며 가까워진다. 배우가 실제로 도움을 받는 모습이 겹치면서 그 친밀함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영화 속 여름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다가 아름다워서만은 아니다. 서툰 모습을 보여도 금세 평가받지 않는 시간이 있어서다. 가게 안에서든 물가에서든, 두 사람은 상대를 서둘러 바꾸려 하지 않는다. 함께 해볼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화는 이어진다.

돌아갈 곳에도 오늘의 생활이 필요하다

마리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예전처럼 지낼 수는 없다. 마을은 변했고, 자신도 이곳에서 할 일을 새로 찾아야 한다. 빙수 가게는 그 선택이다. 익숙한 장소로 돌아와 낯선 일을 시작하는 셈이다.

가게를 열고 나면 손님을 기다려야 하고, 곁에서 돕는 하지메와 일도 나눠야 한다. 혼자 구상하던 때에는 없던 일들이다. 계획한 대로만 되지는 않겠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을 만나고 하루를 보낸다. 영화는 마리의 귀향을 가게 개업이라는 목표에 도착한 순간에 끝내지 않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습까지 담는다.

〈바다의 뚜껑〉을 보고 나면 두 사람이 만들어주는 빙수를 먹어보고 싶어진다. 얼음과 시럽이 맛있어 보여서이기도 하고, 그 가게에 조금 더 머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손수 꾸민 실내와 천천히 친해진 두 사람을 보아온 덕분이다. 바닷가에서 잠깐 쉬는 기분으로 들어왔다가, 그곳의 여름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게 된다.

관련 작품

◆ 〈리브 원 데이〉 (2025, 아멜리 보낭) — 요리사의 귀향을 음식과 노래로 풀어낸다. 익숙한 장소에 돌아온 사람이 이제 그곳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부모의 일터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에서 출발해볼 수 있다. 같은 귀향이라도 두 영화의 속도와 활기는 사뭇 다르다.

◆ 〈소공녀〉 (2017, 전고운) — 생활이 어려워져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따라간다. 취향을 말로 소개하는 대신 먹고 마시고 머무는 선택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함께 볼 만하다. 방을 찾아다니는 미소와 가게를 만드는 마리의 차이도 흥미롭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