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도 우스운, 손으로 만든 흡혈귀 | MovieLAB LAB

〈부르달락: 흡혈귀〉에서 아버지 고르차(목소리: 에이드리언 보우)는 인형으로 등장한다. 감독이 손으로 만든 흡혈귀다. 인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영화는 태연하게 그를 한 가…

무섭고도 우스운, 손으로 만든 흡혈귀 | MovieLAB LAB

〈부르달락: 흡혈귀〉에서 아버지 고르차(목소리: 에이드리언 보우)는 인형으로 등장한다. 감독이 손으로 만든 흡혈귀다. 인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영화는 태연하게 그를 한 가족의 아버지로 소개한다. 과장된 생김새가 우습다가도, 저 존재가 집 안으로 들어와 가족을 대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진다. 이 영화의 괴물은 웃고 넘기기에도, 마냥 무서워하기에도 어딘가 이상하다.

그 집을 찾아온 프랑스 귀족 뒤르페 후작(케이시 모텟 클라인)은 길을 잃고 하룻밤 묵을 곳을 찾던 중이었다. 가족은 집을 떠난 아버지의 귀환을 기다린다. 고르차는 떠나기 전, 정해진 기한을 넘겨 돌아오면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때는 이미 흡혈귀가 됐을 것이라는 경고다. 기다리던 아버지가 돌아와도 반갑게 맞을 수 없는 사정부터 이 집의 공포가 시작된다.

아버지를 알아보는 아들의 방식

감독 에이드리언 보우는 조각을 배웠고, 직접 괴물의 모양을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제작 과정에서는 인형 흡혈귀를 관객이 믿을 수 있겠느냐는 걱정도 나왔다. 하지만 보우에게는 살아 있는 배우들 곁에 인형 하나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 그 어색한 조합을 숨길 생각이 없었고, 관객이 웃더라도 괜찮다고 여겼다.

영화 속 아들 예고르(그레구아르 콜랭)는 그 인형을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아버지가 흡혈귀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관객에게는 생김새부터 기괴한 존재인데, 아들에게는 여전히 뜻을 따라야 할 아버지다. 고르차가 얼마나 인간처럼 보이느냐보다 예고르가 그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더 섬뜩해지는 순간이다.

푸른빛의 숲에 서 있는 흰옷의 여성

귀족의 체면이 소용없는 집

후작은 이 집을 처음 보는 관객과 비슷한 처지다. 그렇다고 그의 판단을 믿고 따라가기는 어렵다. 가발과 레이스를 갖춘 차림에서는 격식이 느껴지지만, 상황을 헤쳐 나가는 솜씨까지 그만큼 세련된 것은 아니다. 낯선 집의 수상한 사정을 지켜보다가, 이 손님도 만만치 않게 허술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알렉세이 K. 톨스토이의 원작에서 귀족 화자는 용감하고 주변 사람들보다 영리한 인물이다. 보우와 공동각본가 아드리앵 부비에는 그를 허세 많고 겁도 많은 남자로 바꿨다. 가족의 딸 스덴카(아리안 라베드)와의 관계도 달라졌다. 보우는 후작이 흡혈귀보다 스덴카를 더 두려워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여자를 구하러 온 영웅의 연애와는 사뭇 다른 구상이다.

이처럼 후작의 허점을 드러내자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유가 생긴다. 관객은 그가 겁내는 것을 함께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허세에는 웃을 수 있다. 귀족 손님의 설명이 곧 이 가족에 관한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 기괴한 아버지를 따르는 아들 옆에 어설픈 외지인까지 있으니, 한 사람만 믿고 안심하기 어려운 집이다.

어두운 실내에서 팔을 든 여성

인형 흡혈귀에게 어울리는 무대

보우는 원작의 인물을 바꾸면서도 가발과 레이스, 숲속의 집이 있는 시대는 그대로 남겨뒀다. 흡혈귀 인형은 이런 차림의 배우들과 나란히 있을 때 더 잘 어울린다. 실제 사람과 똑같아야 한다는 기대가 느슨해지고, 의상과 몸짓을 구경하는 즐거움이 커진다. 괴물이 나오는 순간만 기다릴 필요가 없다. 후작의 차림부터 이미 눈길을 끈다.

스덴카를 연기하는 아리안 라베드는 무용 경험이 있는 배우다. 보우는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했으며, 조각상을 떠올리게 하는 스덴카의 기묘한 자세를 연기의 특징으로 꼽았다. 인형만 낯설게 생긴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배우도 평범한 사람처럼 서 있지 않는다. 인형과 사람의 차이를 숨기기보다, 양쪽 모두의 몸을 구경하게 만드는 영화다.

수퍼 16 필름을 고른 데에도 손으로 만든 괴물의 느낌을 살리려는 취향이 반영돼 있다. 보우는 디지털 카메라의 정밀한 이미지가 자신이 좋아하는 옛 판타지의 분위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인형과 의상, 연기와 필름이 같은 취향으로 모였다. 하나의 특수효과만 튀어나오는 대신 영화 전체가 괴물이 살 만한 세계가 된 것이다.

〈부르달락〉은 고르차가 인형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보는 재미가 줄지 않는 영화다. 오히려 배우들이 그 인형을 살아 있는 상대처럼 대하며 연기하는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온다. 만드는 사람의 장난기와 인물들이 겪는 공포가 한 화면에 함께 있다. 무서워하면서도 괴물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조금 더 구경하고 싶은 마음. 이 기묘한 흡혈귀가 돌려주는 즐거움이다.

관련 작품

◆ 〈인 패브릭: 레드 드레스〉 (2018, 피터 스트릭랜드) — 붉은 드레스와 백화점의 기이한 접객이 공포와 웃음을 함께 만든다. 낯선 말투와 몸짓, 물건의 질감이 이야기를 이끄는 영화다. 〈부르달락〉의 인형과 연극적인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면, 이곳의 옷과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기이함을 만날 수 있다.

◆ 〈다섯 번째 흉추〉 (2022, 박세영) — 버려진 매트리스에서 생겨난 존재가 사람들 사이를 옮겨 다닌다. 친숙한 물건에 낯선 생명이 붙었을 때의 감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흡혈귀의 계보를 이어 보기보다, 영화가 괴물의 몸을 어떻게 상상하는지 비교하며 보기 좋은 작품이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