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그린 그림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그런데 크리스는 화를 내기보다 기뻐한다. 누군가 자기 그림을 사줬다는 사실이 먼저 마음에 들어온다. 프리츠 랑의 〈스칼렛 …
자신이 그린 그림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그런데 크리스는 화를 내기보다 기뻐한다. 누군가 자기 그림을 사줬다는 사실이 먼저 마음에 들어온다. 프리츠 랑의 〈스칼렛 스트리트〉에서 남의 이름은 화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크리스는 그 이름 뒤에 계속 숨어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림의 주인이 스스로 거짓말에 가담하는 순간이다.
에드워드 G. 로빈슨이 연기하는 크리스토퍼 크로스는 출납원으로 25년을 일한 남자다. 회사는 기념 시계를 선물하며 그의 성실함을 치하한다. 하지만 크리스가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쉬는 날 그리는 그림이다. 집에서는 아내의 핀잔을 들으며 욕실에서 붓을 든다. 오랫동안 일을 잘한 사람이라는 평판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사이에 거리가 있다.
밤길에서 폭행당하던 키티를 도운 뒤, 크리스는 그와 술을 마신다. 조앤 베넷의 키티 앞에서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하는 말이 나온다. 크리스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말해볼 기회지만, 키티는 그 말을 듣고 돈 많은 화가를 떠올린다. 두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다른 인물을 보고 있다.
이 오해가 오래가는 데는 크리스가 그 만남을 반가워한다는 사정도 있다. 집에서는 그림 이야기를 꺼낼수록 작아진다. 키티 앞에서는 화가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스틸 속 크리스는 테이블 너머로 몸을 기울여 키티의 담배에 불을 붙인다. 젊은 여성과 마주 앉아 사소한 호의를 건네는 자세에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읽을 여지가 있다. 돈을 뜯길 사람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이 저녁의 기대가 남지 않는다.

키티에게는 애인 조니가 있다. 댄 듀레아가 연기하는 조니 역시 크리스가 부자라고 믿는다. 그림의 가격을 모르는 두 사람이 화가의 재산부터 짐작한 셈이다. 키티가 살면서 크리스가 그림도 그릴 수 있는 작업실을 구하자는 제안에는 각자의 이익이 겹친다. 크리스는 키티를 다시 만날 이유를 얻고, 키티와 조니는 그에게 돈을 요구할 구실을 얻는다.
그러다 크리스의 그림이 실제로 팔릴 길이 열린다. 조니가 내놓은 그림에 평론가가 관심을 보이자, 키티가 그린 것이라는 거짓말이 붙는다. 키티는 크리스에게 들었던 그림 이야기를 자기 말처럼 되풀이한다. 캔버스만 가져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림을 그렸다고 믿게 할 화가의 말까지 빌린다.
원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보는 관객에게는 키티의 설명이 달리 들린다. 크리스가 자기 그림을 이야기할 때는 제대로 듣는 사람이 드물었다. 키티의 입을 거치자 같은 말이 관심을 얻는다. 그림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림 앞에 서는 사람이 바뀌었다. 영화는 작품을 보는 일에 화가의 외모와 말솜씨, 그 사람을 둘러싼 기대가 얼마나 쉽게 끼어드는지 보여준다.
키티가 이 상황을 혼자 지휘하는 것은 아니다. 겁을 내는 키티 곁에서 조니가 거래를 밀어붙인다. 키티는 크리스의 마음을 이용하면서 자신도 조니에게 매달린다. 세 사람을 보고 있으면 누가 누구를 속이는지만으로는 관계를 다 설명할 수 없다. 키티가 내놓는 다정한 말과 그가 실제로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어긋난다. 크리스에게 필요한 말이 반드시 크리스에게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크리스는 그림이 팔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름을 되찾으려 들지 않는다. 그에게 그림은 오랫동안 혼자 하던 일이었다. 돈을 받고 팔 수 있다는 생각조차 낯설었던 사람이 마침내 인정받는다. 키티의 이름으로 거둔 성공이라도 자신의 그림이 만들어낸 성공이다. 이 기쁨을 가짜라고만 할 수는 없다.
바로 그래서 이 공모가 더 불편하다. 기뻐할 이유가 있으니 화낼 이유를 뒤로 미룰 수 있다. 그림의 주인을 바로잡으려면 키티가 자신에게 한 거짓말도 따져야 한다.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는 동안에는 그림도 계속 그릴 수 있고, 키티와의 관계도 이어갈 수 있다. 크리스가 받아들이는 것은 남의 서명 한 줄보다 크다.
그림과 이름을 나눠 갖는 일이 두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든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키티의 마음까지 나눠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오래 붙잡는 것은 이 차이다. 크리스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읽고 싶은 단서를 모으고, 관객은 그가 충분히 보지 못한 관계를 함께 본다. 그를 어리석다고 판단하고 나면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만,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지 알아버리면 쉽게 등을 돌리기 어렵다.

그림을 빼앗긴 화가가 자기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라면 바랄 것이 분명해진다. 〈스칼렛 스트리트〉의 크리스는 그보다 곤란한 바람을 품는다. 그림이 팔리는 것도, 키티를 계속 만나는 것도 놓치고 싶지 않다. 손해를 알게 된 뒤에도 붙들고 싶은 것이 남아 있다는 점이 이 인물을 오래 생각하게 한다.
키티와 조니의 속셈은 비교적 일찍 드러난다. 그다음부터는 비밀의 정답보다 크리스가 무엇을 모른 척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명백한 사기가 사기를 당하는 사람에게도 잠시 필요한 일이 되는 과정이다. 잘못된 관계를 끊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보다 그림 한 점이 팔렸다는 기쁨으로 보여준다.
◆ 성실한 직원과 화가 사이
회사에서 시계를 받는 크리스와 그림 이야기를 꺼내는 크리스를 함께 보자. 그가 이미 인정받은 일과 앞으로 인정받고 싶은 일이 다르다. 오래 일한 직장에서 얻은 칭찬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키티의 관심을 반가워하는 마음이 이해된다. 그 만남은 새로운 여성을 만난 일인 동시에 다른 모습의 자신을 내보일 기회다.
◆ 같은 그림을 설명하는 다른 입
크리스가 자기 그림을 설명할 때의 말이 키티의 입에서 어떻게 다시 나오는지 살펴볼 만하다. 관객은 그 말의 출처를 알지만 그림을 보러 온 사람은 모른다. 따라서 평론가의 반응을 지켜보는 일에도 긴장이 생긴다. 화가의 말처럼 들리는 것이 실제로는 남에게서 가져온 말이라는 사실이, 눈앞의 그림을 믿는 방식까지 흔든다.
◆ 키티가 다가가는 사람
키티가 크리스와 있을 때, 조니와 있을 때의 말과 거리를 비교해보자. 크리스에게 들려주는 다정함만 보면 관계를 잘못 읽을 수 있다. 두 남자 앞에서 키티가 원하는 것이 달라지는 만큼, 같은 말도 다른 일을 한다. 한쪽의 관심을 붙들어두려는 태도와 다른 쪽을 놓치기 싫어하는 태도가 어떻게 구별되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 그림이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크리스가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을 문제 삼지 않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자기 이름을 내세우는 일과 그림을 계속 그리는 일 중 어디에 더 마음을 쓰는지 보자. 그가 얻었다고 여기는 것과 실제로 양보하는 것을 나란히 놓으면 기쁜 반응을 마음 편히 따라가기 어려워진다.
◆ 창가의 여인 (1944) — 프리츠 랑 감독. 에드워드 G. 로빈슨과 조앤 베넷이 다시 만난다. 여기서는 화랑 창에 걸린 초상화를 보던 교수가 그림 속 모델과 마주친다. 그림을 통해 상상한 여성과 실제 여성을 만나는 일 사이의 차이를 이어 볼 수 있다.
◆ 이중 배상 (1944) — 빌리 와일더 감독. 보험을 팔러 간 남자가 고객과 위험한 관계를 맺는다.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가 인물의 결정을 바꾼다. 자기 욕심을 상대의 말에 기대어 정당화하는 과정을 비교할 만하다. 〈스칼렛 스트리트〉보다 한 해 앞선 작품이다.
◆ 선셋 대로 (1950) — 빌리 와일더 감독. 일자리가 필요한 시나리오 작가와 재기를 꿈꾸는 배우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글을 쓰게 해주는 관계가 작가의 생활까지 붙드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창작을 계속할 조건을 얻는 대신 어떤 관계에 묶이는지 함께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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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