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라는 언니에게, 이미 숨어본 동생이 말한다 | MovieLAB LAB

지수(오우리)는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들르고 싶다. 일찍 부모를 여읜 뒤 자신을 돌봐준 사촌 언니 선아(정지인), 친구 보미(박보람)와 함께 길을 나선다. 운전대는…

숨기라는 언니에게, 이미 숨어본 동생이 말한다 | MovieLAB LAB

지수(오우리)는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들르고 싶다. 일찍 부모를 여읜 뒤 자신을 돌봐준 사촌 언니 선아(정지인), 친구 보미(박보람)와 함께 길을 나선다. 운전대는 보미가 잡는다. 가는 길에 차 사고가 나고, 수리를 맡긴 카센터의 직원이 세 사람을 위협한다. 셋은 외딴 모텔의 좁은 방으로 피한다. 갑자기 위험해진 여행인데, 〈내가 누워있을 때〉는 눈앞의 사건에서 자꾸 과거로 돌아간다. 함께 위기를 벗어나야 할 이들이 서로에 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최정문 감독은 회상을 현재보다 선명한 색으로 찍었다. 사고와 카센터의 갈등이 이야기의 큰 줄기지만, 세 사람이 각자 겪은 사연을 더 중요하게 여겨 과거를 돋보이게 한 것이다. 화면이 과거로 향할 때 인물도 지금의 모습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동생에게 처신을 가르치는 언니, 언니 집에서 지낸 동생, 두 사람을 차에 태운 친구가 저마다 다른 일을 견디고 있었다.

고마운 언니에게 서운한 순간

선아는 지수를 친동생 이상으로 아껴왔다. 지수도 그 마음을 알지만, 언니가 하는 일에 늘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생일에 모인 자리에서 선아는 지갑에서 돈 몇 푼을 꺼내 선물이라고 건넨다. 오우리는 지수 입장에서 그 행동이 몹시 싫었다고 했다. 언니에게 받은 것이 많은 동생이라고 해서, 이런 순간까지 서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고마움과 불만이 한 관계 안에 남는다.

선아는 지수에게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사회생활을 무난하게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런데 지수는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를 사귀다 학교에서 아웃팅을 당한 적이 있다. 오우리는 학창 시절의 지수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숨는 쪽을 택했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숨기라는 언니의 충고는 이미 숨어본 동생을 향한다. 언니가 알려주려는 세상의 험함을 동생은 다른 방식으로 먼저 겪었다.

모텔 방에서 지수가 자기 이야기를 꺼낼 때도 그 차이가 중요하다. 오우리는 그 대화를 고민을 나누기보다 선언에 가깝게 받아들였다. 이 대화에서 동생은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기보다 자기 뜻을 밝히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듣는 선아는 동생을 걱정하는 자리에만 머물 수 없게 된다.

선아 역시 직장에서는 상사와의 관계 때문에 소문에 시달린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과 자기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이다. 지수에게 현실을 가르칠 때의 자신감과 자기 삶을 대할 때의 혼란이 겹친다. 이 자매의 대화에는 충고하는 사람이 도리어 들어야 할 말이 있다는 긴장이 있다.

명랑한 친구에게도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보미는 아이를 사산한 뒤 그 딸을 자기 방식으로 기억하며 산다. 아이의 이름은 진이다. 보미가 죽은 딸을 본다는 설정은, 두려운 것을 보는 사람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감독은 보미가 그 존재를 볼 수 있음에 오히려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존재여도 보미에게는 계속 만나고 싶은 아이다.

슬픔과 발랄함을 함께 가진 보미를 가수 박보람이 연기한다. 연기는 처음이었다. 최정문은 박보람의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면이 두 감정을 함께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친구의 명랑함을 보고 괜찮을 거라고 넘겼다가, 그가 무엇을 잃었는지 알고 같은 밝음을 다르게 보게 된다. 그렇다고 상실을 알게 된 뒤 보미의 모든 행동을 슬픔의 표시로 읽을 수도 없다. 운전대를 잡고 두 친구와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함께 보내는 하루도 있다.

박보람은 이 역을 위해 면허를 따고 직접 운전하며 촬영했다. 세 사람을 같은 길로 데려가는 일이 배우에게도 새로 배워야 할 일이었던 셈이다. 회상이 드러내는 사연은 선아와 지수, 보미를 과거에 붙잡아두기 위해서만 쓰이지 않는다. 누가 누구를 돌보고,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다시 보게 한다. 집에서 동생을 챙기던 선아가 길 위에서는 보미가 모는 차를 타고, 지수가 꺼내는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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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