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극의 주인공이 교도관이라면 | MovieLAB LAB

아들을 죽인 남자가 자신이 일하는 교도소로 들어왔다. 〈아들들〉의 교도관 에바(시드 바벳 크누센)는 그를 피해 근무지를 옮기는 대신, 그가 있는 구역으로 전근을 신청한다. 그 재…

복수극의 주인공이 교도관이라면 | MovieLAB LAB

아들을 죽인 남자가 자신이 일하는 교도소로 들어왔다. 〈아들들〉의 교도관 에바(시드 바벳 크누센)는 그를 피해 근무지를 옮기는 대신, 그가 있는 구역으로 전근을 신청한다. 그 재소자의 이름은 미켈(세바스티안 불). 에바는 그와 얽힌 사정을 동료들에게 숨긴 채, 그를 감시하는 사람이 된다.

복수를 위해 무기를 구하거나 범인을 추적할 필요가 없는 여자다. 그녀에게는 이미 교도관의 제복과 권한이 있다. 재소자를 관리하는 업무와 개인적인 보복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더 길티〉의 연출을 맡았던 구스타브 몰러 감독은 이 위험한 만남을 교도소 안에 붙들어둔다. 에바의 권한으로 미켈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관객은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경계하며 보게 된다.

재소자 너머로 보이는 교도관의 얼굴

다정했던 사람이 더 무서워지는 순간

아침 점호에서 재소자를 따뜻하게 맞이하던 에바에게 미켈은 예외가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던 일을 그에게도 해줄 수 있을까. 교도관의 하루에는 감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재소자와 말을 나누고 일상을 관리해야 한다. 에바는 미워하는 사람과 한 번 대면하는 것으로 끝낼 수 없고, 근무하는 동안 계속 그를 상대해야 한다.

이 일상적인 접촉이 복수극에 다른 긴장을 만든다. 교도관의 제복을 입고 있다면 개인적인 분노도 업무처럼 보일 수 있다. 동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고, 관객만 그 사정을 알고 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평범한 근무 장면에서도 에바가 미켈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살피게 된다. 특별한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그녀가 가진 권한을 믿고 맡겨도 되는지 불안해진다.

철망 너머로 내려다본 교도소 마당

화면은 좁고, 보이지 않는 곳은 많다

이 영화의 화면은 요즘 영화에 익숙한 가로로 긴 직사각형과 다르다. 1.37:1 화면 안에서 인물의 얼굴과 길쭉한 복도가 크게 자리한다. 한눈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적다. 에바의 얼굴을 가까이 볼수록 그녀의 옆이나 뒤는 화면에서 벗어난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눈에 확인하기 어렵다.

몰러 감독과 촬영감독은 여러 화면비로 시험 촬영을 거친 뒤 이 비율을 골랐다. 좁은 화면에 넓게 퍼지는 소리를 결합해, 보이지 않는 모퉁이나 등 뒤를 의식하게 하려는 선택이었다. 그 원리를 알고 나면 긴장감이 생기는 방식도 흥미롭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제한되어 있는데 귀는 화면 밖까지 열려 있다. 에바에게 시선을 두는 동안에도 주변을 경계하게 된다.

〈더 길티〉가 전화 너머의 일을 상상하게 했다면, 〈아들들〉은 바로 앞에 있는 사람도 충분히 알 수 없게 만든다. 에바의 얼굴이 크게 보인다고 마음까지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도 조금씩 바뀐다. 저 남자에게 무슨 일을 할까. 그리고 그 일을 하고 난 뒤, 이 여자는 어떤 얼굴을 하게 될까.

한 가지 감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얼굴

시드 바벳 크누센의 연기는 에바의 분노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주지 않는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도 표정을 단순한 분노의 증거로만 읽기 어렵다. 상대를 해칠 수 있다는 흥분과 그 행동에 대한 두려움, 자부심과 수치심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있을 수 있다. 감독 역시 에바가 폭력적으로 변하는 순간에 이런 감정들이 함께 있다고 설명했다.

미켈도 끝내 한 가지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세바스티안 불은 위협적인 청년을 연기하면서도 어린 기색을 남긴다. 그 모습이 범죄를 덜 끔찍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에바가 그를 계속 똑같은 감정으로만 대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은 흔든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확고한데,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 마음에 맞는 모습만 보여주지 않는다. 두 배우가 마주하는 장면의 불편함은 거기서 커진다.

영화는 에바의 집과 일상을 따로 보여주며 쉬어갈 시간을 마련하지 않는다. 교도소 밖에서 어떤 옷을 입고 누구와 지내는지 알 수 없는 채, 우리는 근무 중인 그녀를 따라간다. 보통이라면 퇴근하면 떠날 곳에 스스로 더 깊이 들어온 사람이다. 에바가 원하는 것은 상대를 벌주는 일인지, 아들을 잃은 뒤 멈춰버린 자기 삶을 어떻게든 바꾸는 일인지 점점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 복수극은 누가 벌을 받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에바에게 다시 평범한 하루가 찾아올 수 있을지도 궁금해진다. 살인자를 마주한 어머니의 분노로 시작해서, 그 분노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한 사람을 보게 되는 영화. 시드 바벳 크누센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고 나면, 통쾌함을 기다리던 마음에도 다른 바람이 생긴다.

관련 작품

◆ 〈아웃 오브 튠〉 (2019, 프레더릭 애스폭) — 같은 교도소에서도 누가 사람들을 움직일 힘을 가졌는지에 따라 생활이 달라진다. 재소자 합창단을 다루는 블랙코미디로, 교도소 안의 서열이 음악과 만날 때 생기는 긴장을 다른 온도로 볼 수 있다.

◆ 〈악마를 보았다〉 (2010, 김지운) — 가까운 사람을 잃은 남자가 가해자를 직접 벌하려 한다. 복수를 실행할 능력이 있다고 해서 상실까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두 영화가 만난다. 상대를 처벌하는 동안 복수하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 비교해볼 만하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