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붐비는 명동 뒷골목, 허름한 다락방에서 악령을 쫓는 의식이 시작된다. 〈검은 사제들〉에서 두 사제가 구하려는 사람은 교통사고 뒤 이상 증세에 시달리는 소녀 영신(박소담)…
사람들로 붐비는 명동 뒷골목, 허름한 다락방에서 악령을 쫓는 의식이 시작된다. 〈검은 사제들〉에서 두 사제가 구하려는 사람은 교통사고 뒤 이상 증세에 시달리는 소녀 영신(박소담)이다. 김 신부(김윤석)는 주변의 반대에도 구마 의식을 준비하고, 신학생 최 부제(강동원)가 그를 돕게 된다.
그런데 최 부제에게는 남몰래 맡은 일이 하나 더 있다. 교단의 눈 밖에 난 김 신부를 감시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방에서, 최 부제는 자신이 의심하던 사람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검은 사제들〉은 장재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후 〈사바하〉와 〈파묘〉로 이어지는 그의 오컬트 영화는,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위험한 의식에 나선 두 사제의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최 부제도 믿음직한 신학생과는 거리가 멀다. 술을 마시고 시험에서 부정행위도 하던 청년이다. 그런 그에게 위험한 의식을 도울 임무가 주어졌다. 김 신부의 행동을 관찰하고 보고하는 것과, 그 곁에서 악령을 마주하는 것은 다르다. 의식이 시작되면 최 부제 자신도 두려움을 견뎌야 한다.
감독은 두 사람의 관계를 형사들이 짝을 이루는 영화처럼 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구상 덕분에 구마를 잘 모르는 관객도 두 사제의 동행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지시를 내리는 사람과 그 지시를 따라 위험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사람이 있다. 최 부제가 그 자리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하다 보면, 낯선 의식도 절박한 일로 다가온다.
최 부제가 가져온 성수는 생수통에 들어 있다. 감독은 두 사제가 비주류 인물인 만큼 성물도 투박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이 소박한 준비물은 영신의 허름한 방과 잘 어울린다. 악령을 쫓는 의식이 낯설어도, 그 의식에 쓰이는 물건과 장소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다락방 바깥은 사람들이 오가는 명동이다. 그 가까운 곳에 누구도 쉽게 도울 수 없는 소녀가 있다. 많은 사람 곁에서도 한 방 안의 일은 감춰질 수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끊긴 외딴곳보다, 누군가 바로 옆을 지나가도 이 안의 일을 모른다는 상황이 더 답답하게 다가온다.
후반부의 긴 구마 의식은 그 좁은 공간을 대결의 무대로 바꾼다. 사제들은 기도와 명령으로 악령을 쫓으려 하고, 영신을 통해 말하는 악령은 낯선 언어로 두 사람을 위협한다. 여기서는 말을 하는 행위가 곧 싸움이다. 기도를 계속하는 사람과 그 기도를 멈추게 하려는 존재가 맞선다. 기도문의 뜻을 모두 알지 못해도, 목소리가 다급해지거나 거칠어질 때마다 싸움의 긴장이 전해진다.
영신은 침대에 묶여 있지만, 그 때문에 사제들이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소녀에게서 나오는 언어와 말투가 달라질 때마다 두 사람은 눈앞의 존재를 다시 경계해야 한다. 영신을 연기한 박소담은 움직임이 제한된 만큼 목소리의 높낮이와 발성을 구분해 준비했다고 한다. 같은 얼굴이 다른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것만으로 충분히 낯설어진다.

김 신부와 최 부제가 상대하는 악령은 영신의 몸에 깃들어 있다. 두 사람을 위협하는 것도, 두 사람이 구해야 하는 것도 눈앞에서는 같은 몸이다. 그래서 이 의식은 상대를 쓰러뜨리기만 하면 끝나는 싸움이 될 수 없다. 소녀에게서 나오는 목소리는 무섭지만, 그 목소리에 시달리는 소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김 신부의 확신이 미덥지 않다. 그러나 영신의 방에서 의식이 이어질수록 김 신부가 흔들리지 않고, 최 부제도 그 곁을 지켜주길 바라게 된다.
◆ 〈흑마술사〉 (2016, 다인 사이드) — 현대 도시의 연쇄살인 수사에 오래된 주술과 전설이 끼어든다. 익숙한 거리와 건물 안에서 초자연적인 일을 마주한다는 점이 닮았다. 구마 의식에 집중하는 〈검은 사제들〉에서 도시 곳곳으로 퍼지는 미스터리로 관심을 넓힐 수 있다.
◆ 〈어글리 시스터〉 (2025, 에밀리 블리치펠트) — 왕자의 선택을 받으려는 소녀가 고통스러운 외모 교정을 감수한다. 끔찍한 신체의 변화를 보여주면서도 그 고통을 겪는 소녀의 처지를 놓치지 않는 작품이다. 공포의 대상처럼 보이는 몸을 다시 한 사람의 몸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어 볼 만하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