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거인, 리차드 킬이 원시인을 연기한 그 여름 | MovieLAB LAB

사막에서 거인을 봤다고 말했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마릴린 매닝이 연기하는 록시는 차를 몰다 낯선 존재와 마주친다. 남자친구와 아버지는 그 말을 의심하지만, 현장에는 큰 발…

사막의 거인, 리차드 킬이 원시인을 연기한 그 여름 | MovieLAB LAB

사막에서 거인을 봤다고 말했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마릴린 매닝이 연기하는 록시는 차를 몰다 낯선 존재와 마주친다. 남자친구와 아버지는 그 말을 의심하지만, 현장에는 큰 발자국이 남아 있다. 〈이가〉는 소녀의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리던 일이 눈앞의 흔적과 맞아떨어지는 데서 모험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인을 찾아 긴장을 높이는 데만 몰두하지 않는다. 남자친구 톰은 노래를 부르고, 동굴에서는 뜻밖의 면도 장면이 벌어진다. 사막의 위협과 십대의 데이트, 괴물과 가까워지는 순간이 한 영화에 들어 있다. 무엇을 무서워해야 하는지 알 것 같다가도, 다음 장면이 전혀 다른 기분을 불러온다.

몽둥이를 든 거인과 바닥에 누운 여자를 크게 배치한 〈이가〉 포스터.

발자국을 따라가서 만난 얼굴

리차드 킬이 맡은 이가는 사막의 동굴에 사는 거인이다. 록시가 본 것을 확인하러 나섰던 사람들은 결국 그와 직접 마주한다. 멀리서 흔적을 찾을 때는 존재 여부가 문제였지만, 가까이에서 만나면 어떻게 벗어나고 어떻게 말을 건넬지가 문제가 된다.

동굴은 이가가 사람을 붙잡아두는 곳이면서 그가 살아온 곳이기도 하다. 안에는 조상들의 미라가 있다. 록시에게는 낯설고 벗어나야 할 장소가 이가에게는 자신의 지난 시간을 간직한 집이다. 영화는 거인의 정체를 길게 설명하기보다, 그가 무엇과 함께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며 이 동굴을 단순한 은신처와 다르게 만든다.

거인을 찾는 영화에서 노래하는 남자친구

톰을 연기하는 사람은 아치 홀 주니어다. 그가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동안 영화의 관심은 사막에서 벌어지는 사건보다 노래를 들려주는 청년에게 머문다. 무엇이 숨어 있는지 살피던 모험의 시간이, 여자친구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시간으로 바뀐다.

이 노래들은 긴장을 잠깐 풀어주는 정도를 넘어 별도의 볼거리처럼 들어온다. 거인 이야기가 궁금한 관객에게는 사건이 멈춘 것처럼 느껴질 수 있고, 그 엇갈림 자체가 우스울 수도 있다. 위험을 따라가던 영화가 느닷없이 청년의 공연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노래의 좋고 나쁨을 판정하기 전에, 노래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무엇을 기다리게 되는지가 달라진다.

제작에 참여한 부자를 알면 이 배치의 한쪽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감독 아치 홀 시니어는 아들이 주연을 맡는 영화를 만들었고, 자신도 록시의 아버지로 출연했다. 제작자와 감독, 배우로 여러 역할을 맡으며 크레디트에는 가명을 사용했다. 아버지가 꾸린 영화 안에 아들이 노래하고 모험하는 자리가 함께 마련된 셈이다.

다만 그 사정만으로 톰의 공연과 이가의 이야기가 저절로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특이한 호흡은 둘 사이의 틈에서도 나온다. 사막으로 나가는 청년들의 나들이를 보다가 낯선 존재와의 조우를 맞고, 다시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매끄럽게 섞인 장르보다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는 볼거리들이 더 잘 보인다.

바위 능선 위에서 손을 이마에 대고 먼 곳을 살피는 탐험복 차림의 남자.

동굴에서 면도하는 거인

킬의 체구는 이가가 등장할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요소다. 하지만 동굴에서 록시와 가까이 있는 동안에는 그가 상대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록시는 이가를 면도해주고, 이가는 그녀에게 장신구를 건넨다. 붙잡는 힘만 보이던 인물에게 무언가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긴다.

누군가의 수염을 깎으려면 얼굴 가까이로 다가가야 한다. 위험한 상대를 멀찍이 바라보던 관계가, 얼굴을 맡기고 손질해주는 관계로 잠시 바뀐다. 평범한 면도라는 행동이 사막의 동굴에 들어왔기 때문에 생기는 낯선 웃음이 있다. 킬은 이 장면에서 다가오면 피해야 할 거인이면서, 다른 사람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인물이 된다.

그렇다고 록시가 동굴을 떠나고 싶다는 사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가가 록시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다고 해서, 록시도 같은 마음인 것은 아니다. 면도 장면의 뜻밖의 친근함을 느끼면서도 둘이 같은 만남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은 남는다.

영화 옆에서 웃는 목소리

〈이가〉는 영화를 틀어놓고 농담을 덧붙이는 TV 프로그램 〈미스터리 사이언스 시어터 3000〉에서도 다뤄졌다. 2019년 복원판 특별판에는 원래 영화와 1993년의 방송판이 함께 실렸다. 같은 영화라도 진행자의 말이 더해지면 장면을 기다리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을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구성이다.

농담을 들으며 보면 뜬금없는 전환이 다음 놀림거리를 기다리는 시간이 된다. 원래 영화에서는 같은 전환 뒤에 음악을 듣거나 이가의 반응을 살피게 된다. 어느 쪽으로 보든 먼저 장면을 구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면도를 하는 동작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와 노래 때문에 사건이 멈춘 듯한 느낌은 서로 다르다. 그 차이를 짚으면 ‘나빠서 웃긴 영화’라는 한마디보다 자신의 웃음을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극장 포스터를 다시 활용하고 초록색 컬렉션 띠와 평가 문구를 덧붙인 이탈리아어판 홈비디오 커버.

왜 지금 이 영화를 보는가

〈이가〉의 재미는 다음 장면이 같은 분위기를 이어줄 것이라고 쉽게 믿기 어렵다는 데 있다. 큰 발자국을 따라가던 호기심, 기타를 든 청년의 노래, 동굴에서 수염을 깎아주는 모습이 각기 다른 속도로 다가온다. 긴장이 느슨해지는 순간도 있지만, 그 자리에 엉뚱한 친근함이 들어서기도 한다.

특히 록시가 면도를 해주고 이가가 선물을 건네는 장면은 우습다가도 조금 쓸쓸하다. 가까워지는 방법을 찾은 듯한 이가와 그곳을 떠나고 싶은 록시의 마음이 나란히 있기 때문이다. 이가가 잠깐의 호의를 곁에 남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거인의 얼굴이 처음보다 익숙해졌는데도 두 사람이 바라는 것은 여전히 다를 수 있다.

관련 작품

◆ 〈유카 플랫의 야수〉 (1961, 콜먼 프랜시스) — 핵실험에 휘말린 과학자가 괴물로 변해 네바다의 시험장 주변을 떠돈다. 사막에서 거대한 존재와 마주한다는 소재를 공유하지만, 이곳의 위협은 오래 살아온 존재의 발견이 아니라 인간이 벌인 실험에서 생긴다. 인물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설명이 무엇인지 비교하면 두 괴물의 차이가 보인다.

◆ 〈크롤링 핸드〉 (1963, 허버트 L. 스트록) — 학생이 해변에서 우주비행사의 잘린 팔을 발견해 가져온 뒤 위협이 시작된다. 〈이가〉가 거인을 직접 만나는 장면을 내세운다면, 이 영화는 몸에서 떨어진 일부에 움직임과 힘을 부여한다. 위험한 존재의 크기뿐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 있고 얼마나 가까이 다가오는지가 긴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비교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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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