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의 밤 촬영 사이, 킬리언 머피가 맷 데이먼에게 다른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한 아일랜드 석탄 장수에 관한 각본이었다. 데이먼은 새 제작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머피에…
〈오펜하이머〉의 밤 촬영 사이, 킬리언 머피가 맷 데이먼에게 다른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한 아일랜드 석탄 장수에 관한 각본이었다. 데이먼은 새 제작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머피에게는 꼭 영화로 만들고 싶은 책이 있었다. 그 대화에서 시작된 협력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머피는 이번에는 주인공을 연기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들을 모으는 쪽에 섰다.
원작을 쓴 클레어 키건은 머피가 좋아하던 작가였다. 책에 마음을 빼앗겼고 빌 펄롱을 연기하고 싶었다. 판권이 남아 있는지 알아본 뒤, 제작자 앨런 몰로니와 함께 영화로 옮길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작품의 규모보다 글 자체가 먼저였다는 머피의 설명은 이 준비 과정과 맞아떨어진다. 석탄 장수의 이야기를 택한 결정은 아카데미 수상 뒤에 내려진 것이 아니다. 영화는 이미 2023년 봄에 촬영 중이었다.
배우가 제작에도 참여하면 배역을 고르는 일에서 질문이 더 나아간다. 누구와 연기할지, 그 연기를 어떤 사람이 찍고 어떤 글이 받칠지까지 함께 정해야 한다. 머피는 몰로니가 제작 실무의 많은 부분을 맡았고 자신은 각본과 음악, 편집에 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좋아하는 이야기가 영화가 되기까지 필요한 일에 힘을 보탠 선택이다.
빌은 1985년 아일랜드 뉴로스에서 석탄을 팔며 다섯 딸을 기르는 아버지다. 배달하러 드나들던 수녀원에서 여자들이 겪는 고통과 마주친다. 옳고 그름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당장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 날에도 같은 마을에서 일을 하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 머피가 연기해야 하는 것은 그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이 본 것을 잊지 못하는 시간이다.

빌의 아내 에일린을 연기하는 배우는 에일린 월시다. 두 사람은 1996년 연극 〈디스코 피그〉에서 함께 무대에 섰다. 그 작품을 쓴 엔다 월시가 이번 영화의 각색을 맡았다. 머피의 첫 전문 연기 작업을 함께했던 작가와 배우가, 세월이 흐른 뒤 한 부부의 일상을 만드는 자리에 다시 모인 것이다.
머피는 익숙한 동료와 작업하면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줄이고 바로 연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촬영을 시작했을 때 팀 밀란츠 감독도 두 배우 사이에 쌓인 시간이 느껴진다고 했다는 것이다. 에일린 월시 역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이 작업의 중요한 조건으로 꼽았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지난 일을 모두 대사로 들려주지 않아도, 두 사람이 함께 살아온 관계를 관객에게 믿게 해야 했다.
이 신뢰가 화면 속 부부의 의견까지 같게 만들지는 않는다. 빌에게 일어난 변화는 아내에게도 집안의 일이 된다. 에일린 월시는 자기 배역이 빌을 사랑하면서도 교회와 공동체의 판단을 두려워한다고 설명했다. 남편을 이해하는 마음과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오래된 동료가 연기하는 부부에게서 볼 만한 것은 편안함뿐 아니라, 가까운 사이여서 더 무겁게 다가오는 이견이다.

엔다 월시와의 작업도 익숙한 말투를 반복하는 일은 아니었다. 이번 각색에서는 소설 속 사정을 모두 대사로 풀어주기보다 관객이 빌의 상태를 느낄 여지를 남겼다. 머피는 월시가 압박받는 사람의 행동을 잘 안다고 설명했다. 배우에게 필요한 각본은 말을 많이 주는 각본만이 아니다. 무엇을 말하지 못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해주는 글도 있다.
밀란츠는 〈피키 블라인더스〉에서 머피와 작업한 감독이다. 버밍엄 갱단의 토머스 셸비와 뉴로스의 석탄 장수는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다. 빌은 마을의 권력을 쥔 사람이 아니며, 거래처와 마을을 떠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함께 일해본 감독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예전 배역의 태도까지 가져온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 반대의 처지에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익숙한 협업은 의상에서도 이어진다. 〈피키 블라인더스〉에서 머피와 작업했던 의상 디자이너 앨리슨 매코시는 빌이 평일마다 입을 작업용 재킷부터 생각했다. 의상팀은 1980년대라는 이유로 옷을 모두 그 시대 유행에 맞추지 않았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지방 마을에서는 옷을 오래 입었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반영했다. 낡아 보이는 외투 하나에도 이 사람이 새 옷을 얼마나 자주 살 수 있을지가 들어 있다.

머피는 원작의 배경인 뉴로스에서, 실제 집과 수녀원을 사용해 찍기를 원했다. 현장이 배우에게 주는 압력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좁은 집 안에 들어가 몸을 움직이는 일은, 집이 좁다는 사실을 머릿속으로만 아는 것과 다르다. 제작에 참여한 배우의 선택이 화면 밖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과 동료들이 연기할 조건으로 돌아온다.
석탄을 다루는 일도 그 조건의 일부다. 빌은 생각에 잠겨도 배달을 해야 하고 짐을 옮겨야 한다. 일하는 사람을 먼저 보고 나면 그의 침묵을 신비로운 성격으로만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무슨 말을 꺼내든 내일의 일과 가족이 따라붙는다. 머피의 연기를 볼 때 얼굴에서 정답을 찾는 것보다, 그 얼굴이 놓인 생활을 함께 보는 편이 빌의 망설임에 가까이 갈 수 있다.

한 배우를 오래 본다는 것은 대표작의 얼굴을 기억하는 일만은 아니다. 누구와 다시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위해 그 관계를 쓰는지도 알게 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는 머피가 선택한 동료와 장소가 빌의 생활을 함께 만든다. 그의 연기가 조용하게 느껴진다면 곁의 배우와 집 안의 거리, 일할 때 입는 옷까지 보아도 좋다. 한 사람이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그 주변에도 놓여 있다.
◆ 일을 계속하는 빌 — 석탄을 다루고 배달하는 시간을 인물 소개 뒤의 배경처럼 넘기지 말자. 빌이 지켜야 할 생활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후 그가 망설이는 이유를 생각할 때 손에 익은 일과 가족의 생계가 함께 떠오른다.
◆ 아내와 함께 있는 자리 — 빌과 에일린이 서로를 얼마나 편하게 대하는지와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함께 보자. 오래 함께 살아온 듯한 친밀함 속에서도 둘의 판단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 집안의 안정을 지키려는 말이 남편에게는 어떻게 들리는지 살필 수 있다.
◆ 빌의 작업복 — 재킷과 바지의 색, 자주 입는 옷이 몸에 남기는 모양을 보자. 최신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옷이 인물의 생활 형편을 알려준다. 〈피키 블라인더스〉의 머피가 익숙하다면 옷을 입고 움직이는 사람의 처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눈에 들어온다.
◆ 말이 적은 동안 함께 보이는 것 — 빌의 표정이 분명해지기만을 기다리기보다 곁에 누가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 중인지 보자. 같은 침묵도 가족 앞에서와 수녀원 안에서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인물을 이해할 단서는 그의 얼굴에만 있지 않다.
◆ 〈트럼보〉 (2015, 제이 로치) — 정치적 신념 때문에 투옥되고 일자리에서 배제된 할리우드 작가를 다룬다. 하고 싶은 말과 가족의 생계가 맞물린다는 점에서 빌의 사정을 함께 생각할 수 있다. 말로 싸우는 인물과 말을 꺼내기 어려운 인물의 차이도 선명하다.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 셀린 시아마) — 한 화가가 결혼을 위한 초상화 그리기를 거부하는 여자를 몰래 관찰한다. 사람을 바라보는 일에는 그 사람이 말하지 않는 사정을 알아가는 과정도 있다. 두 영화가 서로 다른 관계 안에서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하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