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거리에서 사람 구경을 할 수 없다. 〈제로스 앤 원스〉는 코로나19로 도시가 멈췄을 때 촬영한 첩보영화다. 미군 J.J.(이선 호크)는 텅 빈 거리를 지나 어두운 실내로 …
로마의 거리에서 사람 구경을 할 수 없다. 〈제로스 앤 원스〉는 코로나19로 도시가 멈췄을 때 촬영한 첩보영화다. 미군 J.J.(이선 호크)는 텅 빈 거리를 지나 어두운 실내로 들어가고, 카메라로 무언가를 기록한다. 그는 위협의 실체를 알아내고 실종된 형제의 행방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누구를 믿어야 할지, 지금 얻은 정보가 무엇을 뜻하는지 좀처럼 분명해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첫인상은 줄거리보다 도시에서 온다. 사람들로 가득해야 할 장소가 비어 있으니, 평소라면 지나쳤을 한 사람의 움직임도 수상해 보인다. 연출을 맡은 아벨 페라라는 이 낯선 로마를 배경으로 빌리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사람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살던 시간을 첩보극 속에 남겼다. 영화의 어둠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에 위험이 있는지 알 수 없었던 당시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로마를 찍었다고 해서 오래된 건물과 광장이 보기 좋게 펼쳐지지는 않는다. 화면은 어둡고, 카메라는 흔들리며, 초점도 안정적으로 머물지 않는다. 도시의 전체 모습보다 지금 인물이 지나가는 곳의 일부가 보인다. 다음 장소가 어디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다른 얼굴과 다른 화면을 만나게 된다.
촬영감독 션 프라이스 윌리엄스의 카메라는 멀리서 상황을 정리해주는 대신 현장 안으로 들어간다. 이선 호크는 촬영 중 지나치게 아름다운 장면이 나오면 페라라가 피하려 했다고 전했다. 이 선택은 영화가 로마를 어떤 곳으로 남길지와도 이어진다. 관객이 구경할 여유를 가진 도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야 하는 도시다.
이런 화면은 친절하지 않다. 인물들의 관계와 작전의 목적을 한눈에 정리해주는 첩보극을 기대하면 답답할 수 있다. 그 답답함을 무조건 깊은 의미로 바꿔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다만 장면을 따라가며 무엇을 확실히 볼 수 있고 무엇은 끝내 잘 보이지 않는지 살피면, 영화가 만드는 긴장의 성격을 알게 된다. J.J.가 정보를 모을수록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J.J.는 자신이 본 것을 기록한다. 그가 찾는 형제의 모습 역시 다른 사람이 찍은 영상으로 전해진다. 영화 속 인물들은 직접 만나는 대신 화면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단서를 찾는다. 관객도 누군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또 하나의 카메라를 거쳐야 한다.
영상이 있다는 사실은 안심할 근거처럼 느껴지기 쉽다. 최소한 무언가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증거는 있으니까. 하지만 누가 찍었고 어떤 상황에서 찍었는지 모르면, 눈앞의 기록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이 영화에서 작은 화면들은 그 부족한 사정을 채워주지 않은 채 계속 도착한다. 많이 보고 있다는 느낌과 충분히 알고 있다는 느낌이 떨어져 나간다.
이선 호크가 두 형제를 모두 연기하는 것도 흥미롭다. J.J.는 군인이고 저스틴은 혁명가다. 서로 다른 처지의 인물을 같은 배우의 얼굴로 마주하게 된다. 배우를 알아봤다는 익숙함만으로 어느 쪽이 옳은지 결정할 수 없다. 같은 얼굴이 다른 말을 하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흔적을 뒤쫓는다. 한 배우에게 몰입하는 방식으로 따라가던 영화가 두 인물 사이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제목의 0과 1은 디지털 정보를 이루는 단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수많은 이미지가 오가는 이 세계에서 판단은 그처럼 간단히 나뉘지 않는다. 화면 안에 있는 사람과 그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이 같은 것을 알고 있지도 않다. 〈제로스 앤 원스〉의 불안은 숨겨진 정보를 기다리는 동안뿐 아니라, 이미 받은 정보를 믿어야 하는 순간에도 생긴다.

영화에는 마스크와 체온 측정 같은 익숙한 풍경이 들어온다. 첩보원에게나 어울릴 법한 경계심이 평범한 생활의 절차와 겹친다.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기 전에 거리를 재고 상태를 확인하는 일. 우리는 한때 그런 행동을 날마다 해야 했다. 영화 속 전쟁의 구체적인 사정을 다 알지 못해도, 사람이 있는 곳에 들어갈 때의 조심스러움은 알아볼 수 있다.
페라라는 오래 구상해온 첩보 이야기를 팬데믹 이후 달라진 로마에서 영화로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도 이 사태가 처음부터 창작의 기회였던 것은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감당하기 어려웠던 때를 지나,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그래서 빈 거리는 잘 통제된 세트의 풍경과 다르다. 촬영진도 같은 불확실성 안에 있었던 도시다.
영화 앞뒤에서 이선 호크가 배우 자신으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구성은 그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J.J.의 임무를 따라가는 동안에도, 이 영화를 함께 만들기로 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배우가 직접 등장하는 순간 허구의 음모 바깥에 있던 촬영의 시간이 보인다.
〈제로스 앤 원스〉에는 수수께끼를 깔끔하게 풀고 극장을 나설 때와 다른 보람이 있다. 익숙한 도시가 하루아침에 낯설어졌던 시간을, 어둡고 불완전한 이미지로 다시 만난다. 거리의 소음과 사람들 사이의 거리, 화면 너머 상대를 확인하던 습관까지. 페라라의 로마는 과거를 정리한 기념사진보다 그때의 불안에 가까이 있다.
◆ 〈로스트 인 시리아〉 (2022, 아딜 엘 아르비·빌랄 팔라) — 전쟁 속 형제의 이야기에 음악과 뮤지컬 장면을 결합한다. 〈제로스 앤 원스〉의 끊기고 어두운 화면과 나란히 보면, 전쟁을 다루는 영화가 하나의 사실적인 표현 방식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다섯 번째 흉추〉 (2022, 박세영) — 버려진 매트리스에서 자라는 생명체를 따라가며 익숙한 방과 사물을 낯설게 만든다. 장르와 규모는 다르지만, 화면의 질감과 소리만으로 일상의 공간을 바꿔놓는 감각을 이어서 즐길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