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모태, 그 리어카를 끌 사람은 누구일까 | MovieLAB LAB

시장 골목에 폐지를 실은 리어카가 놓여 있었다. 국밥을 먹고 나오던 기모태는 가로등 불빛 아래의 그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아직 거기에 누가 서 있어야 할지는 정하지…

기모태, 그 리어카를 끌 사람은 누구일까 | MovieLAB LAB

시장 골목에 폐지를 실은 리어카가 놓여 있었다. 국밥을 먹고 나오던 기모태는 가로등 불빛 아래의 그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아직 거기에 누가 서 있어야 할지는 정하지 않은 때였다. 그 리어카를 움직일 사람으로 떠올린 것은 마흔을 넘긴 전직 레슬링 선수였다. 한때 금메달을 땄지만 지금은 잘 곳부터 구해야 하는 남자, 〈페이퍼맨〉의 인목이다.

힘쓰는 일을 잘했을 사람에게 리어카를 맡겼는데, 정작 지금은 허리가 아파 마음대로 끌 수 없다. 과거와 현재가 쉽게 이어지지 않는 인물이다. 기모태는 그를 안쓰러운 사정만 가진 사람으로 두지도 않았다. 인목은 도움이 필요하면서 남을 부릴 줄도 알고, 자기 형편보다 큰 체면을 지키려 한다. 한눈에 본 풍경에서 출발한 영화가 사람을 따라가며 자꾸 다른 표정을 갖게 된다.

무대에서 먼저 만난 배우

기모태는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무대에 섰다. 연극에서 연기와 연출을 했고, 웹드라마와 단편도 만들었다. 연극을 연출한 뒤에는 공들인 작업이 공연 시간 너머에도 남기를 바랐다. 영화 쪽으로 관심이 옮겨간 이유다. 첫 장편을 준비하던 무렵에는 단편과 웹드라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마음도 컸다고 한다.

인목 역의 곽진 역시 그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이다. 기모태는 곽진이 쓰고 연출한 연극에 배우로 참여했고, 함께 무대에 선 뒤 서로를 신뢰하게 됐다. 〈페이퍼맨〉의 각본을 건넸을 때 곽진은 출연뿐 아니라 제작에도 힘을 보탰다. 무대에서 함께 연기했던 두 사람이 영화에서는 감독과 주연배우로 만난 셈이다.

메달을 목에 걸고 다니는 행동 하나에도 자랑과 미련이 함께 있다. 자랑스럽게 보이려는 사람을 연기하면서, 보는 쪽에서는 그 모습이 조금 우습거나 서글프게 느껴질 수 있어야 한다. 배우가 인목의 사정을 먼저 불쌍하게 보여주려 하면 그의 뻔뻔함이 약해지고, 웃기는 사람으로만 밀어붙이면 그가 버티고 있는 생활이 멀어진다.

곽진과 기모태도 촬영 초반부터 인물을 똑같이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해석이 다른 부분을 두고 의견을 나눴다. 기모태에게 익숙했던 배우와의 작업은 영화로 옮겨온 뒤에도 대화와 조정을 필요로 했다.

가로대에 손을 얹고 몸을 숙인 인목

힘이 있던 사람에게 리어카를 맡기다

리어카를 끄는 사람이 왜 인목이어야 했을까. 기모태는 왕성하게 일할 나이라고 여겨지는 중년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상황에 관심을 가졌다. 영화 속 메달은 그가 원래 아무것도 못 하던 사람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 잘해낸 일이 지금의 잠자리나 수입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한때의 능력과 오늘의 형편 사이가 벌어져 있다.

인목은 강제 퇴거를 당한 뒤 다리 밑에서 지낸다. 그곳에는 먼저 살던 노인도 있고, 기동도 있다. 혼자 세상과 인연을 끊을 것처럼 행동해도 생활을 이어가려면 다른 사람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박스를 구하는 일에도 구역이 있고, 자기가 더 편하게 지내려는 생각은 곧 누군가의 일과 연결된다.

인목이 기동에게 초코파이를 주고 일을 시키는 관계에는 그 복잡함이 작게 들어 있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일은 친밀함의 표시일 수 있다. 동시에 적은 대가로 더 많은 일을 시키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누가 더 힘든 일을 맡고 있는지는 따로 보인다.

여기서 웃음은 사정이 어려운 사람에게도 허세와 계산이 있다는 데서 생긴다. 인목은 남의 눈치를 보고, 자존심을 세우고, 자기에게 유리한 방법을 찾는다. 그를 좋아할 이유와 못마땅해할 이유가 한 사람 안에 있다. 기모태는 인목을 따라가는 동안 관객이 한 번 정한 감정만 유지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도움을 받는 사람을 보고 있다가, 곧 그가 남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보게 된다.

종이 상자를 편 바닥에 둘러앉은 사람들

아버지와 친구가 볼 영화를 생각한다

기모태가 떠올리는 관객에는 영화 일을 하지 않는 친구와 나이 든 아버지가 있었다. 무거운 사정을 가진 인물이 나와도 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인목의 삶이 어렵다는 설명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가 남들과 부딪치며 벌이는 일을 희극으로 만든 이유다.

기모태 자신도 〈페이퍼맨〉에 엑스 역으로 출연했다. 연출을 맡으면서 배우로서의 욕심까지 함께 가져간 것이다. 다만 자기 연기를 더 찍고 싶은 마음과 촬영을 끝내야 하는 판단이 늘 일치하지는 않았다. 스태프의 수고를 생각하면 자신의 연기가 아쉬워도 촬영을 마칠 때가 있었다고 한다. 배우와 감독을 겸한다는 말 뒤에는 현장에서 내려야 하는 이런 결정이 있다.

지금 이 감독의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페이퍼맨〉은 사람의 형편을 이해하는 일과 그가 하는 일을 좋게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준다. 인목이 겪은 어려움을 알게 돼도 기동을 부리는 행동까지 흔쾌히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 어긋남 덕분에 인물은 사회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나온 사례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남을 챙기는 순간에도 자기 계산을 버리지 않는 사람으로 남는다.

기모태는 첫 장편에서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고 그들 사이의 대가와 체면을 웃음으로 드러내는 데 관심을 보였다. 무대에서 연기를 주고받던 경험이 있는 감독과 배우가, 다리 아래의 작은 생활에서 얼마나 다양한 반응을 만들어내는지 지켜볼 만하다.

감상 포인트

잘했던 일과 지금의 몸 — 인목의 메달과 불편한 허리를 함께 보자. 하나는 과거의 성취를 알려주고 다른 하나는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한다. 그가 자기 실력을 자랑하는 순간과 실제로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의 차이를 따라가면, 허세처럼 보이던 행동에 어떤 아쉬움이 섞여 있는지 생각할 수 있다. 웃음이 생기는 이유도 두 모습 사이에 있다.

같은 물건이 다른 값이 될 때 — 박스는 누구에게는 잠자리를 만드는 재료이고 누구에게는 팔아서 돈으로 바꿀 물건이다. 인목의 종이집이 조금씩 달라질 때 모양만 보지 말고 그 재료를 누가 모았는지도 살펴보자. 집을 넓히는 즐거움과 폐지를 구하는 수고가 한 물건 안에서 이어진다. 물건의 쓰임을 따라가면 인물 사이의 이해관계도 보인다.

도움을 받은 뒤에 하는 일 — 인목이 어려움에 처한 순간 다음으로,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자. 도움을 받는 자리와 일을 시키는 자리가 한 인물 안에서 바뀐다. 그가 주변 사람을 챙기는 행동과 이용하는 행동이 꼭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두 모습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보면 다리 밑의 관계를 가족 같은 온기로만 정리하기 어려워진다.

함께 있을 때 드러나는 체면 — 혼자 있는 인목과 다른 사람 앞의 인목을 비교해보자. 같은 곤란을 겪어도 누가 보고 있느냐에 따라 말과 몸짓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 상대가 자기 말을 받아주는지, 못 들은 척하는지에 따라 그의 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도 볼 만하다. 장면의 웃음이 한 배우의 표정뿐 아니라 배우들이 주고받는 반응에서 만들어진다.

관련 작품

〈페이퍼맨〉 — 연극에서 함께 일했던 곽진을 주연으로 만난 기모태의 첫 장편. 폐지를 모으며 살아가는 인목을 통해 체면과 생계, 친밀함과 이용이 겹치는 관계를 그린다. 감독 자신도 배우로 참여한 작품이다.

〈소공녀〉 — 집을 포기한 미소가 친구들의 거처를 찾아가는 전고운의 영화.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자기 취향과 자존심까지 없애고 살 수 있는지 묻게 한다. 인목과 미소의 성격을 같게 보기보다, 거처를 옮기는 사람에게 주변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비교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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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