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가족의 성씨는 프로듀서의 것이었다 | MovieLAB LAB

1973년 함부르크에서 터키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감독이 있다. 그가 자란 나라에서는 7년 동안 이주 배경을 가진 아홉 명과 여성 경찰관 한 명이 네오나치 조직원들에게 살해됐고…

죽은 가족의 성씨는 프로듀서의 것이었다 | MovieLAB LAB

1973년 함부르크에서 터키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감독이 있다. 그가 자란 나라에서는 7년 동안 이주 배경을 가진 아홉 명과 여성 경찰관 한 명이 네오나치 조직원들에게 살해됐고, 그동안 수사기관은 피해자들이 속한 이민자 사회 쪽을 들여다봤다. 죽은 사람들이 독일계가 아니었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었다. 파티 아킨은 이 사건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자기 부모 세대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을 자신이 아는 거리에서 찍었다. 그리고 극 중에서 폭탄에 죽는 가족의 성이 이 영화 프로듀서의 성과 같다.

함부르크의 아들

니트 모자를 쓰고 목에 헤드폰을 걸친 남자가 손을 들어 설명하고, 마주 선 여자가 팔짱을 낀 채 듣고 있는 촬영 현장 사진. 뒤 건물 벽에 KULTURVEREIN E.V. 간판이 걸려 있다.

아킨의 필모그래피에는 20년 넘게 반복되는 지명이 하나 있다.

그의 장편 데뷔작은 1998년의 「짧고 고통 없이」(Kurz und schmerzlos)로, 함부르크의 이민자 청년들이 나오는 범죄 드라마였다. 이후 그는 Im Juli와 「솔리노」(Solino), 「소울 키친」(Soul Kitchen), 「굿바이 베를린」(Tschick)을 오가며 장르를 크게 바꿔 왔다. 로드무비와 이민 가족 서사, 요리 코미디와 성장극이 한 사람의 이력 안에 섞여 있다.

바뀌지 않은 것은 카메라가 서 있는 자리다. 그의 영화에서 함부르크는 배경보다 조건에 가깝다. 항구 도시의 축축한 회색, 터키 식료품점과 독일식 술집이 붙어 있는 거리, 이주민 2세와 그다음 세대가 자기 억양으로 독일어를 쓰는 공간. 심판에서 누리가 사무실을 여는 거리도 그 동네다.

이 지리적 일관성은 취향보다 방법의 문제다. 아는 거리에서 찍으면 설명이 줄어든다. 그래서 심판의 1장은 교도소에서 열리는 결혼식과 접이식 의자와 바닥에 놓인 붐박스만으로 한 가족의 사회적 위치를 전달할 수 있다. 자료조사로 만든 화면이라면 여기에 대사 몇 줄이 더 붙어야 한다.

황금곰에서 칸까지

심판을 만들기 전에 아킨은 이미 유럽 3대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감독이었다.

2004년 「헤드온」(Gegen die Wand)이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다. 터키계 독일인 두 사람의 위장 결혼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같은 해 유럽영화상 작품상을 받았고, 관객 투표로 주어지는 피플스 초이스 감독상은 아킨에게 돌아갔다. 2007년 「천국의 가장자리」(Auf der anderen Seite)는 제60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독일과 터키를 왕복하며 서로를 잃고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2017년, 심판은 제70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고 다이앤 크루거가 여자연기상을 받았다. 이듬해 제75회 골든글로브에서는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이 세 편을 나란히 놓으면 궤적이 보인다. 초기의 아킨은 두 인물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분노를 찍었고, 그다음에는 그 분노를 두 나라 사이의 구조적 긴장 안에 배치했다. 심판에서 그는 처음으로 분노의 원인을 화면 밖의 실제 사건에 고정한다. 감정이 인물의 성격에서 사회의 사실로 옮겨 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가 만든 영화 가운데 가장 조용하면서 가장 단호한 작품이 된다.

크루거에게 모국어를 돌려주다

아킨이 내린 가장 큰 캐스팅 결정은 유명한 배우를 데려온 데 있지 않다. 그 배우에게 독일어를 돌려준 데 있다.

크루거는 독일 태생이지만 할리우드에서 영어로 경력을 쌓았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그녀의 얼굴은 대체로 세련된 인물들과 함께였다. 심판에서 그녀는 모국어로 돌아와 정반대의 일을 한다. 머리가 헝클어진 여자, 잠을 자지 못하는 여자, 자기 집에서 무엇이 발견됐는지를 법정에 앉아 듣는 여자를 연기한다.

카티야를 독일인 아내로 설정한 결정도 이 캐스팅과 함께 나왔다. 터키계 가족의 비극을 터키계 인물의 시선으로만 전달했다면 일부 관객은 그것을 '그들의 이야기'로 밀어 둘 수 있었다. 관객이 따라가는 사람이 독일인이면 그 여지가 사라진다. 아킨은 독일 사회 전체에 이것이 누구의 문제인지 되묻는 위치에 카메라를 놓았다.

크루거의 독일어 연기에는 영어 작품에서 볼 수 없던 직접성이 있다. 모국어로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통역의 지연이 없다. 칸이 이 연기에 준 상은 배우 한 사람을 향한 보상이자, 감독이 애도에 첫 장을 통째로 내주기로 한 결정을 향한 인정이었다.

《심판》의 한 장면

크레딧이 증거다

영화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고 싶으면 엔드 크레딧을 끝까지 보는 편이 인터뷰를 읽는 것보다 정확하다.

심판의 프로듀서 세 사람 중 한 명은 누르한 셰케르지-포르스트이고, 극 중 폭탄에 죽는 가족의 성이 셰케르지다. 캐스팅을 맡은 사람은 모니크 아킨, 감독은 파티 아킨이다. 우연일 수도 있다. 다만 이 정도의 우연이 한 편의 크레딧에 겹쳐 있으면, 그 명단 자체가 이 영화를 누가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알려주는 표지가 된다. 심판은 어떤 공동체를 소재로 삼은 영화가 아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각본에는 아킨과 함께 하르크 봄의 이름이 올라 있다. 봄은 아킨보다 한 세대 앞선 독일 감독이니, 이민자 2세 감독이 독일 영화계의 앞 세대와 나란히 앉아 각본을 썼다. 심판이 묻는 문제는 누가 가해자인가에서 그치지 않는다. 독일 사회가 자기 안에서 벌어진 일을 어떻게 다루는가까지 간다. 그 질문에는 안쪽에서 자란 사람과 그 사회를 오래 지켜본 사람이 모두 필요했다.

촬영감독 라이너 클라우스만은 2002년 「솔리노」부터 아킨과 일했다. 「헤드온」과 「천국의 가장자리」와 「소울 키친」, 「더 컷」(The Cut)과 「굿바이 베를린」을 지나 심판과 「골든글러브」(Der Goldene Handschuh)까지 이어진다. 17년 동안 여덟 편이다. 세 장의 촬영 문법이 완전히 다른데도 심판이 한 편의 영화로 읽히는 까닭은, 그 변화가 즉흥이 아니라 미리 합의된 설계였다는 데 있다.

음악 크레딧에는 조슈아 옴의 이름이 있다. 미국 록 밴드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프런트맨으로, 영화음악가로 알려진 사람이 아니다. 함부르크의 상실을 다룬 독일 영화의 음악을 영화음악 이력이 없는 록 뮤지션에게 맡겼다. 이 결정 하나가, 소리가 언제 들어오고 언제 비는지를 관객이 유심히 듣게 만든다.

국가가 프레임에 들어오는 방식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 여자가 입을 벌려 소리치고, 그 위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다리와 손이 보이는 장면.

아킨의 카메라는 권력을 인물로 그리지 않고 몸으로 그린다.

심판에는 카티야가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 소리치는 장면이 있다. 프레임에 들어오는 것은 그녀를 누르는 사람들의 다리와 손, 그리고 제복에 적힌 글자다. 명령을 내리는 얼굴은 보이지 않고, 왜 그렇게 하는지를 설명하는 대사도 붙지 않는다.

이것이 아킨이 제도를 다루는 방식이다. 법정 장면에도 악당은 없었다. 카티야를 심문한 변호인은 자기 일을 했고 재판부는 절차를 지켰다. 이 영화에서 사람을 누르는 쪽은 개인이 아니다. 언제나 개인이 입고 있는 것이다. 제복, 법복, 서류.

그래서 아킨의 분노는 고함으로 나오지 않는다. 베를린과 칸에서 이미 인정받은 감독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화가 났을 소재를 만나 목소리를 가장 낮췄다. 고함치지 않기로 한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선택이며, 그 덕분에 마지막에 물결 위로 올라오는 몇 줄의 활자가 어떤 고함보다 크게 들린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아킨은 소수자의 이야기를 소수자만의 이야기로 두지 않는 방법을 오래 실험해 온 감독이다. 심판에서 그가 쓴 방법은 시점의 배치였다. 살해당한 가족은 이주 배경이 있지만 관객이 따라가는 인물은 독일인 아내이며, 그 배치 덕분에 독일 관객은 이 사건을 남의 일로 밀어 둘 수 없게 된다.

한국 관객에게도 이 배치는 그대로 통한다. 어떤 사람의 피해를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의 특성으로 설명하려는 관성, 피해자의 과거를 먼저 검토하려는 습관은 특정 사회의 것이 아니다. 아킨이 함부르크에서 발견한 구조는 번역이 필요하지 않다.

감독의 이력을 알고 보면 영화의 절제가 다르게 읽힌다. 20년 동안 같은 도시를 찍어 온 사람이, 그 도시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다루면서 자기 문체를 낮추기로 했다. 심판은 그 낮춤이 만들어낸 밀도로 버티는 영화다.

감상 포인트

엔드 크레딧을 끝까지 볼 것 — 프로듀서의 성과 극 중 가족의 성이 같고, 캐스팅 담당의 성은 감독과 같다. 이 명단이 이 영화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말해준다.

제복이 나오는 장면 —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의 얼굴이 프레임에 들어오는지, 아니면 옷과 손만 들어오는지 지켜보면 아킨의 태도가 보인다.

소리가 비는 구간 — 록 뮤지션이 붙인 음악이 어디에서 들어오고 어디에서 물러나는지 들어보자.

함부르크의 거리 표정 — 간판, 상점, 사람들의 옷차림. 이 도시를 20년 동안 찍어 온 감독이 무엇을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지 관찰하면 좋다.

관련 작품

정말 먼 곳 (2020, 박근영) — 감독이 잘 아는 지역에서 소수자의 삶을 설명 없이 보여주는 방식이 닮았다. 공간을 조건으로 쓰는 연출이 무엇인지 비교해 볼 수 있다.

홈리스 (2022, 임승현) — 사회가 보지 않기로 한 사람들을 응시하는 카메라다. 제도의 사각지대를 한 가족이 겪는 시간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심판》과 같은 계열의 시도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2024, 팀 밀란츠) — 공동체 전체가 묵인한 부정의 앞에서 한 사람이 침묵을 깰지 고민한다. 악당 없이 제도의 폭력을 그린다는 면에서 심판의 법정 시퀀스와 나란히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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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