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집에 나왔더니 신경 쓸 사람이 생겼다 | MovieLAB LAB

김밥집을 맡은 주리(심달기)에게 단무지를 못 먹는 손님이 생긴다. 이원(우효원)이다. 주리는 그를 위해 단무지를 빼고 김밥을 만다. 손님 한 사람의 사정을 기억해 두었다가 음식에…

김밥집에 나왔더니 신경 쓸 사람이 생겼다 | MovieLAB LAB

김밥집을 맡은 주리(심달기)에게 단무지를 못 먹는 손님이 생긴다. 이원(우효원)이다. 주리는 그를 위해 단무지를 빼고 김밥을 만다. 손님 한 사람의 사정을 기억해 두었다가 음식에 반영하는 일. 〈말아〉의 설렘은 이만큼 작은 데서 찾아온다. 자기 앞가림도 막막하던 사람이 어느새 다른 사람을 신경 쓰고 있다.

주리는 스물다섯이다. 전염병이 도는 동안 자취방에서 배달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며 지낸다. 김밥집을 운영하는 엄마 영심(정은경)은 아픈 할머니를 돌보러 가야 한다며 딸에게 가게를 맡긴다. 자취방까지 부동산에 내놓았다는 엄마의 말 앞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다. 김밥집 딸이면서도 김밥을 직접 말아본 적은 없던 주리가, 이제 다른 사람의 끼니를 책임져야 한다.

주리의 출발은 이렇게 마지못해서다. 주리는 새 삶을 살겠다며 가게에 들어가지 않는다. 엄마에게 떠밀려 나온 사람이 하루치 일을 해보는 동안, 방 안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얼굴들이 찾아온다. 그중 어떤 얼굴은 귀찮고 어떤 얼굴은 다시 보고 싶어진다. 곽민승 감독은 이 변화를 취업이나 성공이라는 큰 결과보다 가까운 거리의 만남으로 풀어간다.

마스크를 쓴 여성이 장바구니 카트 앞에서 식재료 포장과 메모를 살펴보는 모습.

먹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으로

주리가 이원을 처음 만날 때는 김밥을 썰며 미니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다. 김밥을 써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더위를 식히는 중이다. 작은 바람을 즐기며 손을 움직이는 모습 하나가, 열심히 일하는 청년이라는 설명보다 주리를 가까운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가게에는 주리의 속도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손님도 온다. 밝은미래산악회장(손석배)은 말을 쏟아내며 주리를 정신없게 만드는 인물이다. 이 대목을 준비하며 감독은 배우에게 잠깐 들어왔다가 주리의 혼을 빼놓고 나가는 느낌을 주문했다. 손석배는 많은 대사의 순서를 바꾸어가며 변주했다. 가만히 있고 싶은 사람 앞에 말 많은 사람이 찾아왔을 때의 어긋남이 웃음을 만든다. 주리가 활기차게 변해야만 가게에 활기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사정과 성격을 그대로 들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원과의 만남은 그 소란과 다른 호흡을 갖는다. 취업을 준비하는 그도 자기 생활이 완성된 사람은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 데 김밥 한 줄이면 대화를 시작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가 먹지 못하는 재료를 기억하는 주리의 배려는 부담스럽게 크지 않다. 다만 늘 하던 일에 한 사람을 위한 예외가 생긴다. 관계가 자라는 것을 이처럼 음식의 작은 차이로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이 〈말아〉의 귀여운 매력이다.

작은 가게 식탁에 나란히 앉아 음식을 앞에 둔 두 여성.

엄마와 딸, 의자 한 칸의 거리

주리와 영심이 나란히 담배를 피울 때, 두 사람 사이에는 의자 한 칸이 비어 있다. 감독은 이 간격을 정하고, 담배를 피우는 두 사람의 동작이 은근히 맞았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 있어도 몸의 리듬이 닮은 모녀. 엄마가 딸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순간에만 두 사람의 관계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익숙함에도 이 가족의 표정이 있다.

이 모녀는 서로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영심에게는 아픈 어머니가 있고 비울 수 없는 가게가 있다. 주리에게 일을 맡기는 결정에는 당장의 사정도 들어 있다. 한 사람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이 잠깐 맡으면서, 그동안 모르던 일과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주리의 무기력도 한 번의 사건으로 모두 해명되지는 않는다. 주리는 실연을 겪었고, 팬데믹을 지나는 중이다. 영화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원인을 하나로 못 박지 않는다. 심달기는 주리에게 우울함이 있으면서도 명랑한 면이 함께 있다고 보았다. 방에 오래 머문 사람에게도 농담을 받아들이고 누군가를 궁금해할 기분은 남아 있다.

김밥집의 하루는 그런 여지를 마련한다. 손님을 맞고, 말을 듣고, 무엇을 빼고 넣을지 기억한다. 거창한 결심을 말하기에는 아직 막막해도, 다음에 온 손님에게 맞는 김밥 한 줄은 만들 수 있다. 〈말아〉가 보고 싶게 하는 것은 씩씩하게 재기에 성공한 주리의 모습보다, 아직 서툰 주리가 내일은 누구와 어떤 말을 나눌지다. 단무지를 빼주는 정도의 호의로도 하루는 전날과 조금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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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