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과학자들이 우주선을 폭파한다. 안에 있는 비행사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몸을 빼앗긴 그는 지구에 돌아가는 대신 죽음을 청한다. 그런데 …
지상의 과학자들이 우주선을 폭파한다. 안에 있는 비행사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몸을 빼앗긴 그는 지구에 돌아가는 대신 죽음을 청한다. 그런데 폭발 뒤 해변에 팔 하나가 남는다. 우주선 한 대를 없애고도 위험은 다 사라지지 않았다.
허버트 L. 스트록의 〈크롤링 핸드〉에서 의대생 폴은 그 팔을 주워 자신이 사는 하숙집으로 가져간다. 로드 로렌이 연기하는 폴은 팔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관객은 우주선에서 벌어진 일을 이미 보았다. 그가 팔을 자기 방으로 가져가는 동안, 우주비행사를 죽게 한 힘까지 집 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된다.

이 팔은 우주복 소매와 장갑에 싸여 있다. 사진 속 모래밭에 놓인 모습만 보면, 주인 없는 옷가지에 가깝다. 그러나 소매 안에 팔이 있다는 것을 알면 주인 잃은 옷으로만 볼 수 없다. 익숙한 신체의 윤곽이 남아 있는데 그 몸을 가진 사람은 없다. 영화의 괴물은 인간의 흔적을 그대로 달고 온다.
팔을 발견하는 장소는 해변이고, 가져가는 곳은 하숙집이다. 우주에서 시작한 사고가 사람이 쉬고 잠드는 곳으로 옮겨온다. 그 이동에는 폴의 선택이 끼어 있다. 들고 갈 수 있는 크기라는 점이 오히려 문제다. 거대한 우주선을 통째로 집에 옮길 수는 없지만 팔 하나는 가능하다. 영화는 그렇게 큰 사고를 작은 방까지 데려온다.
팔이 스스로 움직여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어디에 뒀는지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안전하지 않다. 처음에는 폴이 팔을 들고 원하는 곳으로 옮겼다. 이제는 사람이 정한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라고 믿을 수 없다. 작은 신체 일부를 찾아 집 안을 살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누가 누구를 다루는지도 뒤바뀐다.
하숙집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폴에게도 의심이 향한다. 사건에 남은 지문은 그가 아닌 우주비행사의 것으로 드러난다. 보통 지문을 확인하는 일은 현장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 여기서는 알게 된 이름 때문에 설명이 더 어려워진다. 우주선과 함께 죽은 사람의 손이 지상에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손에는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줄 지문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주인은 이미 죽었다. 우주비행사의 손이라는 사실을 밝혀도, 죽은 사람의 손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범인을 찾는 단서가 오히려 평범한 살인사건일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셈이다.
폴은 의심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만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팔에 깃든 힘이 그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수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는 것과, 그 일이 더 벌어지지 않게 막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가 된다. 관객도 폴을 걱정하는 동시에 그가 다른 사람을 해칠 가능성을 경계하게 된다.

함께 실린 인물 사진에서는 검게 강조된 눈 둘레와 벌어진 입이 눈에 띈다. 사람의 얼굴에 낯선 기색을 더하는 공포의 표현이다. 영화 속 위험도 팔 하나에만 머물지 않는다. 폴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팔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동안에도 폴의 행동을 놓칠 수 없다.
초록색 포스터는 신문 지면처럼 꾸며져 있다. 우주비행사와 살인사건을 알리는 큰 제목, 여러 인물의 사진이 잘린 팔 그림과 한 화면에 들어간다. 사건을 보고하는 형식을 빌려 엉뚱한 괴물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포스터가 내건 약속은 영화의 첫 장면과도 맞닿는다. 누군가 우주에서 무슨 일을 당했고, 그 결과가 지상까지 왔다는 순서다.

포스터를 보고 나면 괴물의 크기와 사건의 규모가 어울리지 않는 점도 우습게 느껴진다. 우주선까지 폭파해야 했던 위험이 이제는 방 안 어딘가에 숨을 수 있는 손 하나에 남아 있다. 그 작음 때문에 일어나는 소동이 황당하면서도, 어디에 숨었는지 모른다는 조건은 집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걱정하게 만든다.
이런 SF 공포영화를 다른 영화와 함께 즐길 기회도 있었다. 1964년에는 로스앤젤레스 일대 극장과 드라이브인에서 다른 SF 영화와 함께 상영됐다. 1989년에는 영화를 보며 말을 보태는 코미디 프로그램 〈미스터리 사이언스 시어터 3000〉가 이 작품을 다뤘다. 괴물의 위협을 따라가는 영화에 코미디 프로그램의 논평이 더해진 셈이다.
손 하나가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을 무섭게 받아들일 수도, 그 황당함에 웃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영화는 그 손을 단순한 볼거리로만 두지 않는다. 해변에서 주워온 팔이 지문을 남기고 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처음의 기발한 발상이 하나의 사건으로 이어진다.
크롤링 핸드의 재미는 괴물을 크게 만드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들고 올 만큼 작고, 인간의 지문까지 가진 신체 일부가 정작 사람의 뜻과 무관하게 움직인다.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 손인데도, 그 손이 다음에 무엇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우주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하숙집의 불안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괴물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팔을 집에 가져오는 폴이 답답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도 같은 힘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무모한 선택을 탓하는 것만으로 상황을 정리할 수 없다. 우주선 폭파로 끝난 줄 알았던 위험이 어디까지 번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황당한 설정을 끝까지 따라보게 한다.
◆ 〈케이프 커내버럴의 몬스터〉 (1960, 필 터커) — 외계 존재가 인간의 시신을 차지하고 미사일 발사를 방해한다. 크롤링 핸드처럼 외계의 힘이 사람의 몸을 차지하지만, 그 몸으로 벌이는 일은 다르다. 한쪽에서는 하숙집의 살인사건으로, 다른 쪽에서는 우주기지의 위협으로 이야기가 커지는 과정을 비교해볼 수 있다.
◆ 〈유카 플랫의 야수〉 (1961, 콜먼 프랜시스) — 핵실험장으로 쫓겨 들어간 과학자가 방사선에 노출돼 괴물로 변한다. 낯선 환경을 통과한 뒤 사람의 몸이 위험의 근원이 된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변한 사람을 주변에서 어떻게 알아보고 대응하는지 살펴볼 만하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