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안지호)은 아버지 무진(안내상)의 눌린 뒷머리를 정돈해준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고, 어머니 소연(윤유선)은 그를 피해 집을 나갔다. 그런데도 아들의 손길…
훈(안지호)은 아버지 무진(안내상)의 눌린 뒷머리를 정돈해준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고, 어머니 소연(윤유선)은 그를 피해 집을 나갔다. 그런데도 아들의 손길은 다정하다. 무진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훈 안에 함께 있다. 서정원 감독의 〈검은 소년〉에서 아버지에게서 멀어지는 일은 마음까지 단번에 끊어내는 일이 되지 못한다.
1997년, 고등학생 훈은 부모의 별거 사이에서 누구와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아버지는 자꾸 어머니의 행방을 묻고, 학교에서는 동급생이 그를 괴롭힌다. 문학 동아리에서 책을 읽고 작은 수첩에 자기 이야기를 쓰는 시간이 그나마 훈을 숨 쉬게 한다.

훈도 계속 순하게 버티지만은 않는다. 거듭되는 폭력 속에서 날카로워지고, 무진과 냉랭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 화를 어떻게 표현할지가 훈 자신의 문제가 된다.
훈을 위협하는 동급생 기철(노태엽)과 문학 동아리의 연희(신세휘)는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는 방식부터 다르다. 기철에게는 폭력이, 연희에게는 문학이 있다. 서정원은 두 사람을 훈이 선택할 수 있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연희는 동아리에서 『데미안』을 읽는다. 훈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은, 집과 학교에서 겪은 일을 당장 끝내주지는 않지만 그 일에 반응하는 방법을 바꿀 가능성을 준다.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 부모 중 누구와 살 것인지. 어른들이 훈에게 던지는 질문에는 그들의 사정이 먼저 들어 있다. 작은 수첩에 자기 이야기를 적는 훈에게는 자신이 겪은 일을 스스로 말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버지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남아 있더라도, 아버지처럼 분노를 내보낼 필요는 없다. 〈검은 소년〉이 놓지 않는 것은 가족을 걱정하느라 자기 마음을 미뤄둔 아이가 자신의 말을 갖게 될 가능성이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