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다르크를 재판하는 얼굴들 | MovieLAB LAB

신의 뜻을 따른다는 잔 다르크 앞에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같은 신앙의 말을 쓰는데 대화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잔 다르크의 수난〉에서 잔은 자신이 믿는 것을 …

잔 다르크를 재판하는 얼굴들 | MovieLAB LAB

신의 뜻을 따른다는 잔 다르크 앞에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같은 신앙의 말을 쓰는데 대화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잔 다르크의 수난〉에서 잔은 자신이 믿는 것을 설명해야 하고, 심문관들은 그 설명을 판단한다.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는 질문과 대답 사이에 얼굴을 놓는다. 무엇을 말했는지만큼 그 말을 어떤 얼굴로 받는지가 중요해지는 재판이다.

짧게 깎은 머리에 거친 옷을 입은 여성이 고개를 숙이고 가슴 앞에 끝이 둥근 십자가 모양의 물건을 쥐고 있다. 밝은 벽을 배경으로 한 흑백 사진.

질문하는 얼굴, 대답해야 하는 얼굴

드레이어는 역사 속 잔 다르크의 생애 전체를 차례로 옮기지 않았다. 재판 자료를 연구하고, 긴 심문 과정을 영화 속 하루로 압축했다. 갑옷을 입고 전장으로 나가는 영웅보다 대답을 요구받는 젊은 여성을 가까이 두었다. 이미 유명한 이름의 주인공인데도, 화면에서는 여러 사람을 혼자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먼저 보인다.

마리아 팔코네티의 얼굴을 크게 보여주는 화면은 심문하는 얼굴들과 번갈아 나온다. 한 사람이 묻고 다른 사람이 대답한다는 흐름은 알 수 있다. 다만 시선의 방향을 따라 각각 어디에 있는지 짚으려 하면 매끄럽게 맞지 않는 대목이 있다. 잔이 간수에게 재판관들을 불러달라고 하는 장면에서도 시선과 화면 방향이 어긋난다. 상대를 알아보는 일과 두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 꼭 함께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 잔의 말을 듣는 이들의 표정이 끼어든다. 방 전체의 배치를 충분히 아는 자리에서 재판을 내려다보는 대신, 한 얼굴 다음의 다른 얼굴을 맞닥뜨리게 된다. 잔의 대답이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해진다. 클로즈업은 울고 있는 주인공에게만 가까이 가는 방법이 아니다. 대답을 요구하는 사람도 가까이서 보게 한다.

고리 모양의 관을 쓴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위를 바라보는 사진 아래 THE PASSION OF JOAN OF ARC라는 영문 제목이 적힌 포스터.

세트를 지어놓고 가까이 다가가기

이 영화에는 실제로 지은 세트가 있었다. 드레이어는 촬영 전에 세트 전체를 준비하고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이야기 순서대로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배우들이 머물 세계를 마련한 뒤, 그중 어디까지 보여줄지 따로 골랐다.

미술에는 헤르만 바름이 참여했다. 중세의 세밀화를 참고한 공간은 현실의 건물을 그대로 복제한 모습과 다르다. 창과 방의 형태에도 그림을 참고한 흔적이 있다. 얼굴 뒤에 보이는 흰 벽이나 건물의 일부를 보면, 공간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된 만큼만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흰 배경은 사람이 어느 방에 있는지 알려주는 단서가 적다. 대신 얼굴과 옷의 윤곽이 두드러진다. 화면이 바뀔 때 건물의 연결을 따라가기보다 눈앞의 사람을 먼저 보게 되는 것이다. 주변이 단순하다고 그 얼굴까지 쉽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눈을 들거나 내리는 모습, 말을 듣고 있는 동안의 입가를 무엇으로 받아들일지는 앞뒤의 대화와 함께 살펴야 한다.

돌이 깔린 바닥에 누운 여성 곁에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두 인물의 그림자가 뒤쪽 벽에 비친다.

팔코네티가 고른 표정들

드레이어는 배우들에게 분장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잔을 맡은 팔코네티뿐 아니라 성직자들을 연기한 배우들에게도 같은 조건을 적용했다. 가까운 화면에는 피부의 질감과 얼굴의 선이 남는다. 이 선택을 촬영감독 루돌프 마테가 화면으로 옮겼다. 드레이어는 마테가 클로즈업으로 심리적 드라마를 만들려는 뜻을 이해해주었다고 썼다.

팔코네티는 이미 파리 무대에서 활동하던 배우였다. 그는 드레이어와 함께 장면마다 몸짓과 표정을 골랐다. 얼굴을 꾸미지 않는 조건 안에서도 언제 시선을 옮기고 어떻게 상대의 말을 받을지 정하는 연기 작업이 있었다. 눈물만을 떼어 보기보다 질문을 듣는 동안과 대답을 내놓을 때의 얼굴을 함께 보면, 한 가지 감정으로 묶기 어려운 변화가 보인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하는 일과 그때 상대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하는 일은 다르다. 이 영화의 심문에서는 두 가지가 가까이 붙어 있다. 잔의 대답을 받아들이는 얼굴을 보고 나면, 다음 질문을 듣는 그의 얼굴도 달리 보일 수 있다. 재판의 결론을 아는 관객에게도 매번의 대화는 새롭게 진행된다.

그 얼굴들을 지금 볼 수 있기까지 필름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첫 네거티브는 1928년 베를린 현상소의 화재로 소실됐고, 다른 테이크로 만든 두 번째 네거티브도 이듬해 불탔다. 1981년 노르웨이에서 원래 판본의 프린트가 발견됐다. 이후 복원 작업은 이 프린트를 바탕으로 이어졌다.

감상 포인트

◆ 대답을 받는 사람 — 잔의 얼굴을 본 다음에는 그 말을 듣는 심문관의 얼굴도 살펴보자. 같은 대답이 상대에게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지는지 표정이 궁금해진다. 잔의 믿음만큼 듣는 사람의 태도도 대화의 방향을 바꾼다. 질문의 내용과 이어지는 반응을 함께 보면,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심문하는 상황이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 시선이 이어지는 방식 — 두 인물이 번갈아 나올 때 어느 쪽을 보고 있는지 가볍게 따라가보자. 말하는 상대는 알겠는데 서로의 위치는 선뜻 정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잔이 간수에게 재판관을 불러달라고 하는 장면에서도 그런 차이를 볼 수 있다. 공간을 빠짐없이 맞추려 하기보다, 인물들이 화면에서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 보자.

◆ 얼굴 뒤에 남은 공간 — 흰 벽과 창, 건물의 일부가 얼굴 뒤에서 얼마나 보이는지 살펴보자. 넓은 공간을 한 번에 보여주는 화면과 가까운 얼굴을 이어 보면 같은 장소에서도 주목하는 대상이 달라진다. 배경이 단순한 대목에서는 옷의 경계와 머리의 방향도 선명해진다. 공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여기기보다 무엇이 남았는지 볼 만하다.

◆ 눈물 전후의 얼굴 — 울고 있는 모습에만 머물지 않고 그 앞에서 질문을 듣는 때와 뒤이어 대답하는 때를 함께 보자. 시선과 입가, 몸을 두는 방식이 대화 안에서 달라진다. 분장을 하지 않은 얼굴에도 배우가 고른 표현이 있다. 한 감정의 강도만으로 팔코네티의 연기를 판단하기보다 상대의 말에 응하는 과정을 따라가면 좋다.

관련 작품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920, 로베르트 비네) — 헤르만 바름이 발터 라이만, 발터 뢰리히와 함께 만든 세트와 의상이 강하게 눈에 들어오는 영화다. 얼굴 뒤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에 관해 다른 선택을 볼 수 있다. 두 작품을 배경이 있는 영화와 없는 영화로 나누기보다, 인물과 만들어진 공간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 견주어볼 만하다.

◆ 노스페라투 (1922, F. W. 무르나우) — 낯선 성으로 향한 후터가 오를로크 백작을 만난다. 인물을 바라보는 동안 그가 머무는 공간도 경계하게 된다. 가까운 얼굴이 대화의 긴장을 만드는 〈잔 다르크의 수난〉과 함께 보면, 한 사람을 화면에 등장시키고 주변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방법을 살필 수 있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