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망토 안쪽으로 붉은색이 길게 드러난다. 흰 셔츠와 나비넥타이, 챙 있는 모자를 갖춘 남자는 파란 옷을 입은 하녀 옆에 서 있다. 〈죽음에 겁먹다〉에서 벨라 루고시가 연기하는…
검은 망토 안쪽으로 붉은색이 길게 드러난다. 흰 셔츠와 나비넥타이, 챙 있는 모자를 갖춘 남자는 파란 옷을 입은 하녀 옆에 서 있다. 〈죽음에 겁먹다〉에서 벨라 루고시가 연기하는 마술사 레오니드다. 〈드라큘라〉의 백작으로 그를 기억한다면 익숙한 차림부터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망토의 안감과 옆 사람의 옷이 함께 색을 띤다. 흑백 공포영화의 얼굴을 떠올리면서도, 그 얼굴을 다른 인물들 사이에 놓인 배우의 모습으로 다시 보게 된다.
루고시가 드라큘라를 연기한 장소는 영화관보다 극장이 먼저였다. 그는 1927년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백작 역을 맡았고, 1929년에는 순회공연으로 로베로 극장 무대에도 섰다. 1931년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같은 인물을 관객 앞에서 거듭 연기한 것이다. 드라큘라는 어느 날 카메라 앞에서만 만들어진 배역이 아니었다.
그 이력을 알고 1947년의 레오니드를 보면 망토의 쓰임이 흥미로워진다. 흡혈귀 백작에게 어울리는 옷이 마술사에게도 자연스럽게 맞는다. 망토를 두른 남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가 무엇을 할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루고시의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마술이라는 직업에 의심이 하나 더 붙는다. 단순히 묘기를 보여주는 사람일까, 남에게 알리지 않은 능력이 있을까. 배우의 지난 배역이 새 인물에 대한 질문을 먼저 만드는 셈이다.
영화의 포스터도 그런 기대를 이용한다. 루고시의 얼굴을 크게 놓고 그의 이름을 출연진 맨 앞에 적는다. 그 옆에는 녹색 가면과 총을 든 여자가 있다. 얼굴만으로 주의를 끌면서도 구체적인 사건은 감춘 배치다. 배우가 이미 지닌 유명세와 이번 영화가 새로 마련해야 할 미스터리가 한 장에 함께 있다.

정작 이 영화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루고시가 아니다. 영안실에 누운 로라가 자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목소리로 들려준다. 크리스티 카반의 영화는 그녀의 몸과 목소리를 갈라놓는다. 움직일 수 없는 여자가 과거의 인물들을 다시 화면으로 불러낸다.
레오니드는 의사 반 이의 사촌이자 오랜만에 돌아온 방문객이다. 조지 주코가 맡은 의사는 집 안에 머무는 사람이고, 루고시의 마술사는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이다. 로라는 이미 남편과 시아버지인 의사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의심한다. 수상한 방문객이 나타나기 전부터 그 집이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다. 의사는 이 집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고, 마술사는 친척이라는 관계를 내세워 들어온다. 이 차이가 두 배우의 자리를 구분한다.
원래 알고 있던 루고시의 이미지에만 기대면 레오니드에게 모든 의심을 모으기 쉽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로라의 처지에서 보면 가까이 있는 가족부터 믿기 어렵다. 익숙한 공포 배우의 얼굴이 시선을 끌고, 화자의 불안이 그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린다. 이 엇갈림 때문에 레오니드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어떤 관계인가라는 질문과 떨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시네컬러 화면에서는 망토 하나를 보더라도 검은 겉감과 붉은 안감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옆에 선 하녀의 파란 원피스와 흰 앞치마도 또렷한 구분을 만든다. 루고시의 얼굴만 따로 떼어 바라볼 때와 달리, 서로 다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 방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망토와 모자가 그를 여전히 눈에 띄게 만드는 동안, 옆 사람의 일상복은 그 차림을 공연 의상처럼 보이게도 한다. 레오니드는 집 안에 들어와 있지만 그곳의 평범한 거주자로 섞이지 않는다. 색은 인물을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차림도 드러낸다.
다른 실내 장면의 파란 벽과 흰 약품장은 또 다른 색의 조합을 만든다. 배경의 푸른색 앞에서는 검은 모자와 정장이 하나의 윤곽으로 모인다. 앞서 보았던 붉은 망토 안감은 어두운 옷 안에서 다시 눈길을 나누었다. 같은 컬러 영화 안에서도 옷과 배경의 조합은 서로 다른 것을 보게 한다.

잘 아는 배우를 다시 만날 때는 얼굴을 알아본 뒤 배역을 더 읽지 않게 되기도 한다. 이 영화의 루고시는 그 익숙함을 조금 늦춰 볼 만한 경우다. 마술사라는 직업, 친척이라는 방문 이유, 다른 사람의 회상 속에 놓인 자리까지 따라가면 백작의 얼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조건들이 생긴다. 차림과 관계를 따라가는 동안, 익숙했던 배우가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 망토와 일상복 — 루고시의 검은 망토와 붉은 안감, 옆 인물의 파란 옷이 한 화면에 놓일 때를 보자. 각 색은 인물을 구별하면서도 그들이 같은 방에 있음을 보여준다. 마술사의 차림이 주변의 일상복과 얼마나 떨어져 보이는지가 레오니드의 존재감을 이해하는 실마리다.
◆ 로라의 몸과 목소리 — 오프닝에서 보이는 몸과 들리는 이야기는 서로 다른 상태에 있다. 누워 있는 여자를 보는 데서 그녀가 겪은 일을 듣는 쪽으로 관람의 위치가 옮겨 간다. 이후 인물들이 등장할 때도 그들의 행동과 로라가 느끼는 불안을 구별해 보면 미스터리의 출발점을 놓치지 않는다.
◆ 의사와 방문객 — 주코와 루고시가 같은 집에 있지만 같은 자격으로 머무는 것은 아니다. 누가 원래 그곳에 살고 있었고 누가 밖에서 돌아왔는지 떠올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보자. 비밀을 가진 듯한 얼굴뿐 아니라 집 안에서 각자가 차지한 위치가 의심의 방향을 바꾼다.
◆ 얼굴 밖의 색 — 루고시의 얼굴에서 잠시 눈을 떼고 옷과 벽, 가구의 색을 함께 보자. 한 장면의 푸른 배경과 다른 장면의 붉은 의상이 같은 분위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색감에 하나의 형용사를 붙이기보다 인물이 배경에서 두드러지는 곳을 보면 컬러 촬영의 차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화이트 좀비 (1932, 빅터 핼퍼린) — 루고시는 다른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르장드르를 연기한다. 타인을 지배하는 힘이 배역의 중심에 놓인 흑백 영화다. 레오니드의 정체를 의심하며 보았다면, 여기서는 그 힘이 어떤 행동으로 나타나는지 비교할 수 있다.
◆ 부두 맨 (1944, 윌리엄 보딘) — 죽은 아내를 되살리려는 박사를 루고시가 맡고, 조지 주코도 함께 출연한다. 〈죽음에 겁먹다〉보다 앞선 두 배우의 만남이다. 같은 얼굴들이 다른 직업과 목적을 맡았을 때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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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