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아내를 되살리려 하고, 한 사람은 의식을 집행하며, 또 한 사람은 북을 친다. 〈부두 맨〉은 공포 배우 셋을 똑같은 악당으로 세우지 않는다. 벨라 루고시의 말로우 박사…
한 사람은 아내를 되살리려 하고, 한 사람은 의식을 집행하며, 또 한 사람은 북을 친다. 〈부두 맨〉은 공포 배우 셋을 똑같은 악당으로 세우지 않는다. 벨라 루고시의 말로우 박사, 조지 주코의 니콜라스, 존 캐러딘의 토비는 납치와 의식에 각기 다른 역할로 가담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젊은 여성의 생명력을 말로우의 아내에게 옮기는 일이다. 한 사람을 되찾겠다는 바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일상을 빼앗긴다. 세 사람이 의식에서 하는 일을 따라가다 보면, 아내를 되찾으려는 말로우와 그 앞에 붙잡혀 온 여성들의 처지가 함께 눈에 들어온다.

이야기의 바깥에는 실종 사건을 영화로 써보라는 제안을 받은 시나리오 작가 랠프가 있다. 하지만 그는 결혼을 앞두고 약혼녀를 만날 생각에 더 마음이 쏠려 있다. 신문에서 읽던 일이 자기 삶으로 들어오는 계기는 길에서 얻어 탄 차다. 차가 멈추고 랠프가 도움을 구하러 간 사이, 운전자 스텔라가 사라진다.
스텔라를 데려가는 것은 말로우의 조수들이다. 도로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가 납치의 길이 된다. 바깥에서는 차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집 안에서는 이미 다음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실종자를 찾는 사람과 붙잡아둔 사람이 가까이 있는데도, 그 사이에 감춰진 출입구가 있다.
말로우는 아내 에블린이 오래전에 죽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녀의 몸은 젊은 모습으로 남아 있고, 그는 다른 여성의 영혼과 살려는 의지를 그 몸에 옮기려 한다. 이 집의 이상함은 죽은 사람을 보존했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을 데려와 그 죽음을 되돌리는 수단으로 쓴다는 데 있다.
루고시가 맡은 말로우는 희생자를 최면에 걸리게 하며 의식을 준비한다. 그의 관심은 아내가 다시 반응할 수 있는지에 쏠려 있다. 하지만 아내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따라갈수록, 그 앞에 데려온 여성이 무엇을 빼앗기는지도 함께 보아야 한다. 같은 의식이 말로우에게는 아내를 되찾을 기회이고, 납치된 여성에게는 자신의 의지를 빼앗길 위협이다.
의식이 뜻대로 되지 않자 말로우는 다른 희생자를 찾는다. 한 번의 실패가 멈출 이유가 되지 않고, 다음 사람을 데려올 이유가 된다. 그가 아내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반복이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른 사람을 계속 바꿔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로우를 사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죄자가 된 사람으로만 보면 그 선택이 흐려진다. 그는 아내에게 쏟는 관심을 납치된 여성에게는 주지 않는다. 살리고 싶은 한 사람과 그 일을 위해 소모해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을 나누고 있다. 루고시의 진지한 태도는 이 잘못된 구분을 인물 자신은 얼마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느끼게 한다.

니콜라스는 말로우가 바라는 결과를 위해 의식을 수행한다. 주코의 역할을 단순히 박사의 지시를 받는 조수로만 보면, 두 사람 사이의 차이를 놓친다. 되살리고 싶은 개인적 사정은 말로우에게 있지만, 그 바람을 실현하는 의식에는 니콜라스가 필요하다. 말로우의 집착은 혼자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 아니라 공범이 함께 실행하는 일이다.
캐러딘의 토비는 납치에 가담하고 의식에서는 북을 친다. 말로우의 최면, 니콜라스의 의식 진행 옆에 반복되는 타격과 소리가 놓인다. 얼굴과 말에 집중하던 시선이 북을 치는 몸으로 옮겨간다. 세 배우의 차이는 막연히 누가 더 무서운가를 겨루는 데서보다, 한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누가 무엇을 하는지 볼 때 선명해진다.
이 조합에는 기묘하게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도 있다. 박사는 결과를 원하고, 의식을 집행하는 사람과 북을 치는 사람은 각자의 역할을 이어간다. 그 진지함과 동작의 반복을 보다가 우스운 기분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의식의 재료로 삼은 여성은 이 공연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이 아니다. 세 남자의 과장된 행위가 눈에 띄는 만큼, 그 앞에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의 처지도 드러난다.
감독 윌리엄 보딘의 영화에서 이 의식은 실제 종교를 설명하기 위한 장면이라기보다 최면과 생명력 이전이라는 허구의 사건을 벌이는 장치다. 영화 속에서 어떤 힘이 누구에게 행사되는지를 따라가면, 생소한 이름이나 도구 자체를 공포로 받아들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이 집에서 두려운 것은 의식의 낯섦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마음대로 데려다 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 절에는 마지막 장면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건을 겪은 랠프는 그 경험을 시나리오로 만들어 제작자에게 제출한다. 그리고 주연으로 벨라 루고시를 추천한다. 우리가 방금 말로우 박사로 보았던 배우의 이름이 영화 안의 대화에 들어오는 것이다. 등장인물이 자기 이야기의 배우를 골라주는 순간, 배우를 알아보는 관객에게 농담이 성립한다.
이 농담은 첫머리의 집필 의뢰를 되돌려 받는다. 처음에는 실종 사건보다 결혼이 급했던 작가가, 직접 휘말린 사건을 영화의 재료로 가져온다. 밖에서 보던 이야기에 들어갔다가 그것을 다시 밖으로 꺼내는 셈이다. 납치와 의식의 공포를 연기하던 영화가 잠깐 배우와 제작의 세계를 드러내며 웃음을 건넨다.

〈부두 맨〉에서는 익숙한 배우 셋이 어떤 역할로 맞물리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루고시가 맡은 박사의 바람, 주코가 진행하는 의식, 캐러딘이 북을 치며 보태는 소리와 움직임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장면을 채운다. 배우들의 명성을 나란히 세우는 것보다 한 장면 안에서 하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따라가는 편이 이 만남을 더 생생하게 만든다.
말로우가 아내를 되찾고 싶어 하는 마음에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가 간절해질수록 또 다른 여성이 희생될까 봐 걱정스럽다. 그에게는 의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인데, 보는 쪽에서는 그 시도를 멈추기를 바라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되살리려는 소망이 누구에게 공포가 되는지, 세 배우의 기묘한 의식은 그 차이를 보여준다.
◆ 〈화이트 좀비〉 (1932, 빅터 할페린) — 루고시가 맡은 르장드르는 사람의 의지를 빼앗아 지배한다. 한 여성을 차지하려는 남자의 부탁도 그 힘에 기대게 된다. 〈부두 맨〉의 아내를 되살리려는 소망과 나란히 보면, 원하는 대상은 달라도 타인의 의지를 이용하는 행동은 닮아 있다. 루고시가 지배하는 자와 원하는 결과에 매달리는 자를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하는지 비교할 만하다.
◆ 〈유인원 인간〉 (1943, 윌리엄 보딘) — 루고시가 실험으로 유인원처럼 변한 과학자를 연기한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몸에서 치료 재료를 얻으려 한다. 〈부두 맨〉에서는 아내를 위해 넘던 선을 여기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 넘는다. 되돌리고 싶은 몸이 누구의 것인지에 따라 인물의 절박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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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