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크 라이블리는 감독의 옷을 눈여겨봤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를 준비하던 때였다. 폴 페이그는 평소 조끼까지 갖춘 정장을 즐겨 입었고, 의상을 상의하던 라이블리는…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감독의 옷을 눈여겨봤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를 준비하던 때였다. 폴 페이그는 평소 조끼까지 갖춘 정장을 즐겨 입었고, 의상을 상의하던 라이블리는 자신도 감독처럼 입고 싶다고 말했다. 의상 디자이너 러네이 에얼릭 칼퍼스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영화 속 에밀리는 줄무늬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아이를 데리러 오는 엄마가 됐다.
학부모라는 말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옷차림이다. 패션 홍보 일을 하는 에밀리에게는 학교 밖의 생활이 있고, 그가 나타나면 그 생활까지 궁금해진다. 페이그의 다른 영화 〈스파이〉(2015)에서 멜리사 매카시가 맡은 수잔은 정반대의 옷을 받는다. 낯선 곳에서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을 만한 관광객 차림이다. 한 사람은 시선을 모으고 다른 사람은 시선을 피해야 한다. 감독은 배우들과 그 차림새를 의논했다.

에밀리의 집에서는 정장이 뜻밖의 방식으로 풀린다. 에밀리는 마티니를 만들다가 셔츠처럼 보이던 앞판을 빼낸다. 온전한 셔츠가 아니라 목과 가슴 부분만 덧댄 옷이다. 칼퍼스는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라이블리의 몫이 컸다고 말했다. 잘 차려입은 사람의 느긋한 몸짓에 옷의 작은 속임수가 끼어든다.
에밀리를 잘 모르는 스테파니에게는 이 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는 일부터 새로운 경험이다. 학교에서 본 정장 차림과 집에서 마티니를 만드는 모습 사이로 그 사람의 생활을 조금 들여다본 셈이다. 그런데 몇 가지 사적인 모습을 안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에밀리가 사라진 뒤에는 그때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들까지 되짚게 된다.
〈스파이〉의 수잔은 CIA에서 현장 요원을 돕던 분석가다. 직접 잠입 임무에 나서자, 영화에서 보던 멋진 첩보원과는 거리가 먼 차림을 받는다. 페이그가 생각한 것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관광객이었다. 매카시는 가발을 고르며 직접 사진을 보내왔고, 감독은 잿빛 곱슬 가발을 쓴 모습에 크게 웃었다고 회고했다. 에밀리의 정장이 궁금증을 만든다면 수잔의 위장은 아예 관심을 끌지 않는 쪽을 노린다.
웃기는 겉모습과 일을 못하는 사람은 다른 문제였다. 페이그는 수잔의 실전 감각이 무뎌져 있더라도, 그를 무능한 인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수잔은 이미 다른 요원의 임무를 도와온 사람이다. 관광객 차림만 봐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경력을 갖고 있다.
페이그는 매카시의 조용하고 다정한 면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도 했다. 익숙한 배우의 가장 시끄러운 모습만 다시 요구한 것이 아니다. 배우를 알고 지낸 경험이 새 인물을 쓰는 데 도움이 된 셈이다. 처음부터 출연 일정이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매카시는 초고를 읽은 뒤 수잔을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배우가 보내온 가발 사진처럼, 배역을 함께 구체화할 재료가 오갔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스테파니는 엄마들을 위한 영상 블로그를 운영한다. 애나 켄드릭이 연기한 이 인물을 보면 자녀와 살림을 잘 돌보는 일이 생활의 중심인 듯하다. 페이그는 그에게서 자기 어머니를 떠올렸다. 집에 머물던 어머니는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을 동경했다. 감독이 기억하는 감정은 스테파니가 에밀리에게 끌리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두 사람은 같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지만, 하루를 보내는 방식은 다르다.
켄드릭은 실제 엄마들의 영상 블로그를 찾아봤다. 요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배우는 화면 속 능숙한 모습부터 배워야 했다. 그런데 배우의 눈에는 그토록 밝고 흠잡을 데 없는 생활이 조금 불편하게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보는 사람을 향한 친절이 빈틈없이 이어지면 그 밖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스테파니가 카메라를 향해 보여주는 자신과 에밀리 앞에서 보이는 자신을 함께 볼 이유다.
라이블리는 처음 만났을 때의 두 사람을 외로운 여자들로 이해했다. 출발부터 서로를 이겨야 하는 경쟁자로 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나중에 상대를 의심하는 일도 곤란해진다.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에 관해, 정작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친구에게 반한 마음이 친구를 찾는 수고로 바뀌는 미스터리다. 스테파니는 에밀리의 실종을 알리고 남편 션과 함께 행방을 알아본다. 처음에는 친구를 많이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아는 줄 알았던 모습이 오히려 판단을 어렵게 한다. 라이블리의 정장이나 켄드릭의 환한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 인상이 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살펴볼 만하다.

◆ 아이를 데리러 온 옷차림 — 에밀리와 스테파니가 학교에서 만나는 모습을 보자. 두 사람 모두 아이 때문에 그곳에 왔지만, 옷을 입고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은 다르다. 에밀리의 정장을 멋진 의상으로 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테파니가 이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와 함께 살펴보면 좋다.
◆ 마티니를 만들다가 벗는 앞판 — 에밀리가 집에서 옷을 풀어놓는 과정에는 작은 장난이 있다. 셔츠라고 생각했던 것이 일부만 덧댄 옷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처음 본 정장의 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옷을 입은 사람이 낯선 손님 앞에서 얼마나 편하게 행동하는지 함께 보자. 의상 하나가 계속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행동을 따라 달라진다.
◆ 스테파니의 카메라 앞과 밖 — 영상 블로그를 진행할 때 스테파니가 말을 건네는 대상은 화면 너머의 시청자다. 에밀리와 이야기할 때는 눈앞의 한 사람에게 반응해야 한다. 두 경우에 켄드릭의 밝은 모습이 똑같이 느껴지는지 비교해보자. 익숙하게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과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의 차이를 찾으면, 친절한 첫인상 안에서도 여러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실종 전에 가까워진 순간들 — 에밀리가 사라진 뒤의 단서만 좇기 전에, 스테파니가 언제부터 그를 친구로 여기게 됐는지 돌아보자. 함께 보낸 시간에 비해 상대를 잘 안다는 믿음이 빨리 생기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만하다. 자신이 모르는 친구의 면을 다른 사람에게서 들을 때, 스테파니가 받아들이는 말과 선뜻 믿지 못하는 말을 비교하면 수사와 우정이 겹치는 곤란함이 드러난다.
◆ 아이 씨 유 (2019, 애덤 랜들) — 소년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의 집에서도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부부의 불화로 이미 흔들리던 집에 또 다른 불안이 스며든다. 가까운 사이의 갈등과 바깥의 위험이 겹친다는 점에서, 친구와 남편을 알아보려는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미스터리와 나란히 볼 만하다.
◆ 샤레이드 (1963, 스탠리 도넌) — 남편을 잃은 여자가 파리에서 낯선 남자의 도움을 받는다. 오드리 헵번의 옷차림과 캐리 그랜트의 매력에 눈길이 가면서도, 누구를 믿어야 할지는 쉽게 정해지지 않는다. 보기 좋은 사람에게 먼저 마음이 가는 것과 그 사람을 믿는 것이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 비교할 수 있다.
◆ 버닝 (2018, 이창동) — 종수는 해미를 통해 부유한 벤을 만난다. 해미가 사라지자 벤을 바라보던 호기심과 불편함이 의심으로 바뀐다. 타인의 생활을 부러워하거나 낯설어하는 마음이 그 사람에 관한 판단에 끼어드는 영화다. 두 작품에서 누가 누구의 생활을 들여다보는지 따라가면 미스터리를 다르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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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