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패션 하우스를 이끌게 된 디자이너에게 아버지의 부고가 도착한다. 〈후계자〉의 엘리아스(마르크 앙드레 그롱댕)는 캐나다를 떠나 파리에서 자기 이름을 알린 남자다. 오랫동안 연…
유명 패션 하우스를 이끌게 된 디자이너에게 아버지의 부고가 도착한다. 〈후계자〉의 엘리아스(마르크 앙드레 그롱댕)는 캐나다를 떠나 파리에서 자기 이름을 알린 남자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몬트리올로 돌아가는 길은, 성공을 고향에 자랑하러 가는 여행과 거리가 멀다. 이미 끝냈다고 여긴 가족 관계를 다시 마주해야 한다.
영화는 아버지의 집에 가기 전, 그가 파리에서 누리는 성공부터 보여준다. 거대한 무대를 따라 모델들이 걷고, 그 모든 것을 만든 남자가 박수를 받는다. 잠시 뒤에는 같은 사람이 아버지가 남긴 집을 정리해야 한다. 〈후계자〉는 이 두 장소의 거리를 이용하는 스릴러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사람도 가족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한 남자의 귀향을 통해 차츰 체감하게 한다.
엘리아스가 맡은 일은 단순한 승진이 아니다. 세상을 떠난 패션 하우스 창립자의 뒤를 이어 자신의 취향과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다. 영화 초반에는 촬영을 앞두고 모델을 교체한다. 전임자가 내세웠던 얼굴 대신 자신이 고른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옷을 잘 만드는 능력에 그치지 않고, 누구를 사람들 앞에 내보낼지 결정할 권한까지 그에게 주어져 있다.
그 선택에는 후임자로서 자기 색깔을 보여주려는 의지가 있다. 동시에 선택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일방적인 통보다. 감독은 엘리아스를 소개하면서 능력과 권력을 함께 보여준다. 그가 창작자로서 얼마나 새로워 보이는지에 감탄하다가도, 그 새로움을 위해 누군가는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그의 성공을 처음부터 마냥 축하하기 어려운 작은 대목이다.
파리에서는 그가 일을 진행하면 사람들이 함께 움직인다. 아버지가 살던 곳에는 그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장례와 유품 정리는 스스로 처리해야 할 사적인 일이다. 성공한 디자이너라는 지위가 여기서는 쓸모가 없다. 집 안에 무엇이 남았는지 알아보고, 그것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하는 아들이 있을 뿐이다.
연출을 맡은 자비에 르그랑은 엘리아스를 고립시키기 위해 프랑스와 캐나다 사이에 바다를 두었다고 설명했다. 가까운 고향이라면 잠깐 다녀오면 그만일 수 있다. 그러나 엘리아스는 나라를 옮겨야 한다. 자신이 만든 생활에서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익숙해야 할 집을 낯선 장소로 만든다.

엘리아스는 가슴 통증에 시달린다. 아버지에게 심장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도 그를 불안하게 한다. 가족과 멀리 지내며 삶을 새로 꾸렸어도, 자기 몸 안에 아버지와 닮은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만큼은 피하기 어렵다. 영화는 이 걱정을 긴 설명보다 몸의 반응으로 전한다.
그롱댕의 연기는 이 스릴러를 가까이 느끼게 한다. 파리에서 자기 일을 해내던 사람이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고, 급해질수록 판단도 흐려진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주인공을 믿고 따라가는 영화와는 다른 긴장이다. 이 남자가 버텨내기를 바라면서도, 그가 지금 내리는 결정을 믿어도 될지 불안해진다.
르그랑은 이 배역을 두고 눈물과 숨 막힘까지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고통은 단정한 표정 하나로 처리되지 않는다. 그롱댕이 초조함을 몸으로 드러낼수록, 관객도 잠시 상황을 정리해볼 여유를 잃는다. 긴장은 사건의 정보가 늘어나는 데서만 생기지 않는다. 다음 행동을 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숨부터 골라야 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일이 고되다.

제목의 후계자는 두 자리를 가리킨다. 엘리아스는 패션 하우스를 물려받을 사람으로 선택됐고,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남겨진 일을 처리해야 할 아들이 된다. 하나는 오랫동안 원했던 자리다. 다른 하나는 원치 않는다고 해서 간단히 사라지지 않는다. 두 역할이 같은 사람에게 겹치면서, 성공이라는 말도 처음과 다르게 들린다.
르그랑은 전작 〈아직 끝나지 않았다〉에서 가족 안의 폭력을 다뤘다. 이번에는 가족을 떠난 뒤의 삶까지 시야를 넓힌다. 엘리아스는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되려고 멀리 왔고, 새 직업과 이름으로 인정도 받았다. 그에게 장례는 과거와의 마지막 접촉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집을 정리하는 동안, 자신이 알던 아버지와 자신의 삶을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이 생긴다.
엘리아스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차분히 정리할 시간이다. 그런데 그의 몸부터 그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슴이 아프고 숨이 막히는 남자에게 결정해야 할 일이 계속 생긴다. 이 영화의 가혹함은 그에게 일어난 사건의 크기에만 있지 않다. 충분히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순간에, 가장 생각하기 어려운 상태로 그를 몰아넣는다. 〈후계자〉의 귀향은 그래서 한 번의 놀라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 〈피어스〉 (2024, 넬리시아 로우) —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형과 다시 가까워지는 펜싱 선수의 이야기다. 가족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한 관계에 겹친다. 〈후계자〉의 귀향 뒤에 이어 보면, 가족을 안다고 믿는 일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다른 인물의 입장에서 살필 수 있다.
◆ 〈아들들〉 (2024, 구스타브 몰러) — 교도관의 일상에 사적인 과거가 끼어들면서 생기는 긴장을 다룬다. 직업 안에서는 능숙했던 사람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엘리아스의 공포에 가까이 갔다가 그의 행동 앞에서 망설였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에게도 비슷한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