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다정한 집을 아이들은 떠나야 한다 | MovieLAB LAB

잠든 아이의 등을 쓰다듬어 깨운다. 〈파편들의 집〉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한 아동 쉼터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따라간다.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에게 쉼터의 어른들은 잠자리와 식사…

이토록 다정한 집을 아이들은 떠나야 한다 | MovieLAB LAB

잠든 아이의 등을 쓰다듬어 깨운다. 〈파편들의 집〉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한 아동 쉼터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따라간다.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에게 쉼터의 어른들은 잠자리와 식사를 마련해주고, 품을 내어준다. 그런데 이 집에서 지낼 수 있는 기간은 최대 아홉 달이다. 그 기간 안에 아이가 어디에서 누구와 살지 정해져야 한다.

이 기한을 알고 나면 아이들이 친해지는 모습을 마음 편히 바라보기 어렵다. 오늘 함께 노는 친구와 계속 지낼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짧게 머무를 곳이니 정을 덜 주고 지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영화는 이런 아이들 곁에서 함께 웃고 안아주는 어른들을 지켜본다. 헤어질 날이 있다는 사실과 지금 돌봐야 할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이 집에서는 늘 공존한다.

부모의 목소리가 위로가 되지 못할 때

이곳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만 모인 곳은 아니다. 가정의 폭력과 방임, 부모의 알코올 문제 등으로 집에서 안전하게 지내기 어려운 아이들이 잠시 보호받는 쉼터다. 아이들은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보호자와 살 수도 있고, 장기 보호시설로 옮겨갈 수도 있다. 함께 지내는 동안에도 각자의 행선지는 다르게 정해진다.

부모와 통화하는 아이들을 보면, 집에서 떨어져 지내는 사정만으로는 그 마음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른의 눈에는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 먼저 보인다. 아이에게는 여전히 말을 걸고 싶은 부모가 있다. 쉼터에서 다정하게 보살펴준다고 해서, 가족과 다시 잘 지내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 통화가 괴로운 이유다. 부모와 연락이 닿는 일과 아이가 안심하는 일이 언제나 함께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통화 장면에서 카메라는 부모의 말을 듣는 아이의 얼굴과 목소리에 집중한다. 가족에게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가족 때문에 불안해하는 사정이 드러난다.

전화기를 귀에 댄 아이 곁에 다른 아이가 기대어 있다

동생을 돌보는 아이는 누가 돌볼까

쉼터에는 통화와 눈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함께 춤을 추고, 놀이를 하고, 친구를 사귄다. 사샤가 알리나와 가까워지는 시간도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아이들의 사연을 듣고 나면 웃는 얼굴조차 마냥 슬프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함께 노는 모습까지 전부 불행의 증거로 받아들이면, 정작 그 순간 친구와 어울리는 즐거움은 놓치게 된다. 카메라가 놀이 곁에 머무는 동안 아이에게는 걱정해야 할 미래뿐 아니라 함께 보내고 싶은 오늘도 있다는 것이 보인다.

콜랴는 또 다른 모습으로 기억된다. 거칠게 굴고 강해 보이려는 소년이면서,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오빠이기도 하다. 감독 시몬 레렝 빌몽은 콜랴가 동생들에게 보이는 다정함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거친 태도만 보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라고 생각했다면, 동생 곁에 있는 모습은 그 판단을 망설이게 한다. 그렇다고 동생을 잘 돌본다는 이유로 이 아이는 혼자서도 잘 버틸 거라고 안심하기는 어렵다. 콜랴 역시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다.

아이들이 서로를 아낀다는 사실은 위안이 된다. 하지만 아이들이 서로 아끼는 마음만으로 어른의 보살핌을 대신할 수는 없다. 친구와 노는 즐거움이 다음 거처를 정해주지는 못하고, 오빠가 동생을 챙긴다고 어른이 져야 할 책임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영화의 아이들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힘든 일을 견뎌내는 능력이 놀라워서만은 아니다. 애쓰는 모습을 보고 나면, 이 아이들이 늘 그렇게 애쓰지는 않아도 되기를 바라게 된다.

거울 앞에 있는 두 아이와 거울에 비친 얼굴

쉼터 밖에서 찍은 장면을 덜어낸 이유

빌몽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쉼터를 찾았다. 촬영 때는 현장에 있는 빛을 주로 활용했다. 낡은 벽과 아이들이 쓰는 물건의 색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벽에 그려진 큰 나무 앞에 나란히 앉은 아이들의 모습처럼, 이곳의 화면에는 건물의 낡음과 그 안을 꾸며온 흔적이 함께 남아 있다. 그 덕에 쉼터는 이름 없는 보호시설이 아니라 아이들이 모여 살고 노는 구체적인 장소로 보인다.

감독은 쉼터 밖의 가정과 사회복지사의 방문도 촬영했지만, 편집하면서 아이들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나누는 말과 놀이가 그들의 현실을 더 잘 드러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바깥 사정은 사회복지사의 목소리로 전하면서, 화면은 아이들 곁에 머문다. 덕분에 관객은 입소 사유를 전달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이의 입장에서 이 쉼터가 어떤 곳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보호받는 아이들을 다룬다는 것은 그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를 설명하는 일뿐 아니라, 여기서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는지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촬영은 2019~2020년에 이루어졌다.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전이지만,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이미 무력 분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정의 어려움을 모두 전쟁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분쟁의 여파는 일자리와 생활을 흔들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조건을 더 위태롭게 했다. 영화가 쉼터 안에 머문다고 해서 그 바깥의 일이 아이들과 무관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일 어느 집에서 살게 될지 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정만으로도, 어른들의 세계가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왜 지금 이 영화를 보는가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다음부터는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영화는 바로 그다음의 시간을 보여준다. 부모에게 전화를 걸고, 새 친구를 만나고, 다시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보호받는 곳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이전의 관계가 정리되거나 앞으로의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돌봄은 그 복잡한 마음을 가진 아이와 날마다 함께 지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첫 장면의 손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등을 쓰다듬어 깨우는 행동이 아이의 가족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아침에 아이를 깨워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다정하다는 것은 중요하다. 영화는 이 작은 보살핌을 오래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아이들이 쉼터를 떠난 뒤에도 그런 아침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홉 달이 지나도 자신을 반갑게 깨워줄 사람이 곁에 있기를 바라게 된다.

감상 포인트

아이를 깨우는 손길 — 영화가 시작할 때 어른이 아이를 어떻게 깨우는지 보자. 쉼터의 역할은 제도에 관한 설명보다 먼저 몸짓으로 전해진다. 이후 부모와의 통화나 퇴소를 앞둔 불안을 마주할 때, 이곳에서 아이가 받고 있는 보살핌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부모와 통화하는 아이의 얼굴 — 통화 내용뿐 아니라 말을 건네고 상대의 말을 듣는 아이의 표정에도 주의를 기울여보자. 부모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사정과 부모에게 기대하고 싶은 마음이 한 아이에게 함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말을 잘하고 의젓해 보이는 모습만으로 괜찮을 것이라 판단하기 어렵다.

놀이에 남겨둔 시간 — 친구들과 춤추고 어울리는 장면을 슬픈 사연 사이의 휴식으로만 넘기지 말자. 그 시간에는 아이들이 누구와 가까워지고 무엇을 즐기는지가 담겨 있다. 보호가 필요한 아이라는 정보에 가려져 있던 각자의 성격과 관계를 만날 수 있다.

콜랴가 동생들을 대하는 태도 — 강해 보이려는 소년의 모습과 동생을 챙기는 모습을 함께 보자. 어느 한쪽만으로 콜랴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정한 오빠라고 감탄하는 데서 멈추기 어려운 것은, 콜랴에게도 기댈 어른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관련 작품

와일드라이프〉 (2018, 폴 다노) — 부모의 관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아들 조의 눈으로 따라간다. 어른들이 각자의 이유로 내린 결정을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필 수 있다. 쉼터와 가정이라는 장소의 차이 속에서도,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 애쓰는 아이에게 시선을 두는 작품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6, 케네스 로너건) — 형이 세상을 떠난 뒤 조카의 보호자가 된 남자를 다룬다. 아이를 아끼는 마음과 함께 살아가며 책임을 감당하는 일 사이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보호자의 마음에 더 가까이 머무는 이 영화를 이어 보면, 돌봄을 한 사람의 애정과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를 다른 자리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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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