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피한 엄마가 다시 마을로 내려가려 한다. 마을에 남겨둔 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 살 딸도 엄마를 찾아 산으로 향한다. 1948년 제주를 배경으로 한 〈한란〉에서 …
산으로 피한 엄마가 다시 마을로 내려가려 한다. 마을에 남겨둔 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 살 딸도 엄마를 찾아 산으로 향한다. 1948년 제주를 배경으로 한 〈한란〉에서 아진(김향기)과 해생(김민채)은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움직인다. 토벌대를 피하는 것만으로는 두 사람이 안전해질 수 없다. 상대를 찾으려면 위험한 곳을 지나야 하고, 만나더라도 함께 살아남을 길을 다시 구해야 한다. 서로를 찾으려는 마음이 피신의 방향을 바꾸는 모녀의 이야기다.

엄마를 만났다고 해서 해생에게 일어난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학살을 목격한 해생은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 딸을 눈앞에 두고도, 아진은 아이가 겪은 일을 아이의 말로 들을 수 없다. 해생을 찾는 데 쏟았던 절박함은 이제 아이를 데리고 계속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로 이어진다. 다시 만났다는 안도감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이유다.
김향기는 아진을 서툴고 미덥지 못한 면도 있지만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딸을 지켜야 한다는 목표가 뚜렷해서 자기 괴로움이 파고들 시간조차 없었다고도 했다. 딸 앞에서 슬픔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연기한 것이다. 딸을 끌어안고 살아갈 의지를 다지는 행동도 그렇게 보면 슬픔이 끝났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자신도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모녀의 말은 제주어로 들린다. 영화에는 이를 이해하도록 표준어 자막도 붙는다. 김향기는 처음에 사투리 억양을 잊지 않으려다 감정을 놓쳤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익히면서 감정을 실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명미 감독 역시 인물의 나이와 성격, 출신 지역에 맞게 표현을 점검했다. 자막으로 뜻을 읽는 동안에도 엄마가 딸에게 건네는 목소리는 남는다. 말의 내용뿐 아니라 그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의 다급함을 따라갈 수 있도록 준비한 연기다.

사람들이 몸을 숨긴 동굴에는 촛불이 켜진다. 어두운 곳에 모여 있는 얼굴들을 공포스럽게만 보이게 하지 않는 것이 하명미의 조명 구상이었다. 빛이 동굴 벽에 닿고 얼굴을 비추되, 피신한 사람들이 따뜻하게 보이기를 바랐다. 쫓겨 온 처지는 그대로인데도 그 안의 얼굴까지 모두 위협적인 이미지가 될 필요는 없다. 누가 숨어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하는 빛이다.
피신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충돌하기도 한다. 아진은 가족의 행복을 바랄 뿐이라며, 복수로 자신도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딸을 구하고 싶다는 바람이 이때는 폭력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된다. 아진이 하고 싶은 일은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뿐인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도망과 거절을 거듭해야 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