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지배하는 남자의 아들은 정원에서 논다. 그곳에 한 여자가 노동자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온다. 아이들은 곧 쫓겨나지만, 청년은 그 여자를 잊지 못해 지하로 내려간다. 자기…
도시를 지배하는 남자의 아들은 정원에서 논다. 그곳에 한 여자가 노동자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온다. 아이들은 곧 쫓겨나지만, 청년은 그 여자를 잊지 못해 지하로 내려간다. 자기가 살던 도시를 처음 알게 되는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에서 프레더는 풍족하게 살아온 청년이다. 구스타프 프뢸리히가 연기하는 그는 도시 지배자 요 프레더젠의 아들이다. 높은 곳에서 누리던 생활과 지하에서 돌아가는 기계가 어떤 관계인지 모르고 살아왔다. 낯선 곳에 도착한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그곳은 이미 그의 생활을 떠받치고 있었다.
메트로폴리스의 부유한 사람들은 지상 높은 곳에서 산다. 그들의 자녀에게는 운동장과 정원이 있다. 노동자들은 지하에서 일하고, 지하의 집단 주거지로 돌아간다. 도시의 위아래를 나누는 선은 직장과 집 사이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일을 끝내도 그들이 올라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구분 덕분에 계급은 인물의 옷이나 소유물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누가 어느 높이에 머무르고 어떤 문을 지나갈 수 있는지가 화면의 구성을 바꾼다. 노동자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은 여유롭게 정원에 머무는 청년의 생활과 다르다. 거대한 도시를 바라보는 재미 속에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가 들어 있다.
프레더가 지하에서 목격하는 것은 기계 사고다. 그는 거대한 장치를 사람을 삼키는 몰록의 형상으로 본다. 평소에는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던 노동의 위험이, 이 청년에게는 사람을 제물로 요구하는 괴물처럼 다가온다. 기계가 실제 괴물로 변했다기보다 처음 충격을 받은 사람이 그렇게 보고 있는 장면이다.
프레더는 뒤이어 한 노동자와 옷을 바꿔 입고 그의 자리를 대신한다. 내려와 구경하는 일과 그 자리에 서서 일하는 일이 달라진다. 아버지에게 도시의 기계는 관리해야 할 체계이지만 아들에게는 사람이 쓰러지는 현장이 된다. 같은 도시에 대한 부자의 생각이 어긋나는 이유를 영화는 이 이동으로 보여준다.
브리기테 헬름은 노동자들 앞에 서는 마리아와, 마리아의 외양을 얻은 인조인간을 함께 연기한다. 마리아는 힘든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을 도시의 지배자도 알아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여자의 얼굴뿐 아니라 그 얼굴이 얻은 신뢰다.
마리아와 닮은 존재를 만들면 사람들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여기서 기술은 더 빨리 움직이는 기계나 더 높은 건물을 만드는 데만 쓰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모습을 빌려 그 사람의 말을 믿던 이들에게 접근하는 수단이 된다. 영화가 금속으로 된 몸에 사람의 얼굴을 부여하는 장면에는 이처럼 구체적인 목적이 있다.
한 배우가 두 역할을 맡으니 외모만으로 둘을 가르는 일은 충분하지 않다. 누구를 향해 말하고 어떤 행동을 부추기는지까지 보게 된다. 얼굴이 같아도 그 인물이 사람들과 맺는 관계는 달라진다. 메트로폴리스의 기계 인간은 살아 있는 사람을 닮았다는 신기함과, 그 닮음을 이용하는 권력을 함께 보여준다.
마천루와 고가도로가 겹쳐 있는 도시에는 실제로 세운 세트와 축소 모형, 촬영 기법이 함께 쓰였다. 거울을 이용해 배우가 있는 공간과 모형을 한 화면으로 합치는 방식도 있었다. 작은 건물을 크게 보이게 만드는 일과 그 안에 실제 사람을 놓는 일이 한 장의 화면에서 만나야 했다.
도시의 규모가 커질수록 사람은 그 안에서 작아 보인다. 반대로 지하에서 기계를 다루는 몸을 보면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노동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본 도시와 그 속에 들어간 사람을 오가며 보는 이유다. 멋진 건물이 있다는 사실만큼 그 건물에 비해 사람이 얼마나 작게 놓이는지가 중요하다.
화면이 거대한 공간으로 믿어지는 순간, 그 안에 놓인 사람의 위치도 함께 실감할 수 있다. 건축을 구경하는 일과 인물의 처지를 보는 일이 나뉘지 않는 영화다.
메트로폴리스는 처음 공개된 뒤 크게 줄어든 판본으로 오랫동안 유통됐다. 200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견된 필름은 2010년 복원의 중요한 자료가 됐다. 발견된 16mm 필름에는 상처와 밝기 변화가 심하게 남아 있었지만, 사라진 장면을 다시 이어붙일 수 있었다.
복원으로 돌아온 것은 도시를 더 오래 구경할 분량만이 아니었다. 프레더와 옷을 바꿔 입는 노동자, 해고된 비서, 아들을 감시하도록 지시받은 남자처럼 주변 인물들의 사정이 더 온전히 이어졌다. 복원 책임자들은 인물과 부수적인 이야기 사이의 균형을 되찾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위아래로 나뉜 도시라는 큰 구도 안에도 서로 다른 이유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행동이 빠지면 인물은 무엇을 하는지보다 어느 편에 속하는지로만 기억되기 쉽다. 복원 이력은 이 영화가 강렬한 이미지 몇 장으로 기억되어온 시간과, 그 사이의 이야기를 되찾으려 한 시간을 함께 알려준다.
정원에서 놀던 청년이 지하의 노동자를 만나면서 도시의 풍경도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건물과 기계 인간을 구경하다가, 그 공간에서 누가 일하고 누구의 말이 믿음을 얻는지 보게 된다. 거대한 도시에 살면서도 서로의 생활을 모르는 사람들, 그 사이를 처음 건너보는 청년을 함께 따라갈 수 있다.
정원과 지하 사이를 오가는 프레더
그가 어느 장소에서 편안하게 머물고 어디에서 충격을 받는지 보자. 같은 도시에 살았어도 몰랐던 생활이 있다. 공간을 옮기는 일이 인물의 이해를 어떻게 바꾸는지 따라갈 수 있다.
일이 끝나도 지하에 남는 사람들
노동자들이 일터와 주거지 사이를 이동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도시의 계층 구분이 노동 시간 바깥에도 이어진다. 집과 일터의 배치가 그들에게 어떤 생활을 허락하는지 볼 수 있다.
같은 얼굴이 얻는 다른 반응
마리아와 그 외양을 빌린 존재가 사람들 앞에 설 때를 비교해보자. 얼굴을 믿는 사람들과 그 믿음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 한 배우의 두 역할은 몸짓의 차이뿐 아니라 말이 향하는 목적을 함께 보게 한다.
건물 속에서 작아지는 사람
도시를 넓게 보여주는 화면과 사람이 기계 앞에 선 화면을 함께 보자. 건물의 크기를 실감하게 하는 인물의 배치가, 노동자의 처지를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촬영 기법의 이름을 몰라도 크기와 거리의 차이는 느낄 수 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920)
과장되고 뒤틀린 세트가 이야기의 불안을 키운다. 공간이 인물을 담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를 받아들이는 감각까지 바꾼다는 점에서 이어볼 만하다. 메트로폴리스의 거대한 수직 도시와 이 영화의 비뚤어진 거리가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블레이드 러너 (1982)
발달한 기술과 황폐한 생활이 공존하는 미래 도시에서 수사관이 도망친 리플리컨트를 쫓는다. 인간을 닮은 존재가 누구의 명령을 따르고 어떤 삶을 가질 수 있는지 묻는다. 도시의 인상과 인조인간의 처지가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비교할 수 있다.
기생충 (2019)
반지하에 사는 가족과 높은 지대의 저택에 사는 가족이 일자리를 통해 만난다. 두 집 사이의 계단과 이동 경로가 생활의 차이를 드러낸다. 미래 도시의 위아래를 극단적으로 나눈 메트로폴리스 뒤에 보면 익숙한 주거 공간의 높이도 눈에 들어온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