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게는 영웅, 내게는 무서운 아버지 | MovieLAB LAB

선오(김준호)에게 맨홀은 누나 선주(권소현)가 알려준 피난처다. 남매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그 안으로 숨는다. 그런데 아버지는 화재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다 죽고, 세상은 그를…

남들에게는 영웅, 내게는 무서운 아버지 | MovieLAB LAB

선오(김준호)에게 맨홀은 누나 선주(권소현)가 알려준 피난처다. 남매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그 안으로 숨는다. 그런데 아버지는 화재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다 죽고, 세상은 그를 영웅으로 기억한다. 한지수 감독의 〈맨홀〉은 사람들이 칭송하는 한 사람을, 그에게서 숨어야 했던 아이의 기억과 함께 놓는다. 아버지의 용감한 마지막이 남매가 겪은 일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집보다 안심할 수 있었던 곳

맨홀은 이름만으로도 어둡고 위험한 곳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남매에게는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다. 한지수는 촬영할 만한 실제 장소를 찾기 어려워 세트를 만들면서, 아늑한 느낌을 원했다고 설명했다. 남매에게는 지하보다 아버지가 있는 집이 더 위험하다. 맨홀의 아늑함은 집에서 얻지 못한 보호이기도 하다.

선주는 연극을 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그에게도 상처는 남아 있다. 누나의 생활은 과거를 다 잊은 사람의 성공담이 아니다. 함께 숨었던 남매 가운데 한 사람은 이제 맨홀 밖에서 다른 이들과 지내는 법을 배워간다.

맨홀은 남매의 피난처에서 선오의 아지트로 바뀐다. 선오는 새로 만난 친구들과도 어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지수는 선오를 화면의 가장자리에 두거나 멀리서 보이도록 배치했다.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면서도 완전히 마음을 열지는 못한 상태를 보여주려는 선택이었다. 어울리는 장면 안에도 혼자 남은 소년이 있다. 사람 수가 늘어난다고 그가 곧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이 처음부터 위험한 집단으로만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감독은 전형적인 불량 청소년을 전제하기보다, 유치한 장난을 주고받다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함께 노는 일이 폭력으로 바뀔 때에는 누구와 어울렸느냐는 질문에 더해, 그 안에서 자신은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도 남는다. 선오는 일행과 함께 이주민을 해치는 사건에 가담한다.

아지트였던 맨홀은 이제 범행을 감추는 곳으로 바뀐다. 처음의 아늑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변화가 더욱 불편하다. 그 공간이 선오를 보호해주었던 기억과, 이제 그곳에 숨겨진 일이 함께 남는다.

소년의 시간을 법정에서 다시 듣기

선오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그전까지 선오의 관점에서 따라갔던 일들이 여기서는 법의 언어로 다시 정리된다. 한지수는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법정에서 다뤄지는 사실 사이의 차이를 의식했다고 밝혔다. 소년이 두려워했던 아버지,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마음을 열지 못했던 시간은 행위와 책임을 가리는 자리에서 어떻게 설명될까. 관객은 선오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는 동시에 그가 벌인 일도 알고 있다. 앞의 사정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판단이 간단해지는 영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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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