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떠나려는 딸의 잔혹한 누아르 | MovieLAB LAB

돈을 받아오라는 지시를 내리는 사람을 일영은 엄마라고 부른다. 〈차이나타운〉의 일영(김고은)은 지하철 보관함에 버려졌다가 범죄 조직에서 자란 아이다. 그를 거둔 여자(김혜수)는 …

엄마를 떠나려는 딸의 잔혹한 누아르 | MovieLAB LAB

돈을 받아오라는 지시를 내리는 사람을 일영은 엄마라고 부른다. 〈차이나타운〉의 일영(김고은)은 지하철 보관함에 버려졌다가 범죄 조직에서 자란 아이다. 그를 거둔 여자(김혜수)는 모두에게 ‘엄마’로 통한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집과 남을 위협해 돈을 걷는 일터가 같은 곳이다. 이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남으려면 일을 잘해야 한다.

익숙한 누아르의 배신과 충성이 이 호칭 하나로 달라진다. 보스의 명령을 어기는 동시에 엄마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된다. 조직에서 나가고 싶다는 말은 자신이 아는 유일한 집을 떠나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준희 감독은 이처럼 빠져나갈 곳이 마땅치 않은 관계를 두 여자의 대결로 만든다. 누가 더 강한지를 겨루기에 앞서, 딸이 왜 엄마에게서 벗어나려 하는지부터 지켜보게 되는 영화다.

가족이 되기 위한 조건

일영에게 가족이 생겼다고 해서 버려질 걱정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쓸모를 증명해야 식구로 지낼 수 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그 사람이 가져올 돈과 연결돼 있다면, 다치거나 일을 못 하게 되는 순간부터 자신의 자리도 불안해진다. 일영은 그런 계산이 당연한 곳에서 자랐다.

엄마라는 이름은 이 조건을 더 잔인하게 만든다. 부하라면 계약이나 충성의 문제로 따질 일을, 이들은 가족 안에서 감당해야 한다. 자신을 살려준 사람에게 빚진 마음과 그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분리하기 어렵다. 그가 해준 일을 부정하지 않고도 그의 명령을 거절할 수 있을까. 일영의 처지를 알고 나면 조직을 떠나라는 말부터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마를 속으로는 다정한 사람이라 짐작하며 볼 필요도 없다. 김혜수의 엄마는 식구를 붙잡아두는 권한을 가진 인물이다. 영화는 그가 왜 이런 삶을 살게 됐는지 충분한 사연을 내놓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현재 그가 무엇을 요구하고, 사람들이 그 요구에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먼저다. 엄마에게도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보다, 일영이 지금 어떤 대우를 받는지가 중요해진다.

문 앞에서 손을 들어 노크하는 일영

돈 받으러 간 집에서 밥을 먹다

일영의 일상을 흔드는 사람은 채무자의 아들 석현(박보검)이다. 일영은 돈을 받으러 갔는데, 석현은 배고픈 그에게 밥을 해주고 다친 곳을 돌봐준다. 그가 일영에게 건네는 것은 거창한 약속이 아니다. 당장 배가 고프고 상처가 난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여기서 일영이 낯설어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두 사람의 만남이 달리 보인다. 늘 일을 시키거나 돈을 요구받던 사람 앞에서, 누군가는 먼저 무언가를 내어준다. 잘 해낸 일이 없어도 밥을 얻어먹을 수 있고, 강하게 버티지 못해도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일영이 살아온 집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대접이다.

석현이 지나치게 좋은 사람처럼 느껴질 여지도 있다. 둘의 만남을 자연스러운 연애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영화가 양쪽 세계를 뚜렷하게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현은 일영의 인생을 바꿔주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밥을 해주고 상처를 돌봐주는 것만으로도 일영에게는 처음 겪는 일이 된다. 새로운 삶을 설계할 만큼 확신이 생겨서가 아니라, 지금까지와 다르게 대해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발길이 멈춘 것이다.

엄마에게는 이 멈춤이 문제다. 식구 한 명의 사적인 마음을 허용하는 순간, 명령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규칙에 예외가 생긴다. 일영에게 소중해진 시간이 조직에서는 업무를 어긋나게 하는 시간이 된다. 영화는 일영이 누구를 좋아하는지뿐 아니라, 누구에게 자기 시간을 쓸 수 있는지를 놓고 갈등을 키운다.

간판이 늘어선 거리에서 걸어가는 일영

두 여자가 끝까지 차지한 자리

한준희는 제작 과정에서 주인공을 남자로 바꾸면 더 큰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처음 구상한 두 여자를 지켰다. 이 선택을 알고 다시 보면, 화면의 중심을 누가 차지하는지 눈여겨보게 된다. 엄마는 다른 남성 인물의 결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고르고 돈을 걷고 규칙을 정하는 당사자다. 일영 역시 그 규칙을 실제로 수행하며 세계를 알아온 인물이다.

두 사람이 맞설 때 흥미로운 것은 서로에 관해 아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엄마는 일영이 어떻게 자랐는지 알고, 일영은 엄마가 사람을 다루는 방식을 배워왔다. 엄마의 힘은 단지 신체적 위협에 있지 않다. 일영이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가르쳤다는 데 있다. 딸의 저항이 커져도 두 사람이 남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다.

감독은 과거를 풀어주는 대사와 회상을 줄이고, 현재 모습으로 인물을 짐작하게 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설명이 비어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주변 인물 모두의 사연을 충분히 알게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신 엄마와 일영이 한 화면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에 집중할수록, 누가 결정을 내리고 누가 그 결과를 감당하는지 선명해진다.

〈차이나타운〉의 긴장은 끝내 일영의 독립에 걸린다. 엄마를 미워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었다면 좀 더 간단했을 것이다. 자신을 길러준 곳에서 배운 방법으로, 그곳을 떠날 길까지 찾아야 한다. 누아르의 차가운 거래 속에 ‘엄마’라는 가장 가까운 이름을 놓았을 때 생기는 비극.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기대하던 것들을 하나씩 거두어가며, 일영이 평범한 친절 앞에서 멈춰 선 이유를 오래 남긴다.

관련 작품

◆ 〈오피스〉 (2015, 홍원찬) — 일을 잘해야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무실이 공포의 공간으로 바뀐다. 두 영화의 일터는 다르지만, 한 사람의 가치가 조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로 판단되는 순간을 함께 살필 수 있다. 일영에게 당연했던 규칙이 낯선 범죄 세계에만 존재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 〈피어스〉 (2024, 넬리시아 로우) — 형을 믿고 싶은 동생이 다시 가까워진 가족 때문에 흔들린다. 가족을 향한 애정이 의심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이어 볼 만하다. 〈차이나타운〉이 엄마에게서 떠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이 영화는 형과 얼마나 가까워져도 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