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를 적어주세요." 이 한마디가 한결(전봉석)과 고운(박정연)을 멈추게 한다. 병원에서, 관공서에서, 아이의 예방접종을 위해서. 주소는 현대 사회에서 존재의 증명이다. 은행 …
"주소를 적어주세요." 이 한마디가 한결(전봉석)과 고운(박정연)을 멈추게 한다. 병원에서, 관공서에서, 아이의 예방접종을 위해서. 주소는 현대 사회에서 존재의 증명이다. 은행 계좌, 휴대전화 개통, 택배 수령, 건강보험까지,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이 주소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임승현 감독의 홈리스는 이 전제가 무너졌을 때 한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83분 동안 보여준다. 집이 사라지면 벽과 지붕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 안에서의 존재 자격이 함께 사라진다.
한국의 전세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주거 형태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거액의 보증금을 맡기고, 계약 종료 시 전액 돌려받는 이 구조는 월세 부담 없이 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의 취약점은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되었을 때 드러난다. 부도, 사기, 시세 하락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세입자의 보증금은 증발한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금액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홈리스의 한결과 고운은 이 시스템의 피해자다. 그들의 보증금은 돌아오지 않았고, 새로운 집을 구할 자금도 없다. 영화는 전세 사기의 과정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이미 벌어진 결과만 보여준다. 그 생략이 주효하다. 원인 대신 결과를 파고든 덕에, 관객은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지나쳐 곧장 그 시스템이 낳은 사람들의 고통과 마주한다.
2020년대 한국에서 전세 사기는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수천 명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보도되었다. 홈리스가 2020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를 말해 준다. 사회가 이 문제를 '이슈'로 인식하기 전에, 영화가 먼저 그 현실을 스크린 위에 올려놓았다.
영화는 이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도덕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뿌리는 구조의 취약성에 있다고 조용히 짚는다. 한결과 고운은 나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의 한국인과 똑같이 전세 계약으로 집을 구했다. 그 계약이 깨졌을 때, 그들에게 남은 안전망은 없었다.

집은 벽과 지붕 이상의 것이다. 사회학은 집을 '존재론적 안전(ontological security)'의 기반으로 정의한다. 세계가 혼란스럽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확신이 인간의 심리적 안정을 지탱한다. 집을 잃으면 그 확신이 무너진다.
홈리스에서 한결과 고운이 경험하는 것은 물리적 불편함만이 아니다. 그들은 세계를 향한 기본적 신뢰를 잃는다. 전세 계약이라는 약속이 깨졌을 때, 사회적 약속 전반을 향한 불신이 시작된다. 이 불신은 부부 관계에도 침투하며, 외부의 압력이 서로를 믿는 마음을 시험한다.
아이 우림의 존재가 집의 의미를 더 절실하게 만든다. 성인에게 집은 편안함의 공간이지만, 아이에게 집은 성장의 필수 조건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라야 할 아기가 매일 다른 찜질방에서 잠을 잔다는 현실 앞에서 부모의 무력감은 극대화된다. 한결과 고운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들이 겪는 불편이 아니다. 그 불편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한국어에서 '집'이라는 단어는 영어의 'house'와 'home' 모두를 포함한다. 물리적 구조물과 정서적 귀속처가 하나의 단어로 묶여 있다. '홈리스'라는 제목은 이 가족이 잃은 것이 house만이 아니라 home이기도 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물리적 공간의 상실이 정서적 안정의 상실로 번져 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진짜 주제다.

한국의 복지 시스템은 '정상적' 삶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주소, 직장, 은행 계좌, 이 세 가지가 있으면 시스템 안에 존재할 수 있다. 하나라도 없으면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다. 한결과 고운은 세 가지 모두를 잃어가는 과정에 있다. 주소가 없으면 공적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렵고, 공적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이 악순환이 복지의 사각지대를 만든다.
이 사각지대는 의도적 배제가 아니라 시스템적 무의식이다. 시스템은 '정상'을 기준으로 설계되었고, '비정상'에 해당하는 사례를 처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한결과 고운에게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것은 누구도 그들을 돕기 싫어해서가 아니다. 시스템이 애초에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비인식의 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은밀하고 더 오래간다. 누군가를 때리는 사람은 적어도 상대의 존재를 인식한다. 누군가를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상대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홈리스의 한결과 고운은 이 비존재의 상태를 경험한다. 도시 안에 있지만 도시에 속하지 못하는 상태. 사람들 사이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상태.
이 영화는 관객에게 이 비가시적 존재를 '보라'고 요구한다. 83분 동안 한결과 고운을 따라가면서, 관객은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이 인식의 전환이 이 영화의 사회적 기능이다.
주거 문제는 2020년대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다. 그러나 뉴스와 통계로 소비되는 이 이슈는 종종 추상적으로 남는다. 홈리스는 추상을 구체로 바꾼다. 수억 원, 전세 사기 피해자 수천 명이라는 숫자 대신, 한 가족의 얼굴, 한 아기의 울음소리, 한 남자의 떨리는 손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것이 추상적인 것보다 더 강하다.
이 영화는 해설도 훈계도 하지 않는다. 한 가족이 통과하는 시간을 보여주고, 판단은 보는 사람에게 넘긴다. 주소 한 줄이 없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관객이 스스로 헤아려야 한다. 그렇게 남는 불편함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건네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 한결이 고운에게 화를 내는 순간 — 분노의 진짜 대상이 아내가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것을 느껴 보라. 가난이 관계를 침식하는 방식이 이 장면에 응축되어 있다.
◆ 편의점에서의 식사 장면 — 편의점 한 켠에서 삼각김밥을 먹는 부부의 모습. 이 평범한 행위가 집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다른 의미를 띠는지.
◆ 영화 전체에서 '집'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빈도 — 직접적으로 '집'을 말하는 순간이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말하지 않기에 집의 부재는 더 강렬해진다.
◆ 찜질방의 밤 — 남의 공간에서 잠을 청하는 부부가 몸을 어떻게 두는지 눈여겨보라. 그 자세에 이 가족이 놓인 자리가 들어 있다.관련 작품
◆ 십개월의 미래 (2021, 남궁선) — 예기치 못한 임신 앞에서 주거와 경제가 동시에 흔들리는 청년의 이야기.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인 젊은 세대라는 점에서 홈리스의 한결·고운과 같은 주거 불안을 공유한다.
◆ 정말 먼 곳 (2021, 박근영) —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인물을 조용한 리얼리즘으로 응시하는 한국 독립영화. 자리와 소속을 찾지 못하는 정서가 홈리스와 맞닿는다.
◆ 덤 머니 (2023, 크레이그 길레스피) — 경제 시스템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좌우하는지를 다른 앵글에서 탐구한다. 월스트리트 vs. 개인 투자자라는 대결 구도가, 집주인 vs. 세입자라는 구도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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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