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을 구해야 할까 | MovieLAB LAB

수영장에서 옷을 빼앗긴 사라(라우라 갈란)가 수영복 차림으로 집에 돌아간다. 더운 날 물에 들어갔을 뿐인데, 몸을 놀림당한 데다 갈아입을 옷도 없다. 길 위에서도 숨고 싶은 순간…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을 구해야 할까 | MovieLAB LAB

수영장에서 옷을 빼앗긴 사라(라우라 갈란)가 수영복 차림으로 집에 돌아간다. 더운 날 물에 들어갔을 뿐인데, 몸을 놀림당한 데다 갈아입을 옷도 없다. 길 위에서도 숨고 싶은 순간이 이어진다. 〈피기〉는 납치범을 등장시키기 전에, 이 귀갓길부터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던 사라는 자신을 괴롭힌 소녀들이 낯선 남자(리처드 홈스)에게 납치되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제 그들을 찾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가진 사람은 사라다. 조금 전까지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가 가해자들을 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라는 곧바로 자신이 본 일을 밝히지 않는다. 영화는 그 침묵을 두고 긴장을 이어간다.

수영장에서 집까지, 끝나지 않는 괴롭힘

여름날 수영장에 가는 일은 친구와 놀고 더위를 식힐 기회일 수 있다. 사라에게는 자기 몸을 조롱하는 사람들과 마주칠 위험도 있다. 옷을 가볍게 입고 물에 들어가는 평범한 행동부터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즐거우려고 찾은 장소에서 몸을 가리지 못한 채 조롱을 견뎌야 한다.

옷을 빼앗긴 뒤에는 그곳을 떠난다고 괴롭힘이 끝나지도 않는다. 사라는 집까지 수영복 차림으로 걸어가야 한다. 놀린 아이들은 더 이상 곁에 없는데, 그들이 만든 곤란한 상황은 그대로다. 영화가 귀갓길에 시간을 들이는 만큼, 수영장에서 벌어진 일도 잠깐의 짓궂은 장난으로 넘길 수 없게 된다.

연출을 맡은 카를로타 페레다는 가로로 좁은 4:3 화면의 중심에 사라를 두고 압박감을 만들려 했다고 설명했다. 넓게 펼쳐질 법한 여름 풍경보다 그 안에 있는 사라의 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햇빛이 환하고 날씨가 좋아도 그 시간을 즐길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피기〉의 밝은 화면이 마냥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페레다와 갈란은 사라가 걷고 숨 쉬는 방식도 함께 준비했다. 수영복 차림으로 길을 걷는 장면에서는 이런 몸의 표현이 중요해진다. 사라가 수치스럽다는 말 한마디보다, 그 차림으로 집까지 가야 하는 시간이 처지를 더 절실하게 전한다. 납치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그가 무사히 돌아가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정육점 진열대 옆에 서 있는 사라

그 남자는 사라의 편일까

납치당한 사람들이 사라를 괴롭혔다는 이유로, 남자의 행동이 잠깐 응징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라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데려갔다고 해서 그가 사라의 편인 것은 아니다. 소녀들을 구해야 하는지에 앞서, 사라는 이 남자가 자신에게도 위험한 사람인지 가늠해야 한다. 괴롭힘에서 벗어날 기회처럼 보였던 일이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사라에게서 정보를 얻으려 할 때도 부담은 사라의 몫이다. 수영장에서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몸이 구경거리가 됐고, 이제는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경험에 관심이 쏠린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소녀들의 행방을 알아낼 증언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해야 하는 사라에게는 자신이 당한 일이 아직 끝난 과거가 아니다.

목격자의 말이 궁금한 스릴러

페레다는 사라와 납치범의 관계를 하나의 답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자가 자신을 괴롭히던 소녀들을 데려갔다는 것은 사라에게 복잡한 일이다. 그 남자가 위험하다는 사실과 그 소녀들을 원망한다는 마음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사라가 무엇을 할지 기다리는 시간에는, 납치 사건의 다음 전개를 기다릴 때와는 다른 조바심이 생긴다.

수영장에서는 다른 소녀들이 사라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정했다. 이제는 사라가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행방을 찾는 일이 달라질 수 있다. 〈피기〉는 이 뒤바뀐 처지를 통쾌한 복수로만 보여주지 않는다. 목격한 것을 말할지, 침묵할지 결정해야 하는 소녀의 얼굴을 지켜보게 한다. 수영복 차림으로 혼자 돌아오던 아이가 어느새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사람이 되어 있다.

관련 작품

◆ 〈어글리 시스터〉 (2025, 에밀리 블리치펠트) — 아름다움의 기준에 맞추려는 소녀의 몸을 공포의 중심에 놓는다. 외모에 대한 남들의 평가가 한 사람의 생활과 선택에 얼마나 깊이 들어오는지, 동화와 스릴러라는 서로 다른 형식으로 보여준다.

◆ 〈로데오〉 (2022, 롤라 키보론) — 모터사이클을 타는 쥘리아가 남성 중심 집단에 들어가 자기 자리를 찾으려 한다. 거친 행동 뒤에 있는 욕망과 소속되고 싶은 마음을 따라간다. 여성 주인공에게 호감을 느끼는 일과 그 행동에 동의하는 일이 늘 같지는 않다는 점에서도 이어 볼 만하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