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들었는데 관객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1988년 완성된 〈황무지〉는 이듬해 상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필름을 빼앗기고 상영 금지에 가로막혔다. 광주를 진압한 군인의 죄책감…
영화를 만들었는데 관객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1988년 완성된 〈황무지〉는 이듬해 상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필름을 빼앗기고 상영 금지에 가로막혔다. 광주를 진압한 군인의 죄책감을 다룬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31년 뒤, 김태영 감독은 남아 있던 방송용 카피를 디지털로 복원해 다시 관객 앞에 내놓았다. 〈황무지 5월의 고해〉에는 화면 속 인물들뿐 아니라 이 영화를 끝내 보여주려 했던 사람들의 시간도 담겨 있다.
2020년 개봉한 이 판본은 단순한 재개봉작과는 구성이 다르다.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1987)와 장편 〈황무지〉(1988)에, 감독과 배우가 그 시간을 돌아보는 새 촬영분을 더했다. 1987·88년에 찍힌 영화와 2020년에 찍힌 사람들이 함께 나온다. 당시의 영화를 보고 나서 그것을 만든 이들의 현재를 만나는 경험이다.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이 화면 밖 정보로만 머물지 않는다.
〈칸트씨의 발표회〉는 도시를 찍던 사진가가 한 남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시작한다. 반복되는 행동이 이상해 보이는 남자다. 사진가가 그를 따라가며 알게 되는 것은 광주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고통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이 남자의 사연을 정리해 알려주는 대신, 그를 궁금해하는 사람 곁에서 조금씩 접근한다.
도시의 다른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행동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겪었는지 알게 되면, 이상하다고 여겼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멀리서 바라볼 때의 호기심이 그 사람의 사정을 듣는 일로 이어진다. 사진가가 남자를 따라가는 구성에는 그런 시선의 변화가 있다.
광주는 이 영화에서 지나간 사건의 이름만은 아니다. 사건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시간에도 한 사람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남는다. 당시 만들어진 이 단편은 그 고통을 아직 가까이 있는 일로 다룬다. 훗날의 역사적 평가를 충분히 알고 재현한 영화와는 다른 절박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황무지〉의 김의기(조선묵)는 다른 위치에 있다. 광주 진압에 투입됐던 그는 탈영한 뒤 군산의 미군 기지촌으로 숨어든다. 그곳에서 다시 폭력을 마주하는 동안 자신이 저지른 일을 떨쳐내지 못한다. 숨어 지낼 곳을 찾았다고 기억까지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태영 감독은 복원 상영을 제안받았을 때 두 영화를 함께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피해자의 시점인 단편과 가해자의 시점인 장편을 짝지으려는 선택이었다. 두 사람이 모두 고통스럽다고 해서 책임까지 같아지지는 않는다. 한쪽은 폭력이 남긴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그 폭력에 가담했다는 사실과 마주해야 한다.
의기의 이름에는 주의해서 알아둘 사연도 있다. 실존했던 김의기 열사를 기리는 뜻에서 가져온 이름이지만, 영화 속 탈영병의 삶이 그 열사의 전기는 아니다. 현실의 이름을 빌린 허구 인물이다. 이 구별을 하고 보면 영화가 역사 기록을 그대로 옮기는 방식과, 허구의 인물을 통해 책임을 묻는 방식의 차이도 분명해진다.
〈황무지〉가 붙잡는 것은 누군가의 괴로움을 알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용서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의기를 가까이 따라가는 동안에도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죄책감을 보여주는 장면을 결백의 증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감정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끝까지 보게 하는 인물이다.
2020년에 새로 찍은 영상에는 김태영 감독과 조선묵이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찾는 모습이 담겼다. 오래전 연기한 인물의 젊은 얼굴과 시간이 흐른 배우의 얼굴을 한 작품 안에서 만나게 된다. 관객이 지금 막 본 영화는 이 사람들에게 수십 년 전의 작업이다. 그 차이가 복원이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당시 영화를 막은 힘은 상영관 문 앞에서만 작용한 것이 아니다. 작품을 볼 기회를 늦췄고, 그 작품을 둘러싼 대화도 오래 미뤄놓았다. 그래서 이 판본에 덧붙은 제작의 이야기는 단순한 부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어떻게 찍었고 왜 보여주지 못했는지가 영화가 다루는 침묵의 역사와 이어진다.
〈황무지 5월의 고해〉를 보는 일에는 오래된 영화를 새로 발견하는 즐거움과는 다른 무게가 있다. 감독이 찍으려 했던 당시의 현실, 그 영화를 지켜내려던 이후의 시간, 이제야 화면을 만나는 관객의 시간이 겹친다. 영화를 끝까지 남겨둔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이 인물들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 사실이 엔딩 크레디트까지 함께 남는다.
◆ 〈용서받지 못한 자〉 (2005, 윤종빈) — 군대에서 겪은 일은 제대한 뒤의 관계에도 남는다. 조직의 질서에 따랐다는 말로 개인의 행동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지 묻는다.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과 책임의 성격은 다르지만, 군대 밖으로 따라오는 기억을 보는 영화로 이어진다.
◆ 〈그때 그사람들〉 (2005, 임상수) — 1979년 10월 26일을 극영화의 인물과 대사로 다시 구성한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는 사실과 영화의 모든 세부가 기록이라는 주장을 구별하며 볼 수 있다. 같은 시대를 서로 다른 영화적 태도로 만나고 싶을 때 권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