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개 앞에서도 표정이 흔들리지 않는 여자. 〈훈련사〉의 하영(최승윤)은 반려견을 다루는 솜씨로 이름을 알린 전문가다. 그런데 출소한 동생 소라(김승화)가 찾아오면서, 잘 정…
사나운 개 앞에서도 표정이 흔들리지 않는 여자. 〈훈련사〉의 하영(최승윤)은 반려견을 다루는 솜씨로 이름을 알린 전문가다. 그런데 출소한 동생 소라(김승화)가 찾아오면서, 잘 정돈해둔 생활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알려주던 사람이 정작 자기 집에서는 어떻게 행동할까. 영화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자매에게는 함께 겪은 폭력적인 어린 시절이 있다. 하영은 그 과거를 뒤로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었지만, 소라의 귀환은 지나간 일을 다시 마주하게 한다. 서은선 감독의 첫 장편은 가족이 함께 살아가며 상처를 위로하는 방향으로 쉽게 나아가지 않는다. 서로의 약점을 아는 두 사람이 한집에서 주도권을 다투는 심리극이다. 한 사람은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은 그 평온을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감독은 반려견 훈련사가 개뿐 아니라 보호자와도 미묘한 힘겨루기를 한다는 점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보호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러 왔지만 자기 행동을 지적받는 일이 반갑지만은 않다. 능숙한 훈련사에게는 개를 진정시키는 기술과 상대가 자기 말을 듣게 하는 태도가 함께 필요하다. 하영의 직업은 그래서 동물이 나오는 스릴러를 만들기 위한 장식에 머물지 않는다.
하영은 자신을 단련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주변 사람도 자기 방식대로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남에게 좋은 방법을 알려준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상대가 그 방법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도와주려는 말이 관계 안에서는 지시로 들릴 수 있는 사람이다.
소라에게는 그런 언니의 태도가 통하지 않는다. 언니가 인정받는 직업과 집을 갖췄다는 사실이 자매 사이의 오래된 일을 해결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영이 유지하고 싶은 현재와 소라가 끌고 들어오는 과거가 한 공간에서 부딪힌다. 자매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어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어서 위험하다.
최승윤의 연기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영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태도다. 무용을 전공한 배우의 단련된 몸과 표정의 절제가 인물의 직업과 맞아떨어진다. 감독도 큰 체격보다는 감정의 흔들림을 쉽게 읽을 수 없는 얼굴을 중요하게 봤다고 설명했다. 하영이 침착해 보인다고 해서 실제로 여유로운 것인지 바로 알 수는 없다.
김승화가 연기하는 소라는 작은 소리와 몸짓으로 그 침착함을 흐트러뜨린다. 배우가 준비한 코를 훌쩍이는 소리나 입으로 내는 미세한 소리를 편집에서 살렸다는 감독의 설명이 흥미롭다. 큰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도 다른 사람과 한 공간을 쓰는 일이 얼마나 신경을 거슬리게 할 수 있는지 활용한 것이다.
이 대비 때문에 둘이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대사 외에도 살필 것이 많다. 한쪽은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다른 쪽은 불편함을 숨기지 않는다. 누가 더 큰 소리를 내는지만으로 어느 쪽이 우세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영이 평정을 지키려는 만큼, 관객은 그 표정에 변화가 생기는 순간을 기다리게 된다. 두 배우가 함께 만드는 긴장이다.
이야기가 주로 머무는 곳은 훈련소와 집이다. 특히 집의 2층에 소라가 지낼 공간이 생긴다는 설정이 중요하다. 언니의 생활에 받아들여진 동생은 따로 떨어진 방을 얻지만, 동시에 아래층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놓인다. 집의 주인이 공간을 내어주는 일과 그 공간을 계속 통제하는 일은 같지 않다.
하영이 안정적으로 꾸려온 집에서도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 신경 쓰게 된다. 동생에게 잠시 머물 곳을 마련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생은 언니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자매가 서로의 사정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공간의 높낮이와 시선이 더해진다. 외부의 낯선 침입자보다 가족이 들어온 집이 더 불편해지는 까닭이다.
〈훈련사〉는 하영의 말에 쉽게 기대고 싶어지는 마음을 이용한다. 능력이 있고 침착한 사람이 상황을 해결해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사람까지 자신의 기준대로 움직이게 하려 할 때, 처음 믿음직하게 보였던 태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영화가 새롭게 제시하는 위험은 바로 그 익숙한 자신감 안에 있다.
두 자매 중 누구를 응원할지 결정하고 편히 따라가기보다는, 둘이 함께 있는 방의 긴장을 견디며 보는 영화에 가깝다. 반려견 훈련이라는 독특한 직업에서 시작해 가족 사이의 힘겨루기로 깊이 들어간다. 전문가의 말투와 흔들리지 않는 얼굴이 어떻게 스릴러의 재료가 되는지, 두 배우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 〈피어스〉 (2024, 넬리시아 로우) — 출소한 형과 그를 믿고 싶은 동생의 관계를 따라간다. 가족의 과거를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의 얼굴과 행동에 마음이 바뀌는 과정을 그린다. 가족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왜 안심만을 주지 않는지 함께 볼 수 있다.
◆ 〈파문〉 (2023, 오기가미 나오코) — 자신만의 질서로 버티던 여성의 집에 오래 떠나 있던 남편이 돌아온다. 일상을 통제하려는 노력이 가족의 귀환과 부딪힌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훈련사〉의 불편한 긴장과는 다른, 날 선 유머가 기다린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