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이 함께 노래한다. 사이가 멀어진 두 사람이 같은 곡을 부르면, 이제 좀 가까워지겠구나 싶다. 그런데 〈리브 어게인〉의 폴은 그 시간에도 딸보다 자신이 돋보이고 싶어 …
아버지와 딸이 함께 노래한다. 사이가 멀어진 두 사람이 같은 곡을 부르면, 이제 좀 가까워지겠구나 싶다. 그런데 〈리브 어게인〉의 폴은 그 시간에도 딸보다 자신이 돋보이고 싶어 한다. 딸 주드와 호흡을 맞추는 듯하다가 곧 경쟁 상대로 대하는 것이다. 노래를 잘하는 아버지와 함께 노래하기 좋은 아버지는 이렇게 다를 수 있다.
주드는 뉴욕에서 음악을 하다 사정이 어려워져 햄턴스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 앰버 허드가 주드를, 크리스토퍼 워컨이 폴을 연기한다. 한때 인기를 누린 가수 폴은 다시 활동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딸에게는 진로가 막혀 돌아온 집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새 출발을 준비하는 곳이다. 같은 집에 있어도 두 사람이 기다리는 소식은 다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로버트 에드워즈는 다정한 사랑 노래로 유명하면서도 사생활에서는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가수를 떠올렸다고 한다. 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차이다. 노래를 듣는 사람은 낭만적인 가수를 만나지만, 주드는 그와 가족으로 지내야 한다. 아버지의 매력을 알아보지 못해서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 매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을 주드는 겪어왔다.
부녀가 함께 부르는 곡은 ‘Somethin’ Stupid’다. 에드워즈는 이 장면에서 폴의 공연 욕심이 부모의 마음을 앞질러, 딸을 경쟁자처럼 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함께 부른다는 형식은 같아도 상대가 잘 들리게 해줄 생각이 없다면 듀엣은 편하지 않다. 이 장면을 두고 음악이 곧 화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두 사람이 잘 아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양보하지 못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워컨을 캐스팅하고 나서는 예상과 다른 문제가 생겼다. 에드워즈는 초기 편집본을 본 관객들이 폴에게 쉽게 마음을 주고 딸들을 탓했다고 전했다. 대본에서는 가혹하게 읽히던 행동도 워컨이 연기하면 용서하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딸들의 사정이 가려지지 않도록 편집을 세밀하게 조정해야 했다.
이 일화는 폴이 왜 워컨에게 어울리는 배역인지 보여준다. 아무 매력도 없는 아버지라면 주드가 거리를 두려는 이유는 빨리 이해된다. 하지만 사람을 끄는 재주가 있고, 다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게 만든다면 마음이 간단하지 않다. 그의 재기를 바라면서도 딸에게 하는 행동까지 편들 수는 없다. 폴에게 끌리는 정도와 폴을 믿어도 되는 정도가 꼭 같지는 않다.
노래하는 목소리에도 제작진의 선택이 있었다. 워컨은 유명 가수 역을 맡을 만큼 뛰어난 목소리가 자신에게 있는지 걱정했다고 한다. 에드워즈는 오히려 조금 거친 목소리가 전성기를 지난 폴에게 맞는다고 봤다. 흠 없이 노래하는 스타를 재현하는 것보다, 예전처럼 다시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가수의 현재가 필요했던 셈이다.

집 안에서는 노래 대신 말이 겹친다. 식탁에 모인 가족은 남의 말을 끊고, 화제를 옮기고, 줄거리에 꼭 필요해 보이지 않는 이야기도 한다. 에드워즈는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대화하는 어수선함을 남기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가 관객에게 설명을 마친 다음 다른 사람에게 차례를 넘기는 식이면,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느낌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폴과 주드가 초반에 소파에서 길게 이야기하는 장면은 대부분 대본대로 찍었다. 반면 가족 식탁에서는 즉흥적인 대화도 많이 받아들였다. 자연스럽게 들린다고 모두 현장에서 떠오른 말은 아니었다. 말을 겹치고 끊는 방식까지 준비한 장면이 있고, 여러 배우가 함께 있으면서 더해진 부분도 있다. 두 방법이 한 가족의 말투 안에서 만난다.
오래된 가족은 대화에서 많은 말을 생략할 수 있다. 관객은 폴과 주드를 처음 만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오래 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매번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아도 상대는 알아듣는다. 그 때문에 대화에는 친근함과 짜증이 함께 묻어날 수 있다. 누군가의 말을 잘 안다는 사실이 끝까지 들어준다는 뜻은 아니다. 듀엣에서 자기 목소리를 앞세우던 문제가, 말을 나누는 자리에서는 상대가 끝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느냐는 문제로 이어진다.
음악도 그렇게 이야기 속의 일로 만들었다. 폴의 신곡 ‘When I Live My Life Over Again’은 가사부터 대본에 들어 있었고, 이후 조 매긴티가 곡을 붙였다. 제목을 옮기면 ‘내 인생을 다시 산다면’쯤 된다. 폴이 가족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 그 가정법은 가수의 새 레퍼토리이면서, 그의 지난 삶을 아는 사람들 앞에 내놓는 말이 된다. 듣는 이들이 팬인지 가족인지에 따라 같은 노래도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워컨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영화를 골라도 좋다. 다만 폴에게 마음이 갈수록 주드의 자리도 함께 보게 된다. 함께하는 일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 안에서 서로를 자꾸 밀어내는 부녀다. 에드워즈는 그 관계를 한 번의 공연으로 설명하는 대신 노래와 소파의 대화, 가족 식탁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재미있는 아버지를 구경하는 일과 그 아버지 곁에서 지내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 두 배우를 번갈아 보는 동안 조금씩 드러난다.
◆ 부녀의 듀엣 — 두 사람이 함께 부를 때 폴이 주드의 목소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들어보자. 같은 곡을 안다는 친밀함과 자기 실력을 드러내려는 마음이 한 장면에 있다. 둘이 노래한다는 사실만으로 분위기를 화해 쪽으로 미리 정할 필요는 없다.
◆ 폴에게 마음이 가는 순간 — 폴의 말이나 노래가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 주드는 그를 어떻게 대하는지도 함께 보자. 배우가 사람을 끄는 힘과 배역이 가족에게 남긴 문제 사이에서 영화의 균형이 잡힌다. 웃기는 사람 곁의 인물이 왜 웃지 않는지도 볼 수 있다.
◆ 소파와 식탁의 대화 — 부녀 둘만 이야기할 때와 가족이 모였을 때의 말투를 비교해보자. 식탁의 곁가지와 끼어드는 말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 불편하지만, 이 사람들이 오래 한 가족으로 살아왔다는 느낌을 만든다. 모든 말을 똑같이 붙잡기보다 서로가 말을 받거나 흘리는 방식에 귀를 기울이면 좋다.
◆ 폴이 가족 앞에서 부르는 신곡 — 가수가 새 노래를 선보이는 자리이면서 가족이 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리다. 노래의 가정법과 노래하는 사람의 현재를 함께 들어보자. 공연을 잘 마치는 일과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일은 다를 수 있다.
◆ 〈토니 에드만〉 (2016, 마렌 아데) — 일하는 딸을 불쑥 찾아온 아버지가 가상의 인물로 행세하며 딸의 생활에 끼어든다. 두 영화의 아버지 모두 남을 웃기는 재주가 있지만, 그 재주를 딸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따로 남는 문제다.
◆ 〈코르사주〉 (2022, 마리 크로이처) — 마흔이 된 황후가 남들이 기대하는 아름다운 이미지와 자기 욕구 사이에서 움직인다. 폴은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싶어 하지만 이 영화의 황후는 자신을 가두는 이미지에 저항한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모습과 실제 삶의 차이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