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에게도 상사가 있다 | MovieLAB LAB

고릴라 몸에 잠수용 헬멧을 썼다. 동굴 앞에서는 기계가 비눗방울을 뿜는다. 로봇 몬스터의 외계인 로-만은 이런 차림으로 인류를 거의 없애버렸다고 보고한다. 보고를 받는 상관은 아…

괴물에게도 상사가 있다 | MovieLAB LAB

고릴라 몸에 잠수용 헬멧을 썼다. 동굴 앞에서는 기계가 비눗방울을 뿜는다. 로봇 몬스터의 외계인 로-만은 이런 차림으로 인류를 거의 없애버렸다고 보고한다. 보고를 받는 상관은 아직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며 일을 마저 끝내라고 명령한다. 지구를 정복한 괴물에게도 잔소리하는 상사가 있다.

필 터커가 만든 이 영화에서 로-만은 위협을 가하는 존재이면서 지시를 받는 부하다. 조지 배로스가 털북숭이 몸을 연기하고 존 브라운이 목소리를 맡았다. 모습부터 쉽게 믿기 어려운 괴물이 위엄을 지키며 임무를 설명한다. 영화의 기묘한 재미는 이 외양과 역할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이 여자는 죽이고 싶지 않다

《Robot Monster》의 한 장면

로-만의 임무는 분명하다. 생존자를 찾아 모두 없애야 한다. 그런데 클로디아 배럿이 연기하는 앨리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 이유를 되풀이하던 괴물이 이번에는 한 사람을 살려둘 이유를 찾는다.

상관에게는 인간을 없애는 일의 성공 여부만 중요하다. 로-만에게는 그 명령대로 하고 싶지 않은 사정이 생겼다. 통신 화면으로 이어지는 두 괴물의 대화는 그래서 같은 편의 작전 회의로만 들리지 않는다. 개인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조직에 부하 한 명이 곤란한 예외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앨리스를 향한 마음이 로-만을 다정하게 바꾸지는 않는다. 그는 앨리스가 자신을 원하는지 묻기보다 만나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 여자를 살려두고 싶다는 바람에도 상대를 소유하려는 태도가 남아 있다. 상관의 명령에는 저항하면서 인간에게는 명령을 내리는 모순이 이 괴물을 더 우스꽝스럽고 불편하게 만든다.

헬멧이 덮인 얼굴에서는 미세한 표정을 읽기 어렵다. 로-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주는 것은 몸의 움직임과 목소리, 그리고 상관에게 하는 설명이다. 감정을 말로 길게 설명하는 대목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 어색함 속에서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존재가 무엇을 원하는지 때문에 말을 바꾼다는 상황은 선명하다.

두 눈으로 찍은 고릴라

《Robot Monster》의 한 장면. 우주 헬멧을 쓴 소년이 장난감 광선총을 든 채, 마른 언덕에서 소녀와 마주하고 있다.

이 기묘한 괴물은 원래 3D 화면의 주인공이었다. 로봇 몬스터는 두 눈에 들어갈 영상을 따로 찍는 입체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로스앤젤레스의 브론슨 동굴을 비롯한 야외에서 촬영했고, 바위와 동굴 입구가 괴물의 활동 무대가 됐다. 화면 안에 가까운 바위와 그 너머의 인물을 함께 두면 공간의 깊이를 활용할 수 있는 장소다.

훗날 복원에 참여한 밥 퍼마넥은 이 영화의 좌우 영상을 서로 다른 필름통에서 찾아냈다. 필름 보관 시설에서 찾은 자료였다. 그가 찾지 않았다면 시설이 폐업할 때 버려졌을 필름이었다. 그는 두 필름의 빠진 부분을 맞추어 함께 돌려본 뒤, 야외 장면의 입체감이 예상보다 좋았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 초 TV 배포용으로 만든 비디오 마스터는 필요한 필름을 확보하지 못해 일부가 평면 영상이었다. 퍼마넥이 확인한 원래 영화는 다른 작품에서 가져온 몇 분의 영상을 제외하면 입체로 촬영돼 있었다. 오랫동안 유통된 화면의 부족함과 처음 찍은 영상의 성질이 꼭 일치하지는 않았던 셈이다. 낡은 영화 한 편을 보존하려면 어느 필름에서 무엇이 빠졌는지 찾는 일부터 필요했다.

동굴 앞의 털북숭이 괴물과 비눗방울은 여전히 엉뚱하다. 다만 그 엉뚱한 물건들을 어떻게 카메라 앞에 세웠는지도 볼 수 있다. 바위의 앞뒤와 동굴의 깊이를 쓰는 방식에는 괴물의 분장과는 다른 구경거리가 있다.

음악을 맡은 사람도 궁리를 했다

음악은 엘머 번스타인이 썼다. 훗날 황야의 7인, 대탈주의 음악으로 널리 알려질 작곡가다. 로봇 몬스터를 맡은 시기는 정치적 성향 때문에 큰 영화의 일을 구하기 어려웠던 때였다.

《Robot Monster》의 한 장면

번스타인은 훗날 로봇 몬스터와 달의 고양이 여인들을 언급하며, 새로운 소리를 내기 위해 악기에 전기를 연결하는 시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전자음을 쓰는 일 자체에 반대한 적은 없으며, 음악 안의 한 가지 음색으로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였다. 작은 영화에서도 익숙한 악기를 어떻게 다르게 들리게 할지 궁리한 것이다.

괴물의 헬멧과 털만 보고 있으면 소리 쪽에서 하는 일을 놓치기 쉽다. 로-만의 모습을 잠시 눈에 익힌 다음에는 목소리 뒤에 들리는 음악에도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몸을 보고 먼저 내린 인상과, 소리가 더하는 긴장이나 낯섦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느껴보는 것이다. 화면의 조악함을 설명하는 말 하나로는 이 협업의 결과를 다 담기 어렵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로봇 몬스터는 괴물의 분장만큼이나 그가 하는 말이 엉뚱한 영화다. 인류를 없애라는 명령 앞에서는 충실한 부하이고 싶고, 앨리스 앞에서는 자기 욕망을 따르고 싶다. 여기에 입체로 찍은 야외 풍경과 번스타인의 음악이 함께 있다. 잘 만든 부분과 허술한 부분을 한 화면 안에서 만나는 재미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이 이상한 괴물에게 조금 더 시간을 줄 만하다.

감상 포인트

상관에게 보고하는 괴물
로-만이 인간에게 하는 말과 상관에게 하는 설명을 나란히 들어보자. 남에게는 선택을 허락하지 않는 존재가 자신의 바람만은 예외로 인정받으려 한다. 외양뿐 아니라 대화 속에서 생기는 우스꽝스러움이 있다.

앨리스에게 내미는 요구
로-만이 앨리스를 향한 관심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자. 누군가를 살려두고 싶다는 마음과 그 사람의 뜻을 존중하는 일은 다르다. 이 차이를 놓치지 않으면 괴물의 망설임을 단순한 로맨스로 읽지 않게 된다.

동굴 앞에 놓인 것들
비눗방울을 내는 기계, 괴물의 몸, 바위와 동굴 입구가 한 화면에 어떻게 배치되는지 살펴보자. 입체 촬영을 염두에 둔 야외 공간이 배경이고, 그 안의 낯선 소품들이 외계인의 거처를 만든다. 지금 보는 판본의 상영 방식과 원래의 촬영 방식은 구별해두면 좋다.

목소리와 음악을 함께 듣기
몸의 연기와 목소리를 다른 사람이 맡은 로-만에게 소리는 중요한 표현 수단이다. 그가 말을 멈추는 자리에서 음악이 무엇을 더하는지 들어보자. 분장의 인상만으로 지나치기 쉬운 소리의 역할을 만날 수 있다.

관련 작품

케이프 커내버럴의 몬스터 (1960)
필 터커가 외계인의 위협을 미사일 시험장으로 옮긴 SF다. 외계인은 죽은 사람의 몸을 차지해 사람들 틈에 들어온다. 털북숭이 몸으로 정체를 드러내는 로-만과, 사람의 외양을 빌리는 침입자를 비교할 수 있다.

플래닛 X의 사나이 (1951)
스코틀랜드의 외딴섬에 도착한 외계인과 소통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욕심이 끼어든다. 도움을 받기도 하고 공격을 당하기도 하는 방문객을 통해 인간 쪽의 태도를 묻는다. 명령과 소유욕 때문에 관계가 어긋나는 로봇 몬스터와 함께 볼 만하다.

유카 플랫의 야수 (1961)
핵실험장에 쫓겨 들어간 과학자가 방사선 때문에 괴물로 변한다. 인간을 공격하는 몸이 이곳에서는 인간에게서 나온다. 바위 많은 야외 공간에서 괴물을 움직이는 두 영화가, 외계의 침략과 지상의 핵실험을 각각 어떻게 그리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