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 베송의 영화는 누구와 함께 커졌을까 | MovieLAB LAB

장 르노가 병원 문 앞에 서 있다. 안에 있는 의사는 그를 들여보내려 하지 않는다. 마지막 전투에서 르노는 누군가를 위협하는 침입자다. 훗날 레옹에서는 도망쳐온 소녀에게 문을 열…

뤽 베송의 영화는 누구와 함께 커졌을까 | MovieLAB LAB

장 르노가 병원 문 앞에 서 있다. 안에 있는 의사는 그를 들여보내려 하지 않는다. 마지막 전투에서 르노는 누군가를 위협하는 침입자다. 훗날 레옹에서는 도망쳐온 소녀에게 문을 열어준다. 같은 배우가 문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쪽에 서게 된다.

이 두 영화를 만든 뤽 베송에게 르노는 첫 장편부터 함께한 배우다. 베송의 초기 영화를 이어 보면 익숙한 얼굴뿐 아니라 촬영과 음악을 맡은 이름들도 다시 만난다. 흑백 폐허에서 시작한 영화가 바다와 도시로 뻗어가는 동안, 배우가 맡는 관계와 스태프가 만들어야 할 공간과 소리도 달라졌다.

위협하던 얼굴이 친숙해질 때

흑백 화면. 벽돌 벽과 어두운 출입구가 보이는 폐건물 앞에서, 둥근 안경을 쓰고 턱수염을 기른 장 르노가 물방울 맺힌 비닐 망토를 걸치고 깡통 여러 개가 얹힌 상자를 앞에 두고 서서 옆을 올려다보고 있다

마지막 전투의 르노에게 붙은 배역명은 라 브뤼트다. 거칠고 난폭한 사람을 뜻하는 호칭이다. 주인공을 맡은 피에르 졸리베도 이름 대신 ‘남자’로 불린다. 재앙 뒤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말을 하지 못하는 영화라, 관객은 인물이 어떻게 다가오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몸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르노의 큰 체격은 병원 안으로 들어가려는 행동과 만나 위협이 된다. 폐허 속에서 의사가 지키는 문은 누군가에게는 피할 곳의 입구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르노가 그 바깥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간의 긴장이 생긴다.

이 배우는 서브웨이에서는 지하 밴드의 드러머가 되고, 그랑블루에서는 잠수 선수 엔조가 된다. 엔조는 승부욕이 강하면서도 오랜 친구와 함께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마지막 전투에서 경계하게 했던 체격과 존재감이 여기서는 활기와 친숙함을 얻는다. 베송과 르노의 협업을 보는 재미는 익숙한 얼굴을 찾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얼굴을 이번에는 얼마나 믿게 되는지가 달라진다.

폐허를 낯설게 찍는 법

카메라 뒤에도 함께 출발한 사람이 있다. 카를로 바리니는 마지막 전투와 서브웨이, 그랑블루를 찍었다. 첫 영화에서는 무너진 건물과 버려진 물건이 화면을 채운다. 베송은 실제 장소에서 촬영한 이 풍경을 특정 시대에 매이지 않는 세계로 보이게 하려고 흑백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흑백 화면. 절반이 무너져 내린 건물을 아래에서 올려다본 앵글. 콘크리트 잔해와 부러진 각목 사이, 위층 문간에 헬멧과 둥근 방독면을 쓰고 두툼한 옷을 입은 인물 한 명이 홀로 서 있다

화면을 옆으로 길게 쓴 이유도 흥미롭다. 베송은 폐허의 윤곽이 알아볼 만한 장소로 남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건물의 선을 가로로 긴 화면 안에 놓아 익숙한 형태를 흐트러뜨리려는 선택이었다. 어디에서 찍었는지 알아보는 일보다, 사람이 살던 장소가 더는 사람을 편안히 받아주지 않는다는 감각이 앞선다.

이렇게 시작한 화면은 서브웨이의 지하 공간과 그랑블루의 바다로 옮겨간다. 같은 촬영감독이 참여했어도 건물의 폐허, 사람이 모이는 통로, 잠수하는 바다에는 서로 다른 공간감이 필요하다. 세 영화의 장소를 떠올리면, 두 사람이 처음부터 넓은 범위의 작업을 함께했다는 점이 보인다.

니키타부터는 티에리 아르보가스트가 촬영에 합류한다. 그가 찍은 제5원소의 미래는 마지막 전투와 또 다르다. 무너져 비어버린 도시에서 출발한 베송의 SF가 공중을 오가는 차량과 높은 건물이 빼곡한 도시로 바뀐다. 감독의 상상과 함께 그것을 화면으로 옮기는 동료의 얼굴도 바뀌었다.

《The Fifth Element》 스틸 — 두 팔을 든 리루의 뒷모습. 맨발 두 발이 건물 바깥 허공에 떠 있고, 아래쪽으로 건물과 공중 차량들이 보인다.

오래 함께했지만, 일하는 속도는 반대

음악을 맡은 에릭 세라와의 인연은 장편보다 앞선다. 세라는 졸리베를 통해 베송을 알게 됐고, 그의 첫 단편 음악을 맡았다고 회고했다. 마지막 전투를 거쳐 서브웨이에서는 영화음악을 만들면서 베이시스트로 화면에도 등장한다. 드럼 앞의 르노와 베이스를 든 세라가 한 영화 안에 있는 셈이다.

오래 함께한 두 사람이 일하는 방식까지 닮지는 않았다. 베송은 자신이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편인 데 비해, 세라는 생각하고 지켜보며 시간을 들이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일찍부터 알고 지낸 동료의 다른 속도를 감독은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세라에게는 각본 초고부터 음악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그랑블루의 전자음악과 레옹의 타악기·신시사이저가 같은 작곡가에게서 나왔다는 사실도 이 관계를 넓게 보게 한다. 음악 칸에 같은 이름이 남았다고 같은 소리를 되풀이한 것은 아니다. 영화의 장소와 인물이 달라질 때 그에 맞는 소리를 찾는 작업이 이어졌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레옹이나 그랑블루의 익숙한 얼굴을 흑백 폐허에서 만나는 경험은 묘하다. 훗날의 친숙함 덕분에 알아보면서도, 눈앞의 인물이 누구 편인지는 새로 판단해야 한다. 마지막 전투는 베송의 첫 장편이면서 배우와 촬영감독, 작곡가가 자기 몫의 선택을 시작한 영화다. 함께해온 사람들을 알고 보면 말 없는 몸짓과 낯선 공간, 음악의 역할이 더 잘 들여다보인다.

감상 포인트

문 안과 문 밖의 장 르노
병원에 들어가려는 인물과 그를 막는 의사의 관계를 보자. 대사로 목적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누가 문을 지키고 누가 통과하려 하는지에 따라 긴장이 생긴다. 레옹을 본 관객이라면 같은 배우가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된 차이도 떠올릴 수 있다.

가로로 펼쳐진 폐허
무너진 건물이 화면 안에서 어떤 모양으로 남는지 살펴보자. 익숙한 건축물의 용도는 흐려지고, 사람 한 명이 통과하거나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흑백과 긴 화면이 장소를 낯설게 만드는 선택을 볼 수 있다.

말이 적은 영화의 소리
인물끼리 말을 나누지 못하는 동안 어떤 소리가 남는지 귀 기울여보자. 음악이 들리는 대목과 몸이나 물건의 소리가 두드러지는 대목은 다른 인상을 준다. 눈앞의 행동에 소리가 무엇을 더하는지 들어보면 좋다.

관련 작품

제5원소 (1997)
마지막 전투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상상하지만, 비어버린 흑백 세계와 화려하게 붐비는 도시는 정반대의 인상을 준다. 촬영감독은 아르보가스트로 바뀌고 음악에는 세라가 남았다. 협업의 지속과 변화를 한 영화에서 함께 볼 수 있다.

서브웨이 (1985)
도망쳐온 남자가 지하철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폐허에서 누군가를 경계하던 전작과 달리, 이 지하에는 밴드를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르노와 세라가 악기를 맡은 모습은 베송의 동료들을 화면 안에서 만나는 반가운 장면이다.

레옹 (1994)
혼자 살던 킬러가 소녀를 들인 뒤 생활이 달라진다. 마지막 전투에서 문을 두드리던 르노를 기억하면, 문을 열어주는 이 선택이 다르게 보인다. 같은 감독과 배우가 위협과 보호라는 서로 다른 관계를 만드는 작품이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