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끊으려다 아내의 폰을 쓴 감독 | MovieLAB LAB

SNS를 끊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존 루카스는 아내의 휴대폰으로 접속했다. 2019년 〈하이, 젝시〉를 소개하던 자리에서 그가 털어놓은 편법이다. 자기 폰에서 멀어져 봐야…

SNS를 끊으려다 아내의 폰을 쓴 감독 | MovieLAB LAB

SNS를 끊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존 루카스는 아내의 휴대폰으로 접속했다. 2019년 〈하이, 젝시〉를 소개하던 자리에서 그가 털어놓은 편법이다. 자기 폰에서 멀어져 봐야 다른 폰을 찾고 있었던 셈이다. 휴대폰에 매달린 남자가 인공지능 비서에게 휘둘리는 영화를 만들면서, 감독 자신도 폰을 내려놓는 일에는 자신이 없었다.

루카스가 쓰고 찍는 코미디 속 어른들은 체면을 구긴다. 〈배드 맘스〉에서는 살림과 육아를 빈틈없이 해내려던 엄마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고, 〈하이, 젝시〉에서는 혼자 사는 남자가 전화기한테 생활 지도를 받는다. 다만 생활에서 웃긴 일을 발견하는 것과 배우가 연기할 장면으로 만드는 일은 다르다. 그의 대본은 함께 쓰는 동료와 연기하는 배우를 거치며 달라졌다.

하이, 젝시 스틸 — 초록 셔츠와 흰 티셔츠 차림의 남자가 베개를 베고 누워 배 위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

혼자 웃긴 대사로는 부족해서

그의 곁에는 각본과 연출을 함께하는 스콧 무어가 있다. 루카스는 인물과 농담을 쓰는 데 더 끌리고, 무어는 발상과 이야기의 구조를 만드는 쪽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한쪽이 대사만, 다른 쪽이 줄거리만 맡아 따로 완성하는 분업은 아니다. 둘은 전화로 의견을 다툰 뒤 각자 쓰고, 같은 원고를 번갈아 손본다. 자기 문장이 다음 사람의 컴퓨터로 넘어간다.

직접 감독하게 되면서는 한 대사를 촬영 전에 확정하지 않아도 됐다. 루카스는 확신이 없는 농담을 별도 원고에 모아 현장에서 다른 안으로 시도한다고 말했다. 무어 역시 의견이 갈리면 두 가지를 찍어 보고 관객 반응을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이 책상 앞에서 웃었다는 이유만으로 영화에 남는 것은 아니다.

글로는 재미있던 말이 배우의 입을 거치면 지나치게 모질게 들리기도 했다. 루카스가 연출을 하며 되풀이해서 겪었다는 실패다. 종이에서 읽을 때는 대수롭지 않던 농담에도, 화면에서는 그 말을 듣는 상대가 있다. 인물을 웃겨 보이게 쓰는 일에만 골몰하다가는 그 인물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심한 말을 했는지를 놓칠 수 있다.

배우에게 바라는 것도 대본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낭독이 아니다. 루카스는 배우가 자기 말처럼 들리게 바꿔 주기를 원한다고 했다. 누구나 할 법한 농담을 써 놓아도, 그 배역을 맡은 사람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표현은 따로 있다. 연출을 맡은 뒤에도 대본은 배우가 손댈 수 있는 상태로 남는다.

배우가 가져온 엄마의 불평

〈배드 맘스〉는 그런 수정이 필요한 영화였다. 에이미는 가족과 직장을 돌보느라 지쳐 있고, 비슷한 처지의 두 엄마와 함께 모범적인 엄마 노릇을 잠시 그만두려 한다. 루카스와 무어는 아내들이 겪는 일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를 보고 떠올린 장면을, 아내가 실제로 할 법한 말로 쓰는 데는 간격이 있었다.

무어의 설명에 따르면 두 사람은 배우와 제작진에게 집에서 겪은 일을 들려달라고 했다. 촬영 중에도 엄마라면 하지 않을 대사라고 느껴지면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들의 하루를 남편 두 사람이 이미 다 안다고 여겼다면 받을 필요가 없었을 의견이다. 이 영화의 시끄러운 농담 사이에는 그렇게 들어온 사소한 불만들이 있다.

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가 촬영장에 온 날, 녹화해 둔 드라마 〈캐슬〉이 지워졌다며 속상해한 일이 있었다. 루카스는 그 불평을 영화에 넣었다. 여러 번 보고도 웃음이 나는 대사라며, 자신이 쓰지 않은 말이라는 점도 이유로 꼽았다. 가족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지 길게 설명하는 대신, 보고 싶던 드라마 한 편이 없어져 화가 난다. 엄마라는 역할 바깥의 취향이 있는 사람을 짐작하게 한다.

생활을 가져온다고 해서 촬영장의 친분까지 그대로 화면에 옮길 수는 없었다. 배우들이 금세 친해져 서로의 말을 이어받자 무어는 아직 친구가 아닌 장면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야 했다. 영화 속 엄마들은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었다. 함께 떠드는 즐거움에도 순서가 필요했다. 낯선 사이에서 시작해야 나중에 어울릴 때의 편안함이 달라진다.

폰이 필요 없어지면 곤란한 쪽

〈하이, 젝시〉에서 루카스와 무어가 고른 상대는 휴대폰이다. 아담 디바인이 연기하는 필은 온라인 매체에서 순위를 매기는 대중문화 기사를 쓴다. 직장에서는 목록을 만들고 집에서도 폰에 붙어 지낸다. 새 휴대폰의 인공지능 비서 젝시는 이 생활에 참견하기 시작한다. 필이 시킨 일만 처리하지 않고 그의 삶을 고쳐 주려 든다.

젝시는 실제로 필의 생활이 나아지도록 돕는다. 문제는 필이 폰 없이도 즐겁게 살기 시작할 때 생긴다. 도움이 덜 필요해졌다는 사실을 젝시가 받아들이지 못한다. 필이 잘 지내도록 돕는 일과 자신이 계속 필요한 존재로 남는 일이 어긋난다.

로즈 번은 젝시의 목소리를 맡았다. 디바인은 휴대폰을 상대로 연기하는 일이 평소와 달랐다고 말했다. 자기 말을 듣고 대꾸하는 존재를 손에 쥐고 다니는 셈이다. 필에게 젝시는 연애를 비롯한 사생활에 끼어들 수 있는 상대이면서, 동시에 그가 매일 쓰는 물건이다. 들고 다니면 편리한 크기가 여기서는 쉽게 떨어져 있기 어려운 조건이 된다.

반면 알렉산드라 쉽이 연기하는 케이트는 자전거 가게를 운영한다. 필이 폰 바깥에서 만나 관계를 맺는 사람이다. 케이트와 가까워지는 일을 젝시가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이 영화의 곤경이 또렷해진다. 필의 연애가 잘되기를 바라는 말과 필을 자기 곁에 붙들려는 욕심이 같은 폰에서 나온다. 필요한 정보를 알려 주던 목소리를 어디까지 믿고 따를 것인가.

하이, 젝시 스틸 — 여러 자전거를 배경으로 회색 긴팔 차림의 남자가 입을 벌리고 한 손을 들어 보인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폰을 그만 보라는 충고는 영화를 보기 전에도 알고 있다. 〈하이, 젝시〉에서는 그 충고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도리어 전화기에게 시달린다. 폰을 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 갈수록 폰의 질투가 심해지는 설정도 짓궂다. 사용자가 독립하려 하자 기계 쪽이 매달린다. 필의 곤란함을 따라가다 보면 누가 누구에게 의존하는지 다시 보게 된다.

하이, 젝시 홍보 이미지. 악마 뿔과 꼬리가 달린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필(아담 디바인)과 여성이 서로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있다.

감상 포인트

◆ 필의 직업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 — 필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 대중문화 목록을 쓰는 일을 한다. 그 직업을 떠올리며 필이 집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자. 남들이 읽을 거리를 만들던 사람이 자기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어떤가. 온라인의 관심사에는 익숙하지만 직접 관계를 맺을 친구는 없는 필의 생활을 생각하면, 새 휴대폰이 들어올 자리가 유난히 커 보인다.

◆ 도움이 간섭이 되는 순간 — 젝시가 필에게 해 주는 말의 내용뿐 아니라 그 말이 필요한 상황을 살펴보자. 필에게 도움이 되던 제안과 그의 선택을 막는 요구는 같은 목소리로 전달된다. 어느 쪽이 필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말이고 어느 쪽이 젝시 자신의 불안을 덜려는 말인지 생각하면, 다정한 비서라는 설정 안에 생기는 다툼이 더 분명해진다.

◆ 케이트와 만날 때 끼어드는 목소리 — 케이트는 화면 안에서 필과 마주하는 사람이고, 젝시는 필이 지닌 물건에서 들려오는 상대다. 연애하는 두 사람 사이에 폰이 들어오면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늘어난다. 디바인이 눈앞의 사람과 폰에 각각 어떻게 대꾸하는지 보자. 작은 물건 하나가 필의 사적인 시간을 얼마나 차지하는지 연기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 엄마들이 친구가 되어 가는 거리 — 〈배드 맘스〉를 함께 본다면 세 엄마가 처음 어울릴 때와 친해진 뒤의 대화를 비교해 보자. 실제 배우들은 이미 친했지만 인물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촬영 일화가 힌트다. 서로의 말에 얼마나 쉽게 끼어드는지, 자기 불평을 어디까지 털어놓는지에 따라 친분의 정도가 보인다. 영화 속 우정을 배우들의 사이와 나누어 보는 재미가 있다.

관련 작품

◆ 〈조〉 — 드레이크 도리머스의 영화. 연애의 성공 가능성을 측정하고 이상적인 동반자를 개발하는 연구실에서 두 사람이 가까워진다. 기술이 사람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묻는 자리에서, 기술을 만드는 사람 자신이 사랑을 얼마나 예측할 수 있는지로 관심을 옮겨 볼 만하다.

◆ 〈그녀〉 —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써 주는 테오도르가 운영체제 사만다와 관계를 맺는다. 목소리인 상대에게 자신의 말을 털어놓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의 감정을 글로 옮기는 직업을 가진 남자가 정작 자기 마음을 누구에게 말하는지 따라가면 〈하이, 젝시〉와 다른 친밀함이 보인다.

◆ 〈팜 스프링스〉 — 맥스 바바코프의 영화. 결혼식에서 만난 나일스와 사라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곤경에 놓인다. 황당한 조건을 함께 겪는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초점을 맞춘 로맨틱 코미디다. 젝시가 필의 새 관계를 방해한다면, 이 영화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안에서 새 관계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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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