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영화가 때로는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196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산타클로스, 화성을 정복하다는 개봉 당시부터 악평 속에 묻혔지만, 60년이 지난 지금도 해마다 크…
최악의 영화가 때로는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196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산타클로스, 화성을 정복하다는 개봉 당시부터 악평 속에 묻혔지만, 60년이 지난 지금도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이 영화를 틀고 있다. 퍼블릭 도메인에 놓인 이 영화는 수십 개의 버전으로 복제되어 인터넷을 떠돌고, 미국 컬트 TV 프로그램이 가장 사랑한 단골 소재가 되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나쁨 그 자체다. 그 나쁨이 어떻게 60년을 버티는 힘이 되었는지 따라가 본다.

1964년 크리스마스 개봉작 《산타클로스, 화성을 정복하다》. 악평 속에 묻혔지만 60년째 크리스마스마다 소환되는 영화다.
1964년, 우주는 가장 뜨거운 상상력의 공간이었다. 소련이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린 것이 1957년, 존 글렌이 지구 궤도를 도는 데 성공한 것이 1962년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달 착륙을 국가 목표로 선언했고, NASA는 매달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냈다. 미국의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핵 대피 훈련을 받으면서도 우주인을 꿈꾸던 세대였다. 이 시대적 흥분이 어린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이 영화다.
제작사 잘로 프로덕션(Jalor Productions)은 대형 스튜디오와는 거리가 먼 소규모 독립 프로덕션이었고, 배급은 조지프 E. 레빈의 엠버시 픽처스(Embassy Pictures)가 맡았다. 어린이를 위한 저예산 SF 크리스마스 영화라는 콘셉트는 당시 시장의 빈틈을 노린 것이었다. 아이들은 우주를 사랑했고 산타클로스도 사랑했다. 그렇다면 둘을 합치면 어떨까? 이 단순한 계산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영화의 전제는 냉전 시대의 불안을 기묘하게 반영한다. 화성의 어린이들은 지구의 TV 방송을 수신하여 산타클로스(존 콜)를 알게 되었고, 지구 어린이들처럼 웃지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한다. 화성의 지도자 키마르(Kimar, 레너드 힉스)는 자녀 세대의 정서적 공허를 해결하기 위해 산타를 화성으로 납치하기로 결심한다. 표면상 어린이 코미디지만, 소련을 연상시키는 비인간적 화성 문명이 지구(미국)의 문화를 탐낸다는 설정에는 당대 냉전의 불안이 아마도 의도치 않게 스며있다.
촬영은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화성 세트를 만들기 위한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골판지와 은박지로 만든 벽면, 스티로폼 암석, 그리고 역사상 가장 의심스러운 로봇 의상 중 하나였다. 로봇 '토르그(Torg)'는 목재 틀에 은색 페인트를 칠하고 호스와 전구를 붙인 물건이었다. 이 영화가 60년 후에도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그 단순함이다. 결핍이 매력이 된 드문 사례.
이 영화의 플롯은 어른의 시선으로는 구멍투성이지만, 어린이의 시선으로는 일관된 내부 논리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흥미롭다. 어떤 관객을 위해 만든 영화인지가 모든 선택을 설명한다.
화성인들이 지구에 도착하는 과정은 경이로울 만큼 단순하다. 그들은 투명 차단막으로 지구 어린이들을 생포하고, 북극에서 산타클로스를 찾아내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 과정에서 지나가던 에스키모 노인을 산타로 오해하는 장면이 나오고, 마침내 진짜 산타의 거처를 찾아낸다. 논리적 개연성을 따지는 일은 처음부터 접는 편이 낫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화성인 악당 볼다르(Voldar, 빈센트 벡)가 이 영화의 유일한 갈등 축이다. 그는 지구 문명의 영향이 화성 문화를 오염시킨다고 믿는 보수적인 화성인으로, 산타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의 계략은 매번 어설프게 무산된다. 장난꾸러기 화성인 드로포(Dropo, 빌 맥커천)가 산타 코스튬을 입고 진짜 산타를 대신하는 결말, 산타의 크리스마스 정신에 감화되는 화성 어린이들 — 영화는 어른들이 예상하는 방향과 늘 한 박자씩 다른 선택을 한다.
로봇 토르그의 서사가 이 영화에서 가장 교훈적이다. 볼다르는 어린이들과 산타를 위협하려고 토르그를 동원하지만, 어린이 주인공 빌리(빅터 스타일스)가 스위치 하나를 찾아내 간단히 꺼버린다. 막강한 위협으로 등장했다가 장난감처럼 무력해지는 이 로봇의 처지는, 의도했든 아니든, 어린이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어른들의 두려움은 어린이의 눈에는 별것 아니다.
산타 역을 맡은 존 콜은 뮤지컬 무대 출신 배우로, 이 역할을 위해 특별히 캐스팅되었다. 그의 산타는 상황이 아무리 황당해도 흔들림 없이 '호호호'를 터뜨리는 강인한 존재다. 우연이든 계산이든, 그 흔들리지 않는 태도 덕분에 산타는 주변의 혼돈 속에서 어딘가 신화 속 인물처럼 보인다.
니컬러스 웹스터는 1964년 당시 이미 TV 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감독이었다. 그는 주로 TV 드라마 시리즈를 연출했으며, 산타클로스, 화성을 정복하다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되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웹스터의 이력에서 이 영화가 차지하는 위치는 아이러니하다. 그가 이후 연출한 수십 편의 진지한 TV 드라마보다, 이 어린이용 B급 SF 한 편이 그의 이름을 영화사에 남겼다. 이것이 컬트 영화의 법칙이다. 의도가 아니라 인상이 기억을 결정한다. 웹스터는 크리스마스 어린이 영화를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남긴 것은 '나쁜 영화의 위대한 유산' 중 하나였다.
제작 과정은 내내 부족한 예산에 발목이 잡혔다. 화성 세트는 롱아일랜드의 창고를 개조해 지었고, 촬영 일정은 빡빡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들은 주어진 예산 안에서 최선을 다해 우주의 분위기를 내야 했다. 그 결과물이 은박지 벽면과 깜박이는 조명 패널이었다. 오늘날 이 장치들은 레트로 SF 미학의 상징처럼 읽힌다. 당대의 한계가 훗날의 스타일이 되었다.
화성인 의상 디자인도 이 영화의 주요 볼거리다. 초록색 얼굴 분장과 앞뒤가 뾰족한 헬멧, 은색 점프수트의 조합은 1960년대 미국 어린이들이 상상한 '외계인'의 전형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 의상들이 오늘날 값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 시절 사람들이 그리던 미래가 지금 우리에게는 복고다. 이 의상들을 보면 1964년 사람들이 우주를 어떻게 상상했는지가 고스란히 보인다.

이 영화의 크레딧에 담긴 이름 하나가 60년 후의 관객에게는 남다르게 읽힌다. '기르마(Girmar)' 역의 어린 배우 피아 자도라. 훗날 미국 대중문화사에 독특한 궤적을 남기는 인물이다.
1964년, 피아 자도라는 열 살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화성의 어린 소녀로 등장하며, 산타클로스와 지구 어린이들의 순수한 기쁨에 감화되는 역할을 맡았다. 영화 속 그녀의 연기는 나이에 걸맞게 자연스러우며, 과장된 어른 배우들의 연기 사이에서 오히려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그녀는 주어진 장면을 성실하게 소화했고, 결과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믿음이 가는 연기를 남겼다.
자도라가 훗날 쌓아갈 커리어를 떠올리면 이 영화가 기묘하게 겹쳐 보인다. 1982년 그녀는 버터플라이로 골든 글로브 신인 배우상을 수상했는데, 이 수상이 홍보 활동의 결과라는 의혹을 받으며 격렬한 논쟁을 낳았다. 이후 자도라는 비평가들의 혹평과 대중의 놀림 속에서도 커리어를 이어갔고, 결국 미국 대중문화에서 '논쟁적 인물'의 대명사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나쁜 영화'의 이력이 1964년 크리스마스 SF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묘하게 앞뒤가 맞는다.
이 영화에서 피아 자도라를 찾아내는 것은 컬트 팬들에게 일종의 보물찾기가 되었다. 특히 이 영화가 컬트 TV 프로그램에서 재조명된 뒤로, 그녀의 어린 시절 연기에 새로운 의미가 붙었다. 미국 B급 문화의 전설적 인물이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목격하는 경험. 이 장면들이 지닌 독특한 결이다.
산타클로스, 화성을 정복하다가 진정한 컬트 지위를 획득한 것은 TV 프로그램 미스터리 사이언스 시어터 3000(Mystery Science Theater 3000, 이하 MST3K)과 만나면서였다. MST3K는 1988년부터 방영된 프로그램으로, 최악의 B급 영화를 스크린에 틀어놓고 실루엣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영화를 보며 실시간 코멘트를 쏟아내는 형식의 코미디였다.
1991년 크리스마스 시즌 MST3K가 이 영화를 특집으로 고른 것은 필연에 가까웠다. 호스트 조엘 호지슨과 로봇 캐릭터들이 쏟아내는 날카롭고 다정한 조롱은 이 영화의 황당함을 관객이 즐길 거리로 바꿔놓았다. 나쁜 영화는 혼자 보면 당혹스럽지만, 여럿이 모여 웃고 놀리면 유쾌한 공동체 경험이 된다. MST3K는 이 공식을 TV로 옮긴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공식을 위한 최고의 소재였다.
MST3K 방영 이후 이 영화의 문화적 위상은 전환점을 맞았다. '나쁜 영화' 목록의 한 항목에 그치지 않고, 나쁜 영화를 즐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재가 되었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조롱의 대상이 된 영화들 대부분은 잊히지만, MST3K의 조롱을 통과한 영화들은 오히려 기억된다. 이 영화는 후자의 운 좋은 사례가 되었다.
퍼블릭 도메인이라는 법적 지위도 이 영화의 확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저작권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채 일찌감치 공공 영역으로 넘어갔다(미국 밖에서는 스튜디오카날이 권리를 보유한다). 수십 개의 비디오 레이블이 합법적으로 이 영화를 복제하여 저가 비디오, DVD,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유통했다. 다양한 화질의 불량 프린트들이 인터넷을 떠돌았고, 그 화질의 저하가 오히려 이 영화의 'B급' 이미지를 강화하는 아이러니한 효과를 낳았다.
인터넷 시대에 이 영화는 또 한 번 부활했다. 유튜브에서 무료로 시청할 수 있고, 아카이브.org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으며,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각종 미디어의 "최악의 크리스마스 영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이렇게 해마다 불려 나오는 덕에 영화는 계속 살아 있다. 잊히지 않는 최악은, 어떤 의미에서 살아남은 최선이다.

나쁜 영화를 잘 보는 것도 영화를 잘 보는 방법 중 하나다. 산타클로스, 화성을 정복하다는 영화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얼마나 상대적인지를 유쾌하게 증명한다. 60년간 "최악의 영화" 목록에 이름을 올리면서도 해마다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이 영화는 동시대의 수많은 블록버스터보다 질기게 살아남았다. 기억되지 않는 평범함보다, 조롱받는 특이함이 오래 간다.
1964년이라는 시대를 체험하는 창으로서도 이 영화는 유효하다.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미국 사회에 퍼진 우주 열풍, 냉전 시대의 불안이 어린이 오락물에 스며드는 방식, 저예산 독립 영화 제작 생태계의 실제 풍경이 이 한 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1964년 미국 어린이들의 상상력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이 우주를 어떻게 그렸는지, 화성인이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산타클로스가 어떤 의미였는지.
크리스마스 시즌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보기에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완벽하다. MST3K처럼 화면을 보며 서로 코멘트를 던지다 보면 이만한 감상이 없다. 나쁜 영화를 함께 비평하고, 놀리고, 웃으면서 생기는 공동체적 유대감. 컬트 영화만 줄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다. 좋은 영화는 감동을 나누게 하고, 나쁜 영화는 웃음을 나누게 한다. 어느 쪽이 더 가볍고 다가가기 쉬운지는 자명하다.
◆ 오프닝 곡 '후레이 포 산티 클로스' — "Hooray for Santy Claus"라는 제목의 이 오프닝 넘버는 이 영화를 대표하는 또 다른 '명장면'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후렴구, 열정적인 어린이 합창. 한번 들으면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노래다.
◆ 로봇 토르그의 등장과 퇴장 — 화성인의 비밀 무기로 위협적으로 등장한 토르그가 어린이 손에 단번에 무력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라. 의상의 재질과 움직임의 어색함도 함께 관찰하면 더 풍성한 감상이 된다.
◆ 북극곰 등장 장면 — 어린이들이 북극에서 북극곰과 마주치는 짧은 장면에서 의상의 솔기와 배우의 동선을 확인하라. 이 영화에서 의도치 않은 웃음이 터지는 최고의 순간 중 하나다.
◆ 피아 자도라의 얼굴 — 크레딧에서 기르마 역을 찾아, 화면 속 열 살 소녀를 확인하라. 훗날 미국 대중문화의 논쟁적 아이콘이 될 인물의 첫 번째 무대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그 장면이 달리 보인다.
◆ 화성 세트의 재질 — 배경이 가까이 잡히는 장면마다 재질을 살펴보라. 스티로폼 암석, 은박지 벽, 골판지 패널, 깜박이는 전구들 — 이것이 1964년 롱아일랜드의 창고에서 탄생한 화성의 모습이다.
◆ 로봇 몬스터 (1953) — 고릴라 의상에 우주 헬멧을 얹어 만든 '로봇 몬스터'로 유명한 이 작품은 나쁜 영화 컬트의 또 다른 정전이다. 토르그와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는 로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 글렌 오어 글렌다 (1953, 에드 우드) —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불린 에드 우드가 남긴 대표적 컬트작. 에드 우드의 비극적 진지함과 이 영화의 유쾌한 무심함을 비교하면 B급 영화의 두 가지 태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 십대 괴물 (1958) — 같은 시대, 비슷한 예산으로 만들어진 어린이 SF의 또 다른 사례. 이 영화들을 나란히 보면 1950~60년대 저예산 어린이 장르 영화의 생태계 전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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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