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착과 나의 진심 | MovieLAB LAB

나를 좋아하는 사람의 열정은 부담스럽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일은 절실하다. 생활의 발견의 경수(김상경)는 두 상황을 모두 겪는다. 춘천에서는 여자가 다가오고, 경주…

남의 집착과 나의 진심 | MovieLAB LAB

나를 좋아하는 사람의 열정은 부담스럽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일은 절실하다. 생활의 발견의 경수(김상경)는 두 상황을 모두 겪는다. 춘천에서는 여자가 다가오고, 경주에서는 자신이 여자를 쫓는다. 장소가 바뀌는 동안 사랑을 설명하는 기준도 슬그머니 바뀐다.

경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배우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고 다음 출연 약속까지 어긋나자 서울을 떠난다. 김상경의 경수에게서 낙심한 기색을 읽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홍상수의 영화는 그 낙심을 충분한 면죄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연애에서 덜 이기적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팬을 만났을 때

춘천에서 만난 무용가 명숙(예지원)은 경수의 팬이다. 배우로서 자신감을 잃고 온 남자에게 이보다 반가운 소개도 드물 것이다. 예지원이 연기하는 명숙은 마음을 숨기지 않고 다가간다. 경수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명숙을 만난다.

하지만 자신을 좋아해주는 일이 처음의 반가움을 넘어 요구가 되면 경수는 물러난다. 호감을 받을 때 얻는 기분과 그 호감에 응답해야 할 때의 수고를 따로 계산하는 셈이다. 상대가 먼저 좋아했다는 사실은 그에게 묘한 여유를 준다. 관계가 빨리 가까워졌어도 다음 속도까지 맞출 필요는 없다는 듯 행동할 수 있다.

영화는 명숙의 적극성을 경수의 시선으로만 받아들이게 두지 않는다. 나중에 그가 보일 행동을 생각하면, 처음에 부담스럽게 느껴지던 말과 몸짓도 다르게 돌아온다. 누구의 마음이 더 우스운지 판정하려던 관객이 자기 기준을 고쳐 잡게 된다.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운 남녀

이번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

경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선영(추상미)은 경수를 예전부터 안다고 한다. 배우를 알아보는 두 번째 여자지만, 이번의 과거는 경수에게 선명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일이 언제나 기분 좋은 인정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자기가 모르는 자신의 모습이 상대에게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경수는 이제 선영에게 끌려 그녀를 따라간다. 춘천에서와 달리 상대의 반응을 기다려야 하는 쪽이 된다. 명숙이 먼저 다가왔을 때는 한발 물러나던 남자가, 이번에는 여자에게 가까워지려고 애쓴다. 도시가 바뀌자 두 사람의 관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자리도 바뀐다.

관객은 두 도시를 모두 보았다. 경수가 선영의 반응을 기다리는 동안, 앞서 명숙이 그에게 다가가던 모습도 떠올릴 수 있다. 춘천에서는 명숙의 마음이 너무 앞선다고 느꼈더라도, 경수가 같은 처지가 되고 나면 그 조급함이 조금은 이해된다. 두 번째 만남을 보면서 첫 번째 만남의 인상까지 달라지는 것이다.

말이 근사해지기 전에 움직이는 몸

홍상수 영화의 인물을 말 많은 사람으로 기억하기 쉽지만, 이 작품에는 말로 다 정리되지 않는 버릇들이 유난히 눈에 걸린다. 술을 마시며 몸을 흔들거나 당황해서 손부채질하는 동작은 사건을 진전시키지 않는다. 대신 인물이 말로 설명하지 않은 당황함이나 들뜬 기분을 드러낸다.

이런 버릇과 사소한 경험은 촬영 전 배우들이 들려준 이야기에서 영화로 옮겨왔다. 손부채질은 김상경이 알고 지낸 사람의 버릇이었다. 아침에 경수와 명숙이 잠에서 깨는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실제로 일어나 처음 내는 목소리를 담았다. 촬영 전에는 말을 하지 않도록 했다. 유창하게 다듬은 말보다 막 잠에서 깬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함을 생생하게 전한다.

팔을 벌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수

경수의 이기적인 행동을 알아보면서도 내내 미워하기만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이 앞서 몸을 들썩이거나 당황해서 손부채질하는 모습에는 숨기지 못한 초조함이 있다. 그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쩔쩔매는 마음은 알 것 같다. 경수를 보며 웃다가 멋쩍어지는 건, 남의 행동을 평가하던 눈으로 자신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여행이 사람을 바꾸어놓는다는 기대가 들 때, 경수가 도시를 옮기는 모습을 함께 떠올려볼 만하다. 같은 행동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는 경수의 모습이 낯익어서 민망해진다. 큰 반전보다 작은 반복을 알아보는 즐거움으로 홍상수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관련 작품

◆ 해변의 여인 (2006, 홍상수) — 일을 하러 떠난 영화감독의 연애가 뒤엉킨다. 장소를 옮겨도 남는 자기중심성을 다른 배우들의 리듬으로 볼 수 있다.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5, 홍상수) — 한 만남을 다시 시작하며 말과 행동의 차이가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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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