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앤〉의 주방 장면에는 개 그림이 있는 셔츠가 나온다. 감독 켄트 존스가 이 영화의 의상을 이야기하며 콕 집어 떠올린 옷이다. 왕족의 드레스나 전쟁 영웅의 군복이라면 의상에 …
〈다이앤〉의 주방 장면에는 개 그림이 있는 셔츠가 나온다. 감독 켄트 존스가 이 영화의 의상을 이야기하며 콕 집어 떠올린 옷이다. 왕족의 드레스나 전쟁 영웅의 군복이라면 의상에 공을 들였겠거니 한다. 누군가 집에서 입고 있을 법한 셔츠는 대개 그냥 지나친다. 오랫동안 영화를 보고 글을 써 온 존스도, 직접 극영화를 만들면서야 평범한 옷을 골라 입히는 일을 새삼 배웠다고 했다.
존스는 영화평론가였고, 뉴욕영화제에서 상영할 작품을 고르던 사람이었다. 〈히치콕 트뤼포〉처럼 영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첫 장편 극영화 〈다이앤〉에서는 자신이 기억하는 집안 어른들의 세계를 찍었다. 그 사람들의 말투는 대본에 옮길 수 있었다. 이제 배우들이 그 말을 주고받고, 어울리는 옷을 입고, 한 방에 모여야 했다.
〈히치콕 트뤼포〉는 1962년 프랑수아 트뤼포와 알프레드 히치콕이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한다. 두 감독이 작품을 하나씩 짚으며 이야기한 내용은 책으로 묶여 널리 읽혔다. 존스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이 책을 읽고 히치콕의 영화를 거듭 보았다. 책 속 설명과 영화 속 장면을 오랫동안 오가던 독자가, 이번에는 대화가 담긴 녹음을 들었다.
그에게 책 속 히치콕은 냉정하고 정확하며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녹음에서는 훨씬 따뜻하고 즉흥적이었다. 농담도 재미있었다. 자신이 인물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어야 했는지 되돌아보는 대목 역시, 글로 읽을 때와 직접 목소리로 들을 때의 무게가 달랐다. 완성된 영화를 능숙하게 설명하는 거장에게도 아쉬움이 있었다. 존스가 귀 기울인 것은 이미 알려진 촬영 비결만이 아니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대화를 이어받는 이들 역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존스는 마틴 스콜세지, 데이비드 핀처 같은 감독들을 불러, 그들이 이 책과 영화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이야기하게 했다. 만드는 사람끼리의 대화를 이어가려는 선택이었다. 어떤 장면을 좋아한다는 말에 그 장면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따라붙는다. 히치콕이 자기 작업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듯한 친밀함이 생긴다.
존스가 자신의 첫 극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삼은 사람은, 남을 챙기느라 바쁜 중년 여성이다. 〈다이앤〉의 주인공은 아픈 사람을 찾아가고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하며, 약물 중독에 시달리는 아들을 챙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메리 케이 플레이스가 연기하는 다이앤을 따라가는 동안,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 저 사람은 늘 남의 안부를 묻는데, 정작 자기 상태를 살필 틈은 있을까.
존스에게는 그런 삶을 가까이서 본 기억이 있었다. 어머니는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족에게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자라면서 그는 또 음식을 가져다주는 거냐며 빈정대기도 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일을 새롭게 생각했다. 그의 회고에는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과, 그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던 아들의 뒤늦은 깨달음이 함께 있다.
하지만 〈다이앤〉을 착한 어머니에게 바치는 칭찬으로만 보면 인물을 너무 일찍 이해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이앤은 남을 챙기면서도 답답해하고 화를 낸다. 아들이 자신을 믿어 달라고 하면 망설인다. 돕고 싶은 마음과 이제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한 사람 안에 있다. 선행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사람이 하루를 어떻게 견뎠는지 알 수 없다. 존스는 다이앤이 마음대로 쉬지도, 흔쾌히 돕지도 못하는 순간을 따라간다.
배우를 정하는 데도 개인적인 기억이 작용했다. 집안 어른들의 세계를 영화로 옮기고 싶었던 존스는 〈레인메이커〉에서 메리 케이 플레이스를 본 뒤, 이 영화를 그 배우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기억하던 말투도 대본에 들어갔다. 주방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은 편안하게 들리지만, 대사를 마음대로 만들어내도록 내버려 둔 결과가 아니었다. 존스는 이제 잘 들을 수 없는 표현까지 정확히 쓰고 싶어 했다. 가족끼리는 말끝 하나만 들어도 누구 목소리인지 알아챌 때가 있다. 그가 옮기려던 기억에는 그런 소리가 포함돼 있었다.
말을 정해 두었다고 장면까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다이앤〉을 준비하며 배우들은 방의 크기에 맞춰 바닥에 테이프를 붙인 공간에서 동선을 연습했다. 메리 케이 플레이스와 아들 역의 제이크 레이시는 촬영 전에 서로 움직일 자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도 실제 장소에 들어서자 달라지는 것이 있었다고 플레이스는 회고했다. 동선을 정해 놓고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실제 장소에서 상대 배우와 주고받을 반응까지 미리 알 수 없었다.
주방 장면에서도 존스는 자기 기억을 한 치 오차 없이 재현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대사는 지키되, 배우들이 함께 장면을 만들어갈 여지는 뒀다. 플레이스 역시 자유롭게 조정한 것은 대사 자체가 아니라 장면을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기억 속 사람들과 똑같이 말하고 움직이라고 요구했다면, 배우들은 자신이 만나 본 적도 없는 누군가를 복사해야 했을 것이다. 존스에게 필요했던 것은 지금 주방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오래 알아 온 사이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개 그림이 있는 셔츠도 그런 작업의 일부였다. 의상 담당자는 옷들을 가져왔고, 감독은 그 세심함에 놀랐다. 생활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배우가 입을 옷을 실제로 고르는 것은 달랐다. 집안 어른을 떠올려 보면 옷차림이 기억에서 빠지지 않는다. 유난히 즐겨 입던 옷이나 아무렇지 않게 걸치던 모자가 얼굴과 함께 떠오른다. 〈다이앤〉의 의상은 인물이 화면 밖에서도 자기 취향대로 옷을 골라 입으며 살아왔을 것 같은 인상을 보탠다.
켄트 존스의 영화를 보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 좀 더 쉽게 끼어들 수 있다. 〈히치콕 트뤼포〉에서는 거장의 답변을 따라가다가도 웃음이나 아쉬움에 귀가 간다. 유명한 감독의 이력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보다, 그 사람이 왜 거기서 그렇게 말했는지가 궁금해진다. 영화에 관한 지식은 그 목소리를 더 듣고 싶어질 때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다이앤〉에서는 그 관심을 가까운 사람에게 돌릴 수 있다. 가족을 챙기는 일에 익숙해 보이는 사람도 매번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피로와 짜증이 섞였다고 돌봄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메리 케이 플레이스가 아들의 말을 듣고 반응하는 짧은 순간에도, 오래 쌓인 피로가 드러난다.
◆ 답변의 내용과 말하는 기분 — 〈히치콕 트뤼포〉에서 촬영에 관한 설명을 들을 때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책을 읽지 않았어도 농담하거나 자기 작업을 되돌아보는 사람의 기분은 따라갈 수 있다. 평소 떠올리던 히치콕의 이미지와 실제 대화 속 인상이 어디에서 달라지는지 살펴보면 좋다.
◆ 대화를 이어받는 감독들 — 다른 감독들이 등장할 때 이름을 모두 외울 필요는 없다. 각자가 어떤 장면에 관심을 두는지, 같은 영화에서 어떤 점을 다르게 보는지 들어보자. 좋아하는 이유가 구체적일수록 그 장면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진다. 존스가 감독들의 대화로 영화를 구성한 효과도 거기서 느껴진다.
◆ 도와주는 사람의 망설임 — 〈다이앤〉에서는 주인공이 얼마나 좋은 일을 하는지 셈하기보다, 상대의 말을 듣고 답하기까지를 살펴보자. 특히 아들과 함께 있을 때 돕고 싶은 마음만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 사정이 드러난다. 잠깐의 망설임이나 짜증을 놓치지 않으면 익숙한 헌신의 이야기에서도 다른 감정이 보인다.
◆ 옷을 입고 살아온 시간 — 〈다이앤〉의 인물들이 걸친 셔츠와 모자를 눈여겨보자. 모든 무늬에서 숨은 상징을 찾을 필요는 없다. 옷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익숙해 보이는지, 주변 사람들과 어떤 분위기로 어울리는지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사로 소개되지 않은 생활도 의상과 배우의 몸을 통해 전해진다.
◆ 〈히치콕 트뤼포〉 —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 작업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책의 명성을 알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우선 목소리와 영화 속 장면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좋다. 좋아하는 영화를 더 자세히 보고 싶어지는 호기심이 존스의 작업을 이해할 첫 단서가 된다.
◆ 〈다이앤〉 — 메리 케이 플레이스를 중심에 둔 존스의 첫 장편 극영화. 남을 돌보느라 분주한 여성을 따라가며 그 일상 안에 남아 있는 복잡한 마음을 살핀다. 감독이 기억하는 사람들의 말투와, 배우들이 실제로 주고받는 호흡이 어떻게 만나는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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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