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범인을 잡아도 끝나지 않는 밤 | MovieLAB LAB

범인을 붙잡았는데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추격자〉에서 중호는 달아나는 남자를 따라가 몸싸움 끝에 잡는다. 남자는 경찰서에서 살인까지 인정한다. 보통이라면 사건이 풀려갈 대목이…

나홍진, 범인을 잡아도 끝나지 않는 밤 | MovieLAB LAB

범인을 붙잡았는데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추격자〉에서 중호는 달아나는 남자를 따라가 몸싸움 끝에 잡는다. 남자는 경찰서에서 살인까지 인정한다. 보통이라면 사건이 풀려갈 대목이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만난 여자 미진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이제 범인의 얼굴을 아는 것보다 그 여자를 찾아갈 주소 하나가 더 절실해진다.

나홍진의 첫 장편은 이렇게 관객의 관심을 바꿔놓는다. 누구를 잡아야 하는지 알아냈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이 끝나지는 않는다. 더 늦기 전에 찾아야 한다는 마음이 급해진다. 범인을 쫓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까. 이 감독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잔혹함 뒤에는, 한 사람을 찾는 일이 왜 이토록 늦어지는가 하는 조바심이 있다.

남을 구할 것 같지 않은 사람

그런데 미진을 찾는 중호부터 믿음직하지 않다. 전직 형사인 그는 지금 성매매 업소를 운영한다. 업소에서 일하던 여자들이 사라지자, 그는 이들이 빚을 갚지 않고 도망쳤다고 여긴다. 김윤석이 연기하는 이 남자는 사라진 사람의 안부보다 손해부터 따진다. 영화는 그런 중호에게 남을 위해 달리는 일을 맡긴다.

나홍진은 이 선택을 두고, 처음부터 의로운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가 상상한 쪽은 오히려 갇혀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바깥의 누군가가 자신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희망. 그 일을 맡은 사람이 반드시 훌륭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영화는 중호의 좋은 면을 미리 보여주며 믿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무슨 생각으로 출발했든 지금 그가 무엇을 하는지 보게 한다.

덕분에 중호를 응원하는 일에도 꺼림칙함이 남는다. 미진을 위험한 곳에 보낸 사람이 이제 미진을 찾는다. 그가 열심히 뛴다고 앞선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중호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미진을 찾기를 바라게 되는 이유다. 나홍진은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와 그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을 따로 생각하게 한다.

〈곡성〉의 경찰 종구에게는 훨씬 알기 쉬운 이유가 있다. 자기 딸이 아프다. 마을의 이상한 사건을 조사하던 사람이 어느새 자기 집을 지켜야 하는 처지가 된다. 곽도원이 연기하는 종구는 겁도 많고 능숙하지도 않지만, 그가 절박해지는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간절하다고 무엇이 옳은지 알게 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딸을 도우려면 누군가를 믿어야 하는데, 그 믿음이 딸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

두 영화의 아슬아슬함은 서로 다르다. 중호에게는 아직 찾아야 할 사람이 있고, 종구에게는 눈앞에서 아픈 가족이 있다. 한쪽은 시간을 잃을까 두렵고 다른 쪽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두렵다. 나홍진은 그 두려움을 관객에게도 나눠준다. 여유 있게 인물을 평가하다가도, 막상 그가 움직여야 할 때가 오면 선뜻 대안을 말하기 어렵다.

좁은 골목에서 앞뒤로 달리는 두 남자

달리는 길부터 험하게

〈황해〉의 구남은 그보다 먼저 자기 사정에 떠밀린다. 빚에 쫓기는 연변의 택시 운전사는 한국으로 간 아내와 연락이 끊겼다. 그때 면가가 사람을 죽이고 오라는 일을 내민다. 하정우가 연기하는 구남에게 한국에 가는 일은 돈 문제와 아내를 찾는 일을 한꺼번에 해결할 기회처럼 보인다. 끔찍한 제안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거절하고 나서 당장 어떻게 살아갈지가 막막하다.

구남이 받아든 것은 일의 전부를 설명해주는 계획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정한 조건이다. 그 일을 해내려면 낯선 곳에서 사람을 찾고 길을 알아내야 한다. 관객은 그가 어디에 도착할지 궁금하면서도, 일단 그곳에 갈 수는 있을지 걱정하게 된다. 나홍진은 인물에게 목적지만 주고 그 사이의 수고를 생략하지 않는다. 길을 찾아 움직이는 동안 인물의 처지가 드러난다.

감독에게도 연변은 처음부터 잘 아는 곳이 아니었다. 나홍진은 〈황해〉를 준비하며 연변에서 두 달을 보냈다. 머릿속에는 누런 빛의 도시가 있었지만 실제로 만난 곳은 회색에 가까웠다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해둔 도시와 실제 풍경의 차이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낡은 건물 앞에서 악수하는 두 남자

〈추격자〉의 골목에도 감독이 걸어본 길이 있다. 시나리오를 쓰던 집 주변의 비탈길이 배경을 구상하는 데 영향을 줬다. 서로 다른 집이 모인 동네를 원했고, 북아현동을 주요 촬영지로 골랐다. 도시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지도와 사람이 뛰어다니는 길은 다르다. 언덕을 넘어도 그다음 골목이 남아 있다. 중호가 아무리 서둘러도 화면 속 동네가 금방 작아지지는 않는다.

이렇게 놓고 보면 두 영화의 추격은 속도를 겨루는 장면만으로 남지 않는다. 중호에게는 도시 안에서 찾아야 할 집이 있고, 구남에게는 국경을 넘어 찾아가야 할 사람이 있다. 두 사람 다 몸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일보다 더 큰 일을 떠안았다. 숨이 차는 모습을 오래 따라가는 동안, 관객도 그 일이 생각보다 멀고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계획한 장면보다 좋은 장면

그렇다고 나홍진이 영화의 모든 모습을 처음부터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곡성〉을 찍을 때 그는 콘티대로 가야 한다는 고집을 내려놓았다고 설명했다. 〈황해〉를 마치고 돌아보니 자신이 유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촬영 현장에서 홍경표와 이야기하고 그날의 상황에 맞춰 결정하는 쪽으로 작업을 바꿨다.

나홍진은 그전까지 장면을 잘게 나눠 어떤 순서로 붙일지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홍경표가 찍어온 풍경을 보고 한 컷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여러 장면을 연결해 관객을 몰아가는 일과, 하나의 풍경 앞에 관객을 잠시 두는 일. 자신이 잘해온 방식 외에도 영화에 필요한 것이 있음을 동료의 촬영에서 발견했다.

〈곡성〉의 산과 마을을 보는 데도 이 이야기는 도움이 된다. 화면이 넓어지고 멀리까지 보인다고 해서 관객이 사건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구가 뛰어다니는 마을은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여전히 알 수 없다. 인물을 가까이 따라갈 때와 다른 불안이다. 아름다운 풍경이라 잠시 눈을 빼앗겼다가도,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 감독의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황해〉를 처음 본다면 복잡한 사정부터 모두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구남이 지금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지, 누구의 조건을 받아들였는지부터 따라가면 된다. 사태 전체를 몰라도 당장의 한 걸음은 이해할 수 있다. 나홍진은 바로 그 차이를 이용해 인물에게 가까이 가게 한다. 구남의 판단이 불안하면서도 그가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보인다.

다른 작품으로 옮겨가면 비슷한 절박함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남을 찾는 중호와 딸을 지키려는 종구에게 필요한 것은 같지 않다. 무서운 장면의 강도를 비교하는 것보다, 영화가 누구를 걱정하게 만드는지 보면 나홍진의 선택이 더 선명해진다. 범인을 붙잡는 순간에도 끝내 마음을 놓지 못했던 이유가 그 안에 있다.

감상 포인트

중호를 응원하게 되는 때 — 〈추격자〉에서 중호가 처음 사람을 찾는 이유와, 관객이 그를 따라 뛰고 싶어지는 이유를 비교해보자. 인물의 마음을 설명하는 대사만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그의 행동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언제 바뀌는지 보면, 영화가 호감 없는 주인공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방식을 알 수 있다.

구남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 — 〈황해〉에서 구남이 부탁받은 일과 그 일을 하려고 혼자 알아내야 하는 것을 나눠보자. 목적지를 안다고 길까지 아는 것은 아니다. 낯선 곳을 움직이는 장면에 주목하면 그의 고생이 단순한 액션 구경을 넘어, 남이 짠 일에 들어간 사람이 감당하는 몫으로 보인다.

종구가 믿으려는 이유 — 〈곡성〉에서 인물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정하는 일과 함께, 종구가 왜 그 말을 믿고 싶어 하는지도 살펴보자. 아버지의 절박함을 따라가면 의심과 믿음의 변화가 단순한 반전 준비로만 보이지 않는다. 정보를 더 얻는 일과 마음이 놓이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도 느낄 수 있다.

멀리서 보는 마을 — 〈곡성〉에서 인물을 가까이 따라가던 화면이 넓은 풍경으로 바뀔 때의 기분을 기억해보자. 잠깐 숨을 돌리게 되는지, 오히려 사람이 작아 보여 불안한지 비교할 수 있다. 홍경표의 촬영을 받아들인 나홍진의 선택이 사건 설명을 넘어 관객이 머무는 시간을 어떻게 바꾸는지 볼 대목이다.

관련 작품

〈황해〉 — 구남에게 한국행은 빚과 끊긴 가족 소식을 한꺼번에 해결할 기회처럼 다가온다. 그 출발에서부터 타인의 조건에 묶이는 과정을 따라가면, 거센 추격을 떠받치는 생활의 막막함이 보인다.

〈추격자〉 — 범인의 정체를 알아도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남는다. 중호가 달리는 이유와 관객이 그를 응원하는 이유 사이의 차이를 보기에 좋은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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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