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리는 연극이 재미있어 보여 극단에 들어왔다. 그런데 서울대를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 간단한 이유로는 부족해진다. 주변 사람들은 더 그럴듯한 사연을 찾는다. 좋은 대학까지 …
혜리는 연극이 재미있어 보여 극단에 들어왔다. 그런데 서울대를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 간단한 이유로는 부족해진다. 주변 사람들은 더 그럴듯한 사연을 찾는다. 좋은 대학까지 나와서 왜 여기 있는지, 저 말에는 다른 뜻이 있는지. 혜리가 자신을 설명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설명을 보탠다.
정형석의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는 대학로의 작은 극단에 신입 단원 한 명이 들어오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전혜연이 연기하는 혜리가 시선을 모으지만, 이 소란의 상당 부분은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 쪽에서 생긴다. 제목에 붙은 ‘이상한’이라는 말도 그래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혜리가 이상한 것인지, 그를 보는 방식이 이상한 것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좋아 보여서 해보겠다는 말은 때로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누군가는 오래 매달려도 버티기 힘든 일에, 누군가는 별다른 각오 없이 들어온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혜리의 학벌은 연기와 직접 상관없는 정보인데도 그의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주변의 관심에는 호기심만큼이나 자기 처지를 의식하는 마음이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극단 대표이자 연출가인 해영은 연극협회의 정치와 출연료 문제에 시달리느라 작품에 집중하기 어렵다. 그런 그에게 새 단원 혜리와의 만남은 창작의 자극을 얻을 기회이기도 하다.
박호산이 맡은 해영을 순수한 예술의 수호자로만 보면 이 관계는 단순해진다. 창작의 영감을 얻고 싶다는 마음에도 상대를 자기 작품의 재료로 보고 싶은 욕심이 들어갈 수 있다. 인물의 속사정을 잘 안다고 여기는 연출가가, 정작 옆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잘 보고 있는지 묻게 된다.
혜리를 둘러싼 말이 불어나면 관객도 슬슬 궁금해진다. 그래서 저 사람은 정말 어떤 사람인가. 앞에서 단원들의 편견을 알아차렸더라도, 비밀을 알고 싶은 마음까지 멈추기는 어렵다. 혜리에 관해 확실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남아 있으니, 편견을 비판하던 관객도 단원들처럼 소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전혜연은 혜리의 행동 중 자신이라면 하지 못할 것도 있지만, 그 밑에 있는 마음을 이해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배우와 인물의 성격을 똑같다고 볼 수 없듯, 인물과 그에 관한 소문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혜리가 화면에서 실제로 한 일과 다른 사람이 그를 두고 한 말을 구분해보면, 혜리에 대한 내 판단 중 무엇이 소문에 기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극중에서 카뮈의 이름과 작품이 거론된다고 해서 철학 지식이 있어야 입장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정형석은 카뮈의 사유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관객의 질문을 끌어내려 했다고 밝혔다. 누군가의 학벌에서 특별한 뜻을 찾던 인물들처럼, 관객도 유명한 작가의 이름에서 영화의 정답을 너무 빨리 찾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만하다.
흑백 화면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고, 카메라는 옆으로 움직이며 사람을 화면 안에 들인다. 누가 말하는지뿐 아니라 옆에서 누가 듣고 있는지도 보게 하는 방식이다.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과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반응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으니, 발언의 내용만으로 이 대화를 판단하기 어렵다.
모그의 음악은 진지한 인물을 때로 우스워 보이게 한다. 감독은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 낯설었지만, 인물을 놀리는 듯한 느낌이 영화와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심각한 말에 심각한 음악을 붙여 권위를 더해주는 익숙한 방식에서 비껴간다.
예술을 설명하는 데 익숙한 사람도 자기 앞에 나타난 사람은 쉽게 오해한다. 혜리를 둘러싼 대화를 듣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려는 말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려는 말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무대에서 맡은 배역을 벗어난 뒤에도 연기는 계속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인물의 말보다 학벌이나 소문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순간이 있다. 혜리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 자신이 어떤 정보를 믿어 한 사람을 판단했는지도 되짚게 된다.
◆ 혜리가 한 일과 소문 — 혜리가 화면에서 직접 한 행동과 주변 사람들이 그에 관해 하는 말을 구분해서 기억해보자. 나중에 어떤 정보로 이 인물을 판단했는지 돌아보면, 소문이 끼친 영향도 보인다.
◆ 해영의 관심 속에 섞인 욕심 — 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해영에게 새 단원 혜리는 창작의 자극이 된다. 그가 혜리를 이해하려는 순간과 자기 작품에 필요한 사람으로 보는 순간이 어떻게 겹치는지 살펴볼 만하다.
◆ 말하는 사람 옆의 얼굴 — 카메라가 옆으로 움직이며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을 한 화면에 담는다. 말의 내용뿐 아니라 듣는 사람의 표정까지 보면, 진지한 발언이 주변에도 그렇게 받아들여지는지 알 수 있다.
◆ 인물을 놀리는 듯한 음악 — 음악이 인물의 심각한 태도를 그대로 받쳐주지 않는 대목에 귀를 기울여보자. 대사는 진지한데 우스워 보인다면, 음악이 그 인물을 어떻게 보게 하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 성혜의 나라 (2018, 정형석) — 생계를 위해 일하는 청년의 시간을 흑백으로 따라간다. 한 사람의 선택에 답을 요구하기 전에 그의 생활을 얼마나 보았는지 생각하게 한다.
◆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김초희) — 영화 일을 잃은 프로듀서가 생활을 꾸려가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돌아본다. 창작에 대한 말과 실제로 살아가는 일을 함께 놓고 볼 수 있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