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는 남자가 지하철에서 밴드를 꾸릴 생각을 한다. 서류를 훔쳐 달아난 프레드는 파리의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악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자, 한 무대에 세우고…
쫓기는 남자가 지하철에서 밴드를 꾸릴 생각을 한다. 서류를 훔쳐 달아난 프레드는 파리의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악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자, 한 무대에 세우고 싶어진다. 자신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정은 그대로인데 관심은 연주할 사람들에게로 간다. 도망치던 영화가 공연을 준비하는 영화로 바뀌기 시작한다.
뤽 베송의 〈서브웨이〉에서 지하철은 그런 곁길이 열리는 곳이다. 역을 빠져나갈 출구만 찾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 있다. 크리스토프 랑베르가 연기하는 프레드는 그들과 어울리며 더 깊이 들어간다. 은신처를 찾았다는 말로 끝내기에는 지하에서 새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프레드가 훔친 것은 부유한 집안의 서류다. 그는 그 집의 엘레나에게 연락해 돈을 받고 돌려주려 한다.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하는 엘레나는 지하로 찾아오지만 혼자가 아니고, 프레드는 다시 도망친다. 두 사람의 만남에는 돈을 주고 물건을 되찾는 거래와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함께 있다. 엘레나가 프레드에게 끌린다고 해서 서류를 훔친 일이 없던 일처럼 정리되지는 않는다.
엘레나는 이미 남편과 그를 둘러싼 상류사회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프레드와의 만남을 두고 단순히 집에 있던 여자가 낯선 남자를 따라갔다고 말하기 어렵다. 지하에서 무엇을 발견하는지 못지않게, 엘레나가 지상에서 어떤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프레드에게 필요한 은신처와 엘레나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장소는 같은 지하지만 둘이 처한 사정은 다르다.
옷차림도 그 차이를 모두 지워주지는 않는다. 금발을 세운 프레드는 턱시도를 입고 있다. 엘레나의 짙은 눈화장과 검은 옷도 눈에 띈다. 턱시도는 프레드를 주변에 섞이게 해주기보다 눈에 띄게 한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차림이 숨어 지내야 하는 그의 처지와 어긋난다.

그 지하에는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다. 롤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인물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며 가방을 훔친다. 꽃장수는 꽃만 취급하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빨리 통과해야 할 길이 이들에게는 움직이고 거래하며 사는 곳이다. 프레드가 찾아온다고 해서 비어 있던 공간에 삶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가 모르던 생활 속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공간도 이용객이 아는 역 구내보다 훨씬 깊어진다. 영화의 미술을 맡은 알렉상드르 트로네는 실제 지하철을 토대로 롤러의 방과 환기 통로, 몇몇 복도를 세트로 보탰다고 설명했다. 먼저 원래 공간에 어떤 요소가 있는지 알아야 그곳에 붙일 장소를 만들 수 있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넓히는 데에는 실제 역을 더 많이 찍는 일 외에 새 방을 만드는 작업도 필요했다.
프레드가 들고 있던 등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장면에는 그 방식이 잘 드러난다. 트로네에 따르면 프레드가 서 있는 위쪽 통로는 스튜디오에 지었다. 등이 떨어진 물이 고인 아래쪽은 실제 지하철에서 찍었다. 한 물건이 떨어지는 움직임을 따라가면 두 장소를 위아래가 이어진 한 공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디서부터 세트인지 판별하지 않아도, 그 아래로 더 깊은 곳이 있다는 감각은 남는다.
이 작업을 실제 지하철을 똑같이 옮기는 일이라고만 생각하면 롤러의 방이 빠진다. 트로네는 기존 공간을 바탕으로 거기에 없는 장소를 더했다. 관객이 아는 역의 모습이 발판이 되지만,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는 새로 정할 수 있다. 매일 지나치는 통로 옆에 누군가의 방이 붙어 있다고 상상할 때, 출입구와 노선으로 기억하던 지하철의 크기가 달라진다.

프레드는 그곳에서 만난 음악가들을 밴드의 멤버로 생각한다. 같은 통로를 오가더라도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기 시작하면 관계가 달라진다. 숨을 곳을 알려줄 사람, 돈이 될 물건을 가진 사람을 찾는 데서만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악기가 다음 만남의 이유가 된다. 사건을 빨리 해결하는 데에는 돌아가는 길처럼 보일 수 있지만, 프레드는 그 길에 마음이 간다.
음악을 만든 에릭 세라는 영화 안에서도 베이스를 연주하고, 장 르노는 드러머로 등장한다. 음악이 장면 뒤에서 흐를 때와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이 보일 때 지하의 인상도 달라진다. 통로에 있는 사람들은 쫓거나 쫓기는 인물, 낯선 구경거리로만 남지 않는다. 악기를 맡고 다른 연주자 옆에 설 자리가 생긴다.
공연 장면은 실제 오베르역 홀에 무대를 세워 찍었다. 조감독은 이 장면을 위해 제작진이 라디오로 출연할 사람들을 모집했다고 회고했다. 무대를 설치하는 일에 더해 연주를 바라볼 사람들도 불렀다. 통로를 지나던 사람이 잠깐 멈춰 듣는 모습을 찍는 데서 더 나아가, 관객이 모이는 공연장을 역 안에 만든 것이다.

서류의 행방만 따라가면 지하에서 만난 사람들이 불필요한 우회로처럼 보일 수 있다. 프레드가 누구와 마주치고, 그 만남에서 무슨 일을 시작하려 하는지 함께 보자. 쫓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들키지 않을 장소일 텐데, 그는 그곳에 사람을 모으고 음악까지 들여놓는다. 이 엇나감 때문에 〈서브웨이〉의 지하는 범죄자가 숨어드는 어두운 배경보다 훨씬 떠들썩한 곳이 된다.
◆ 두 사람이 내려온 서로 다른 이유 — 프레드는 쫓기는 처지이고 엘레나는 서류를 되찾으러 온다. 만남이 이어질수록 거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관심도 생긴다. 엘레나가 돌아가야 하는 지상의 생활과 프레드가 피하고 있는 사람들을 함께 떠올려보자. 같은 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둘을 똑같은 도망자로 묶지 않으면, 서로가 상대에게서 무엇을 보려 하는지 더 궁금해진다.
◆ 통로를 자기 길로 쓰는 사람 — 롤러스케이트를 탄 롤러가 역 안을 움직이는 모습을 눈여겨보자. 익숙한 교통시설이 그의 이동 수단과 만날 때 다르게 보인다. 같은 통로를 걷는 사람과 굴러가는 사람이 모두 그곳을 이용한다. 별명을 기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가 가진 물건과 공간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보면, 지하를 사는 사람을 소개하는 방식이 말보다 움직임에 가까워진다.
◆ 등이 떨어지는 위와 아래 — 프레드가 서 있는 곳에서 등이 떨어지는 아래쪽으로 시선이 옮겨가는 장면을 보자. 위는 세트이고 아래는 실제 지하철이라는 미술감독의 설명을 함께 떠올려도 좋다. 서로 다른 장소를 이어주는 것은 길게 펼친 지도가 아니라 떨어지는 물건이다. 한 움직임을 따라가며 그 아래 공간까지 믿게 되는 과정을 보면, 익숙한 역을 넓히는 영화의 작업이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 연주할 사람으로 보기 시작할 때 — 프레드가 지하에서 만난 음악가들을 밴드의 멤버로 생각하는 대목에 관심을 두자. 그들은 도망자를 돕거나 방해하는 역할만 맡지 않는다. 각자 악기가 있고 함께 설 무대도 생긴다. 음악이 들리는 장면에서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도 보이는지 살펴보면, 사건에 맞춰 흐르는 음악과 이들이 자기 시간을 만드는 공연 사이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 〈마지막 전투〉 (1983, 뤽 베송) — 폐허가 된 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몸을 피할 자리를 찾는다. 베송은 실제 장소를 흑백과 넓은 화면으로 찍어 익숙한 모습을 흐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공간을 쓰되 관객에게 다른 세계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점을 트로네의 지하와 견주어볼 수 있다.
◆ 〈그랑블루〉 (1988, 뤽 베송) — 어릴 때부터 바다와 함께한 두 잠수부가 경쟁자로 다시 만난다. 자크에게는 지상에서의 사랑도 있다. 바다와 지하철을 같은 피난처로 묶기보다, 마음이 가는 장소와 함께 살아갈 사람이 다를 때 생기는 어려움을 나란히 생각하며 볼 만하다.
◆ 〈레옹〉 (1994, 뤽 베송) — 뉴욕에서 혼자 살던 킬러의 문을 마틸다가 두드린다. 그가 지켜온 생활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서 방의 쓰임도 달라진다. 낯선 사람을 안으로 들인 뒤에도 그곳이 이전과 같은 은신처일 수 있는지, 프레드의 지하 생활과 함께 떠올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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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