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블루〉의 바다는 처음부터 푸르지 않다. 그리스의 섬에서 자란 어린 자크와 엔조는 흑백 화면 속에서 잠수를 겨룬다. 물속의 동전을 건져 올리는 일은 아이들 사이의 승부다. 그…
〈그랑블루〉의 바다는 처음부터 푸르지 않다. 그리스의 섬에서 자란 어린 자크와 엔조는 흑백 화면 속에서 잠수를 겨룬다. 물속의 동전을 건져 올리는 일은 아이들 사이의 승부다. 그러나 자크에게 그 바다는 아버지를 잃는 곳이기도 하다. 성인이 된 두 남자가 다시 바다로 향할 때, 관객은 그들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어린 자크의 아버지도 잠수부다. 바다로 나가는 일은 그에게 직업이었고, 자크는 그 일을 가까이서 본다. 영화의 유년 시절에는 아이들의 겨루기와 아버지의 잠수 사고가 함께 놓인다. 같은 물에 들어가더라도 누구에게는 놀이이고 누구에게는 생계를 위한 노동이다. 아버지를 잃는 순간을 지나고 나면, 자크가 바다를 좋아한다는 말을 처음과 똑같이 듣기는 어렵다.
이후 화면에 색이 들어오고 아이들은 장마르크 바와 장 르노가 연기하는 어른이 된다. 두 사람의 잠수는 어린 시절의 놀이보다 더 깊은 곳으로 향한다. 색이 달라졌다고 앞서 본 사고까지 지워지지는 않는다. 영화가 바다를 아름답게 보여줄수록 그 물속이 안전한 곳은 아니라는 기억도 함께 남는다. 자크는 그 사실을 모르는 인물이 아니다.

엔조는 이미 세계 챔피언이다. 그가 어린 시절의 친구 자크를 대회에 불러들이면서 두 사람은 다시 경쟁자가 된다. 자크는 과학 연구를 위해 얼어붙은 호수에 들어가기도 하고 돌고래와 헤엄치기도 하던 사람이다. 둘은 잠수라는 일을 함께하지만, 대회에 이르는 생활은 다르다. 엔조가 기록을 겨룰 상대를 찾아 나섰다면 자크는 친구의 제안을 받고 그 승부에 들어선다.
잠수 경기에서는 상대보다 깊이 내려갔다는 사실이 성적이 된다. 그러나 새 기록을 세웠다는 소식만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걱정까지 끝나지는 않는다. 다음 잠수에서는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기록을 바라는 마음과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께 생긴다. 두 선수가 서로를 밀어붙이는 관계는 친구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로잔나 아퀘트가 연기하는 조안나는 뉴욕의 보험 조사원이다. 일을 하러 간 페루에서 자크를 만나고, 이후 그가 참가하는 이탈리아의 잠수 대회까지 찾아간다. 두 남자의 오랜 관계 안으로 뒤늦게 들어오지만, 처음부터 그들을 기다리기 위해 존재하던 사람은 아니다. 바다에서 떨어진 곳에 직장과 생활이 있고, 자크에게 가까워지려면 그곳을 떠나 움직여야 한다.
서류가 쌓인 책상 앞의 조안나와 물가에서 돌고래를 만나는 자크를 나란히 생각하면 두 사람이 익숙한 일상의 차이가 보인다. 자크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조안나에게는 궁금하고 낯설다. 조안나가 자크의 대회에 간다고 그가 물속에서 느끼는 것까지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의 곁으로 가는 일과 그 사람의 관심을 함께 나누는 일 사이에는 거리가 남는다.
물속에 있는 사람에게 오래 머무는 일은 매력일 수 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그 시간이 걱정으로 길어진다. 뤽 베송은 바다로 가고 싶은 마음을 크게 펼쳐 보이면서, 그 마음을 모두 나눠 가질 수는 없는 연인을 곁에 둔다. 조안나의 자리에서 보면 아름다운 수중 장면에도 다른 질문이 생긴다. 이 풍경을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두 남자의 우정과 경쟁을 따라가다가 조안나의 생활로 눈을 돌리면, 같은 잠수에도 서로 다른 기대가 걸려 있음을 보게 된다. 누군가는 기록을 원하고 누군가는 함께할 시간을 원한다. 바다의 아름다움에 끌리는 마음을 간직하면서도, 물 밖에 있는 사람을 답답한 방해물로만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랑블루〉의 긴 시간에는 그 서로 다른 마음이 함께 놓여 있다.
◆ 흑백의 유년 — 어린 자크와 엔조에게 잠수는 동전을 건져 올리며 겨루는 일이다. 자크의 아버지에게는 먹고살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처음의 흑백 화면 안에 어떤 즐거움과 상실이 함께 있는지 보자. 어른들의 바다가 색을 되찾은 뒤에도, 앞서 본 물속 사고의 기억은 자크가 다시 잠수하러 가는 모습을 다르게 보게 한다.
◆ 친구가 다음 기록을 세울 때 — 엔조가 자크를 대회에 부른 뒤 두 사람이 경쟁하는 과정을 보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좋아하는 일을 같이하지만, 상대의 성적을 그대로 기뻐할 수만은 없다. 다음에는 자신이 그 기록을 넘어야 한다. 도전의 즐거움과 상대 때문에 멈추기 어려워지는 마음이 어떻게 함께 있는지 살필 만하다.
◆ 조안나의 직장과 바다 — 조안나가 자크를 만나러 움직이는 과정과 바다에서 떨어진 곳에 있던 생활을 함께 보자. 그의 방문은 두 남자의 잠수 사이에 끼어드는 일만은 아니다. 자기 시간을 들여 연인의 곁으로 가는 선택이다. 가까이 왔는데도 자크가 원하는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간격이 두 사람의 관계에 남는다.
◆ 돌고래와 함께 있는 자크 — 자크가 돌고래를 만나고 물가에 머무는 모습에는 대회에서 기록을 겨룰 때와 다른 시간이 있다. 바다에서 하는 일이 모두 승부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물속이 얼마나 익숙하고 머물고 싶은 곳인지 보면, 조안나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도 알 수 있다. 같은 시간을 두 사람의 자리에서 번갈아 보자.
◆ 마지막 전투 (1983, 뤽 베송) — 첫 장편에서는 흑백 화면으로 문명 이후의 폐허를 만든다. 베송은 실제 장소의 익숙한 모습을 덜어내기 위해 흑백과 넓은 화면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랑블루〉의 유년과 비교하면 색이 없는 풍경이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을 만드는 방식을 볼 수 있다.
◆ 레옹 (1994, 뤽 베송) — 혼자 지내던 킬러의 집에 이웃집 소녀가 찾아온다. 한 사람에게 익숙했던 생활에 타인이 들어오면서 지켜야 할 것과 감당해야 할 일이 달라진다. 인물이 머무는 장소와 그 곁에 있는 사람을 함께 살핀다는 점에서 이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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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