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뒤쫓던 카우보이들이 모래 위에 남은 휠체어를 발견한다. 한 사람이 동료에게 말한다. 걱정할 것 없다. 걸어서는 멀리 못 갔을 테니까. 존 캘러한의 만화 한 컷이다. 이 …
누군가를 뒤쫓던 카우보이들이 모래 위에 남은 휠체어를 발견한다. 한 사람이 동료에게 말한다. 걱정할 것 없다. 걸어서는 멀리 못 갔을 테니까. 존 캘러한의 만화 한 컷이다. 이 농담을 그린 캘러한 자신도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돈 워리〉의 긴 영어 제목은 그 만화에서 왔다. 거스 밴 샌트가 영화로 옮긴 것은 불행을 겪은 사람의 일대기이면서, 그 불행조차 농담의 재료로 삼는 사람의 이야기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하는 캘러한은 술에 취한 날 교통사고를 당한 뒤 사지마비가 된다. 그렇다고 곧바로 술을 끊고 다른 삶을 시작하지는 못한다. 술을 포기할 생각이 없던 그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회복 모임에 들어가고, 만화를 그리는 데 몰두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영화는 사고 이전의 날과 이후의 생활, 모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 사이를 오간다.
밴 샌트는 캘러한의 삶을 여러 시기로 나누고 서로를 비추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술을 마시던 때와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던 때, 만화가로 활동하던 때가 한 방향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을 만난 뒤 그가 겪은 일을 보게 되고, 아픈 시간을 본 뒤 다시 농담을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같은 사람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연도를 정리하는 것보다 캘러한을 보는 마음이 달라지는 쪽에 가까운 구성이다.
모래 위 휠체어를 그린 농담도 마찬가지다. 누가 그렸는지 모를 때와 캘러한의 사정을 알고 읽을 때의 망설임이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당사자가 그렸으니 누구나 편하게 웃을 수 있는 농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밴 샌트 역시 처음에는 그림을 그린 이가 사지마비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캘러한에게 끌린 것은 대담하고 도발적인 유머였다. 영화에서도 그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마음만으로 그림을 모두 이해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피닉스는 캘러한을 연기하기 위해 감독이 1990년대에 촬영해둔 영상을 봤다. 같은 부위를 다쳤다고 사람들의 몸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조사하며 알게 됐다고 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사지마비를 대표하는 자세가 아니라 캘러한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였는지였다. 자서전과 주변 사람의 기억을 읽고 듣는 일에, 몸의 작은 변화를 보는 일이 더해졌다.
재활 병원에서 만난 직원들은 캘러한이 자꾸 자세를 바꾸는 이유를 짚어줬다. 피닉스가 보기에는 영상 속 캘러한이 아파 보이지 않았지만, 통증 때문에 몸을 옮기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는 장면과 인물을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겉으로 보이는 움직임을 흉내 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움직임이 일상에서 왜 필요한지 이해하려 한 것이다.
그래서 피닉스의 연기는 얼굴만 보아서는 충분하지 않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세, 몸을 옮기며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말의 내용에는 농담이 있어도 그 말을 하는 몸에는 불편함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웃는 순간과 아픈 순간을 서로 다른 장면으로만 나누지 않고 보면, 캘러한의 유머도 고통이 모두 사라진 뒤에 얻은 보상처럼 보이지 않는다.
조나 힐이 연기하는 도니는 캘러한의 회복을 돕는 사람이다. 긴 금발을 늘어뜨린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모임을 이끄는 힘이 있다. 밴 샌트는 힐이 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영향력을 발휘하던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며 배역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크게 다그쳐야만 말을 듣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도니의 존재감에 들어 있다.
캘러한은 도니에게 도움을 청하고도 조언을 언제나 믿지는 않는다. 감독이 중요하게 본 것도 도움을 청한 사람이 상대의 말을 곧바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이 과정이었다. 캘러한은 다른 이의 조언과 모임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바뀐다. 혼자서는 벗어나기 어려운 일에 타인이 들어오지만, 도움을 받겠다는 한 번의 결정으로 의심까지 끝나지는 않는다.

캘러한을 동정하기만 하려 하면 그의 농담이 걸리고, 유쾌한 만화가로만 보려 하면 그가 겪는 어려움이 남는다. 피닉스는 그 두 모습을 한 사람의 말과 움직임으로 연기한다. 그림을 보고 웃는 일과 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 사이를 오가는 재미가 있다. 영화 속 만화가 편하게 웃기는지, 웃고 난 뒤 무엇이 마음에 남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 사고 전후를 오가는 시간 — 캘러한의 생활과 모임에서 하는 이야기, 만화를 그리는 모습을 함께 보자. 영화는 사고가 일어난 날부터 차례로 사연을 풀지 않는다. 농담하는 사람을 먼저 보고 그의 아픈 시간을 만날 수도 있다. 같은 인물에게 먼저 호감을 느꼈는지, 걱정했는지에 따라 뒤이어 만나는 모습이 달리 다가오는 구성을 살필 만하다.
◆ 말하는 동안의 자세 — 피닉스가 대사를 할 때 얼굴과 목소리뿐 아니라 몸을 어떻게 두고 있는지도 보자. 실제 캘러한의 움직임을 준비하며 배우가 중요하게 본 것은 자세를 바꾸는 이유였다. 웃거나 대화하는 모습에 몸의 불편함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면, 인물의 감정과 함께 매일 그 몸으로 지내는 모습에도 눈길이 간다.
◆ 한 컷의 농담 — 캘러한의 만화가 나올 때는 그림의 상황과 그 곁의 말을 같이 읽어볼 만하다. 휠체어를 남기고 달아난 사람을 추적하는 카우보이들처럼, 평범한 말이 곤란한 농담으로 바뀌는 지점이 있다. 그 그림을 그리는 인물의 사정을 안다고 웃음의 의미까지 하나로 정해지지는 않는다. 그림에 대한 반응과 캘러한에 대한 마음을 함께 살펴보자.
◆ 도니의 낮은 목소리 — 힐의 도니는 큰 소리로 주의를 끄는 인물과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모임 안에서 그의 말에는 힘이 실린다. 캘러한이 그 말을 받아들이는 태도까지 같이 보면, 조언을 하는 사람의 차분함과 듣는 사람의 의심이 한 장면 안에 놓인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금세 익숙해지는 관계로만 보지 않을 때 대화의 긴장이 살아난다.
◆ 와일드라이프 (2018, 폴 다노) — 부모의 관계가 흔들리는 모습을 아들이 지켜본다.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려 해도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바로 알 수는 없다. 가족 안에서 지켜보는 자리와 〈돈 워리〉의 모임에서 서로의 말을 듣는 자리를 비교해볼 만하다.
◆ 노웨어 스페셜 (2020, 우베르토 파솔리니) —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는 아버지가 자신이 떠난 뒤 아이를 돌볼 가족을 찾는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일과 그 도움을 누구에게 청할지 정하는 일 사이의 망설임을 다룬다. 인물의 처지를 한 줄로 설명한 뒤에도 구체적인 선택은 남는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