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페러가 연기하는 시라노는 칼싸움을 하면서도 시를 짓는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말을 잇고 시의 끝에 맞춰 승부까지 낸다. 〈시라노 드 베르주…
호세 페러가 연기하는 시라노는 칼싸움을 하면서도 시를 짓는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말을 잇고 시의 끝에 맞춰 승부까지 낸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1950)의 이 남자는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기 솜씨를 뽐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런데 사랑하는 록산에게 마음을 전할 때는 다른 남자의 이름을 빌린다.
페러에게 필요한 것은 긴 대사를 막힘없이 외우는 능력만은 아니었다.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과, 그 말을 자기 고백이라고 밝히지 못하는 사람이 같은 인물로 보여야 했다. 이미 무대에서 시라노를 연기한 배우였지만, 영화에 들어가기 전에는 감독과 다시 대본을 펼쳤다. 익숙한 배역을 옮기는 데에도 새로 준비할 몫이 남아 있었다.
페러는 1947년 시라노 역으로 토니상을 받았다. 1950년 영화로 같은 인물을 연기했고, 이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두 수상을 나란히 놓으면 한 배역의 성공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카메라 앞에서 다시 맞춰야 했던 연기가 있다.
마이클 고든 감독은 촬영에 들어가서야 무대판의 방식과 영화의 방식을 논의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페러에게 공연 때 쓰던 대본을 가져오라고 했다. 두 사람은 검술 연습이 끝난 뒤 대본을 한 쪽씩 넘기며 무대에서 어떻게 움직였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검토했다.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이 대화는 거의 한 달 동안 이어졌다. 고든은 페러가 알고 있는 공연을 자신도 자세히 이해한 뒤 촬영을 시작하려 했다.
고든은 페러의 무대 경험이 큰 도움이 됐지만, 객석을 향한 연기의 크기를 영화에 맞게 조절할 필요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페러가 맡은 것은 같은 시라노였지만, 보여주는 방법까지 같지는 않았다.
시라노는 다른 배우의 공연을 보러 와서는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무대를 멈춰 세운다. 관객에게는 자기 돈으로 관람료를 돌려준다. 남의 공연을 중단시킨 사람이 어느새 극장에 모인 이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큰 코를 비웃는 귀족과 시비가 붙고, 칼을 겨루는 와중에도 시를 읊는다. 관객 앞에서 벌어진 다툼을 자신의 재주를 펼칠 기회로 삼는 인물이다.
이 장면의 재미는 시라노에게 칼과 말이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싸움에 정신이 팔려 문장을 놓치는 사람도, 시를 읊느라 상대를 놓치는 사람도 아니어야 한다. 시의 끝을 향하는 동안 결투도 함께 진행된다. 페러의 긴 대사를 화려한 말솜씨로만 들으면, 그 말을 하는 몸이 동시에 해내고 있는 일을 놓치기 쉽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은 즉흥적이지 않았다. 고든은 페러가 주요 검술 동작을 익히기 위해 약 여섯 주 동안 거의 매일 연습했다고 회고했다. 주요 배우들과 세트에서 함께하는 리허설도 따로 있었다. 시라노가 그 자리에서 시를 짓는다는 설정과, 배우가 동작을 거듭 익히는 일은 서로 반대여서 더 흥미롭다. 관객은 다음 시구를 궁금해하며 결투를 볼 수 있지만, 배우에게는 말과 움직임을 함께 수행하는 구체적인 과제가 있었다.
록산이 시라노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는 그가 기대했던 고백과 다르다. 록산이 사랑하는 사람은 잘생긴 병사 크리스티앙이다. 록산은 시라노에게 그 청년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크리스티앙에게는 사랑을 표현할 말이 부족하고, 시라노에게는 그 말을 자기 이름으로 보낼 용기가 없다. 두 사람은 편지를 대신 써주는 사이가 된다.
록산의 발코니 아래에서도 처음에는 크리스티앙이 직접 말하려 한다. 뜻대로 되지 않자 시라노가 어둠 속에서 말을 도와주고, 결국 그 자리를 대신한다. 목소리가 닿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은 말의 주인을 잘못 알고 있다. 시라노는 자기 마음을 전할 기회를 얻으면서도 자신이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은 감춰야 한다. 구애를 도와주는 일이 그에게 마냥 희생이거나 마냥 즐거움일 수 없는 이유다.
이 상황에서 페러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는 둘로 나뉜다. 록산은 크리스티앙의 고백을 듣고, 관객은 시라노가 직접 말하고 있음을 안다. 같은 대사가 한쪽에는 연애의 말로, 다른 쪽에는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사람의 말로 들린다. 앞서 극장을 휘젓던 시라노와 달리 여기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야 말을 계속할 수 있다. 페러는 긴 대사를 잘하는 배우인 동시에, 그 말이 누구에게 어떻게 들리는지를 보여줘야 하는 배우다.
시라노의 말솜씨는 처음부터 드러나 있다. 조금 더 궁금한 것은 그렇게 능숙한 사람이 언제 자기 이름을 내세우고 언제 숨기는가다. 관객이 많은 극장과 록산의 발코니 아래에서, 페러가 맡은 인물의 처지는 달라진다. 대사의 뜻을 따라가는 동안 말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과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뜻이 얼마나 어긋나는지도 함께 볼 수 있다.
◆ 공연을 멈춰 세운 관객 — 시라노는 처음부터 무대 위 주인공으로 등장해 환영받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배우의 공연을 중단시키고 관람료까지 돌려주는 행동으로 극장의 이목을 끈다. 그가 왜 그 자리에 나섰는지, 주변 사람들이 그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함께 보자. 말솜씨를 뽐내는 장면에도 남의 시간을 빼앗은 사람의 무모함이 있다.
◆ 시를 읊는 동안의 몸 — 결투 장면에서는 대사만 따라가다 칼싸움을 흘려보내기 쉽다. 시의 흐름과 몸의 움직임이 어떻게 함께 이어지는지 보자. 상대와 싸우면서도 말을 계속하는 시라노의 여유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다. 말이 빨라지거나 멈추는 때 칼을 든 몸은 어떤 상태인지 함께 보면, 싸움과 낭송을 한꺼번에 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 편지의 주인과 말의 주인 — 크리스티앙과 시라노가 구애를 함께 준비한다고 해서 같은 기쁨을 얻는 것은 아니다. 록산이 말과 글을 칭찬할 때 그 칭찬이 누구에게 가는지, 실제 말을 만든 사람은 어떻게 듣는지에 관심을 두자. 대필이라는 약속을 알고 보면 두 남자가 함께 있는 장면에서 각자가 드러내고 감춰야 하는 부분도 달라진다.
◆ 발코니 아래에서 바뀌는 화자 — 크리스티앙이 말하다 시라노가 돕고 대신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보자.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고 듣는 관객과 모르고 듣는 록산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 더 잘 말하는 사람이 나섰다는 사실만으로는 이 구애의 복잡함이 풀리지 않는다. 페러가 말을 전하는 동안 자신의 존재까지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을 함께 보면 좋다.
◆ 노트르담의 꼽추 (1923, 월러스 워슬리) — 론 채니가 연기하는 종지기 카지모도 역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무성영화의 몸짓과 시라노의 긴 대사를 나란히 보며, 누군가의 시선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자기 마음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살펴볼 수 있다.
◆ 버라이어티 (1925, E.A. 뒤퐁) — 공중곡예를 함께하는 세 사람 사이에 연애와 질투가 끼어든다. 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는 관계와 사적인 욕망이 부딪친다는 점이 흥미롭다. 크리스티앙과 시라노의 구애 협력을 떠올리며, 함께 잘해내야 하는 일이 서로의 마음까지 같게 만들지는 않는 상황을 견주어볼 만하다.
◆ 맥베스 (1948, 오슨 웰스) — 웰스가 직접 연출하고 주연을 맡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영화로 옮겼다. 인물에게 주어진 긴 말이 다른 사람을 향할 때와 자기 안의 두려움을 드러낼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 페러의 시라노와 함께 생각하며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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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