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깁슨도 자기 표정을 다 알지는 못했다 | MovieLAB LAB

멜 깁슨은 〈싸인〉을 찍으며 콧구멍의 움직임까지 지적받았다고 말했다. M. 나이트 샤말란은 그 작은 움직임이 잘못된 뜻을 전달한다고 봤다. 깁슨도 자신이 어떻게 연기하는지 꽤 잘…

멜 깁슨도 자기 표정을 다 알지는 못했다 | MovieLAB LAB

멜 깁슨은 〈싸인〉을 찍으며 콧구멍의 움직임까지 지적받았다고 말했다. M. 나이트 샤말란은 그 작은 움직임이 잘못된 뜻을 전달한다고 봤다. 깁슨도 자신이 어떻게 연기하는지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 얼굴을 밖에서 지켜보는 감독은 배우 자신이 놓친 것을 보고 있었다.

총을 쏘던 남자에게서 본 슬픔

샤말란이 〈싸인〉의 주인공으로 깁슨을 떠올린 데에는 〈리셀 웨폰〉이 있었다. 그가 기억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형사의 무모함과, 그 뒤에 있는 아내의 죽음이었다. 배우가 보여준 상실이 납득됐기에 인물이 위험을 무릅쓰는 행동도 믿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총을 잘 다루는 남자가 왜 자기 몸을 그렇게 함부로 내놓는지, 그 이유까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싸인〉의 그레이엄도 아내를 잃었다. 목사였던 그는 믿음을 잃은 채 가족과 살고 있고, 어느 날 농장에 거대한 원형 무늬가 생긴다. 깁슨이 맡아야 할 일은 낯선 위협 앞에서 용감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다. 자기 삶에 일어난 일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이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 가족을 안심시킬 말을 해야 하는데, 정작 자신이 그 말을 믿을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조언을 건넨 뒤 다시 생각하는 감독

깁슨은 샤말란과 장면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샤말란은 각본을 쓰고 촬영을 구상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해두었고, 배우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설명했다. 콧구멍까지 살폈다는 회고도 그 과정에 놓인다. 깁슨에게는 평소 무심히 하던 표정이 카메라 앞에서 어떤 뜻으로 읽히는지 알아가는 작업이었다.

〈핵소 고지〉를 이야기하며 그는 앤드루 가필드나 샘 워싱턴, 빈스 본에게 말을 건넨 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나 생각할 때가 있다고 했다. 좋은 배우들이 잘하고 있다면 그대로 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배우가 납득하지 못한 장면

다른 감독과 일하는 것을 깁슨은 반겼다. 〈블러드 파더〉를 선택했을 때도 장 프랑수아 리셰가 앞서 만든 범죄영화를 보고 관심을 가졌다.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감독이 무엇을 할지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감옥에서 나온 뒤 조용히 살려던 존 링크를 연기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딸이 쫓기는 처지가 되면서, 존은 끊으려던 과거의 인맥과 범죄자로 살아온 경험을 다시 써야 한다.

리셰가 기억한 깁슨의 관심은 장면마다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있었다. 마지막 장면을 찍기 직전에도 깁슨은 무언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감독과 배우, 각본가 피터 크레이그가 따로 앉아 이야기를 나눴고 장면을 다시 썼다. 배우가 배역의 입장에서 제기한 문제가 감독과 작가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리셰는 깁슨이 자신의 연출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이 일화를 함께 들었다.

회색 머리와 긴 수염의 남자가 갈색 정장에 줄무늬 넥타이를 하고 의자에 앉아 화면 왼쪽을 본다. 앞에는 흰 찻잔, 뒤에는 흰 흉상이 놓여 있다.

원작을 건넨 사람, 머레이를 연기한 사람

〈프로페서 앤 매드맨〉에서 깁슨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편집자 제임스 머레이를 맡았다. 화면에 보이는 긴 수염은 이 배역을 위해 실제로 기른 것이다. 촬영하던 무렵 그는 일이 끝나면 바로 수염을 없애겠다며 지겨워하는 농담을 했다. 사전 편찬자의 근엄한 외양을 만드는 데도 배우가 매일 달고 살아야 할 수염이라는 구체적인 수고가 있었다.

책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 앞에서 긴 수염의 남자가 두 손으로 접힌 종이 몇 장을 들고 서 있다. 옆에 흉상과 책상 일부가 보인다.

머레이는 수많은 사람이 찾아 보낸 용례를 모아 사전을 만드는 인물이다. 그를 돕는 기고자 가운데 정신병원에 수용된 윌리엄 마이너가 있다. 숀 펜이 맡은 마이너와 깁슨의 머레이는 독서와 편지를 통해 이어진다. 총을 들고 가족을 지켜야 했던 배역들과 달리,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보내는 지식에 기대어 큰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다.

깁슨은 이 영화의 배역을 제안받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파르하드 사피니아에게 사이먼 윈체스터의 책을 각색해보라고 제안한 사람이 그다. 사피니아는 그 제안을 받고 책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출발점에서 원작을 건넨 사람이 완성까지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종 편집을 둘러싼 제작사와의 분쟁은 소송으로 이어졌고, 2019년 합의로 마무리됐다. 배역을 준비한 일과 완성본을 결정하는 일 사이에는 깁슨의 뜻만으로 넘어갈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나무와 붉은 벽돌 건물 앞 벤치에 수염을 기른 두 남자가 서로를 향해 앉아 있다. 왼쪽 남자는 푸른 겉옷, 오른쪽 남자는 검은 겉옷에 녹색 바지를 입었으며 무릎에 두꺼운 책을 올렸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깁슨에게 눈길이 간다면 긴 수염 아래 익숙한 얼굴이 얼마나 보이는지부터 살펴볼 만하다. 분장과 의상이 시대를 바꾸어 놓아도 말을 건네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일은 배우에게 남는다. 〈프로페서 앤 매드맨〉의 머레이를 볼 때는 사전 편찬의 성과를 아는 것보다, 자기 계획에 사람들을 참여시키려는 그의 말투와 태도에 관심을 두면 좋다.

〈싸인〉의 아버지는 자신의 확신이 흔들리는 가운데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 머레이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일할 사람들을 설득하는 힘이다. 가족을 안심시키는 말과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말은 배우에게 서로 다른 요구를 한다. 대사를 건네는 상대와 상황에 따라 깁슨의 말투와 표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볼 수 있다.

감상 포인트

◆ 수염에 가려지지 않는 표정 — 머레이의 긴 수염과 정장은 인물의 시대와 직업을 먼저 보여준다. 그 외양을 익힌 뒤에는 말을 꺼내기 전이나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의 얼굴도 살펴보자. 콧구멍까지 지적받았다는 일화를 똑같은 동작을 찾아내는 문제로 삼을 필요는 없다. 배우가 준비한 외양과 장면 안에서 달라지는 표정을 나누어 볼 계기로 삼으면 된다.

◆ 다른 사람을 자기 일에 참여시킬 때 — 머레이는 사전 편찬에 필요한 자료와 도움을 구한다. 그가 일을 설명할 때의 말투를 상대가 누구인지와 함께 들어보자. 머레이에게 당연한 계획도 듣는 사람에게는 낯설 수 있다. 설명이 충분한지, 확신을 드러내는 데 그치는지에 관심을 두면, 편찬의 규모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이 인물의 대인 관계를 볼 수 있다.

◆ 확신을 잃은 아버지의 말 — 〈싸인〉을 함께 본다면 그레이엄이 가족 앞에서 말하는 대목을 살펴볼 만하다. 아내를 잃고 믿음까지 흔들린 사람에게 가족은 여전히 의지해야 할 아버지의 자리를 요구한다. 가족에게 전하는 말과 그 자신이 처한 사정이 늘 일치할 수는 없다. 대사의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말해야 하는 사람의 부담을 함께 보자는 제안이다.

◆ 딸을 지키는 데 쓰이는 과거 — 〈블러드 파더〉의 존은 조용히 살기 위해 과거와 거리를 두려던 사람이다. 딸이 찾아온 뒤에는 바로 그 과거의 경험과 인맥이 필요해진다. 위험을 막는 행동만 좇기보다 딸과 함께 있을 때 그가 무엇을 설명하고 감추려 하는지에도 관심을 두자. 배우가 장면마다 인물의 행동 이유를 따졌다는 작업은 이런 모순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관련 작품

◆ 싸인 (2002, M. 나이트 샤말란) — 아내의 죽음 뒤 믿음을 잃은 그레이엄이 가족과 함께 낯선 현상을 맞닥뜨린다. 깁슨을 캐스팅한 감독이 전작의 상실감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 관심이 다른 위기 속 인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비교할 수 있다.

◆ 블러드 파더 (2016, 장 프랑수아 리셰) — 출소 뒤 새 삶을 꾸리려던 존이 쫓기는 딸을 보호하며 함께 달아난다. 깁슨에게 익숙한 액션 배역이지만 과거로 돌아가야 딸을 도울 수 있다는 곤경이 있다.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과 아버지로서 딸에게 다가가는 일을 함께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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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