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케이블카에 탄 두 사람이 체스를 둔다. 한 수를 두고 상대의 다음 수를 보기까지는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상대가 오래 고민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탄 케이블카가 돌…
서로 다른 케이블카에 탄 두 사람이 체스를 둔다. 한 수를 두고 상대의 다음 수를 보기까지는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상대가 오래 고민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탄 케이블카가 돌아오는 데 그만큼 걸리기 때문이다. 곤돌라의 이바와 니노는 이렇게 느린 방식으로 서로에게 다가간다. 한 사람이 올라갈 때 다른 사람은 내려가고, 두 객실이 스치는 짧은 순간에 마음을 전한다.
조지아의 산골 마을을 오가는 케이블카에서 두 여성은 승무원으로 일한다. 매일 같은 길을 왕복하는 단조로운 업무다. 그런데 맞은편에 보고 싶은 사람이 생기자, 다음 운행을 기다리는 마음이 달라진다. 정해진 노선과 시간표가 이 연애의 규칙이 된다.
처음에는 인사를 하고, 장난을 치고,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점차 곤돌라의 모습까지 바꾸며 서로를 놀라게 하려 한다. 좁은 객실이 작은 공연장처럼 쓰인다. 아주 잠깐 보여줄 것을 위해 다음 만남까지 궁리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구애는 제법 품이 많이 든다.
이바와 니노가 사랑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이 막연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웃기려고 애쓰는 데에는 구체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무엇을 보여주면 좋아할지, 지난번 장난에는 어떻게 답할지 생각해야 한다. 맞은편 사람이 준비한 장난을 알아봐주면, 다음에는 또 무엇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된다.
케이블카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지만 곧 떼어놓기도 한다. 더 오래 보고 싶다고 길 중간에 마음대로 머물 수는 없다. 그 짧음 덕분에 작은 반응도 커진다. 다음 객실이 가까워질 때 관객도 이번에는 뭘 준비했을지 기다리게 된다.
이 장난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상사는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한다. 낭만적인 풍경 속에도 직장 상사는 있는 셈이다. 케이블카를 움직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통제할 업무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기회라는 차이가 코미디를 만든다.
파이트 헬머는 이 영화를 대사 없이 만들었다. 인물의 생각과 감정은 몸짓과 표정으로 전하고, 음악과 효과음으로 장면을 생생하게 만든다. 바이올린과 트럼펫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대목에서는 연주하는 행동 자체가 상대에게 건네는 말이 된다. 대사가 없어도 귀 기울일 소리는 많은 영화다.
말로 미리 알려주지 않으니 보는 쪽에도 할 일이 생긴다. 두 인물이 어떤 사이가 되어가는지 얼굴과 행동에서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답을 맞혀야 하는 수수께끼는 아니다. 상대를 위한 장난을 알아채는 순간, 관객도 그 둘만 알던 농담에 끼게 된다.
헬머는 대사 없는 영화의 캐스팅에서 대본 몇 쪽을 읽게 하는 방식 대신 즉흥연기를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표정과 움직임으로 상황을 전달하는지 보는 것이다. 이바 역의 마틸드 이르만과 니노 역의 니니 소셀리아에게도 긴 고백을 잘하는 능력보다, 상대를 기다리고 만났을 때의 기쁨을 몸짓과 표정으로 전하는 연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산과 계곡은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들 만큼 눈에 들어오지만, 이 연애의 재미가 풍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일터를 벗어나야만 근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번 타는 객실을 꾸미고, 늘 지나치는 몇 초를 새로 준비한다. 내일도 똑같을 줄 알았던 출근길에 할 일이 하나 더 생긴다. 저 사람을 한 번 더 웃기는 일.
같은 길을 오가는 일상이 두 사람에게는 다음 만남을 준비하는 시간이 된다. 대사를 기다리기보다 표정과 작은 장난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를 본다는 일이 눈과 귀를 얼마나 즐겁게 쓰는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 체스 상대를 기다리는 시간 — 한 수를 두고 나면 상대가 탄 케이블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동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음 수뿐 아니라 상대를 다시 보는 순간도 기다리게 된다는 점이 이 구애의 재미다.
◆ 객실에 준비한 장난 — 두 사람은 짧게 마주칠 상대를 위해 익숙한 객실을 새롭게 꾸민다. 무엇을 준비했는지와 함께, 그 작은 공연을 보여주려고 얼마나 궁리했을지도 떠올려보자.
◆ 상대에게 들려주는 연주 — 바이올린과 트럼펫은 분위기를 만드는 배경음악에 그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연주하고 다른 사람이 반응할 때, 말 없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기분이 든다.
◆ 지나치기 직전의 표정 — 객실이 스치는 동안에는 오래 이야기할 수 없으니 상대의 짧은 반응이 중요해진다. 준비한 장난을 알아봐주는 얼굴을 보면, 관객도 그 둘만 아는 농담을 함께 즐기게 된다.
◆ 브라 이야기 (2018, 파이트 헬머) — 기관사가 기차에 걸려온 브래지어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대사 없이 물건과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헬머의 또 다른 영화다.
◆ 시티 라이트 (1931, 찰리 채플린) — 몸짓 하나에 호의와 오해, 망설임을 담는 연기를 볼 수 있다. 말보다 움직임을 따라가며 웃고 마음이 쓰이는 경험을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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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