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탁에서 한 남자가 독일인을 거세게 비난한다. 듣고 있으면 나치와는 아무 관련도 없을 사람 같다. 그런데 마르크스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독일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라고 말한다.…
저녁 식탁에서 한 남자가 독일인을 거세게 비난한다. 듣고 있으면 나치와는 아무 관련도 없을 사람 같다. 그런데 마르크스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독일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라고 말한다. 나라를 비난하는 동안에도, 유대인을 그 나라의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생각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오슨 웰스가 감독하고 출연한 이방인에서는 이 한마디 때문에 끝날 뻔한 수사가 다시 시작된다.
말을 한 사람은 소도시 하퍼에서 교사로 일하는 찰스 랭킨이다. 그는 마을 판사의 딸 메리와 결혼해 새 생활을 꾸리고 있다. 하지만 관객은 일찌감치 그의 옛 이름을 안다. 나치 전범 프란츠 킨들러. 전범을 추적하는 수사관 윌슨이 하퍼까지 찾아왔을 때, 랭킨은 이미 자기 과거를 감출 일상을 마련해 놓았다.
식탁에서 독일을 비난하는 연설도 그 위장에 도움이 된다. 윌슨은 대화를 마친 뒤 한때 랭킨을 의심에서 제외한다. 나중에 마르크스에 관한 말을 되짚고서야 조사를 계속하기로 한다. 수사관조차 강경한 비난을 듣느라, 그 말 속에 남아 있는 나치의 인종 구분을 곧바로 붙잡지 못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는 범인이 얼마나 뻔뻔한가보다, 그를 의심하던 사람이 왜 잠시 안심했는가가 흥미롭다. 랭킨은 독일을 비판하면서 사람을 한데 묶어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한다. 비난의 대상은 달라졌어도 사람을 나누고 배제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윌슨이 놓칠 뻔한 것은 바로 그 차이다.
관객에게 범인의 정체를 미리 알려준 선택도 여기서 힘을 얻는다. 누구인지 맞히는 대신, 이미 아는 사람이 자기 정체를 어떻게 숨기는지 듣게 된다. 랭킨의 말은 처음부터 두 가지로 들린다. 식탁에 앉은 이들에게는 신랑의 정치적 의견이고, 관객에게는 들키지 않으려는 사람의 대답이다.

메리에게는 이 식탁 밖의 랭킨이 있다. 함께 결혼식을 올렸고 앞으로 살림을 꾸려갈 남편이다. 로레타 영이 연기하는 메리는 수사관이 제시하는 전범의 이력과 자신이 아는 찰스를 쉽게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관객은 두 이름이 한 사람에게 속한다는 것을 알지만, 메리가 그 사실을 인정하려면 결혼한 자신의 판단까지 돌아봐야 한다.
랭킨은 바로 그 믿음을 이용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드러날 때도 메리에게는 다른 사연을 들려준다. 과거의 일을 빌미로 돈을 요구한 사람이 있었다는 식으로, 자신을 보호할 설명을 만들어낸다. 메리가 그 설명을 받아들이면 남편을 도와주는 일이 곧 거짓말을 감싸주는 일이 된다. 그녀가 처음부터 범죄를 돕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다. 믿는 사람의 말을 받아주다가, 그 말에 맞춰 자기 대답도 바꾸게 된다.
그래서 메리가 무엇을 보았는지와 무엇을 말하는지를 함께 들을 필요가 있다. 랭킨은 아내에게 묻는 말에 어떻게 대답할지까지 일러준다. 부부가 같은 편이라는 말이 한 사람의 설명만 반복하라는 요구로 바뀐다. 메리의 대답에서 남편이 들려준 사연이 되풀이될수록, 둘이 얼마나 가까운가보다 그녀가 자기 경험을 얼마나 말할 수 있는가가 걱정스러워진다.
윌슨은 메리에게 나치 수용소의 기록 영상을 보여준다. 그녀가 알던 남편과 그 영상을 연결하려는 시도다. 전범이 저지른 일의 끔찍함은 분명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과 자기 남편이 그 범죄자라고 받아들이는 일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메리의 저항은 영화의 진행을 잠깐 늦추는 장애물로 끝나지 않는다. 남편의 정체가 밝혀질 때 함께 무너질 그녀의 생활을 보여준다.

랭킨이 마을에 정착하는 데에는 시계 수리라는 취미도 한몫한다. 고장 난 시계를 고쳐 종이 다시 울리게 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윌슨에게는 시계에 관한 집착이 숨어 있는 전범을 찾을 단서다. 다른 이름으로 살면서도 버리지 못한 관심이, 새 이웃에게 호감을 얻는 바로 그 행동에서 드러난다.
이런 이중적인 의미는 거창한 장소에만 있지 않다. 윌슨은 골동품상으로 행세하며 가게 주인 포터와 체커를 둔다. 포터는 랭킨과도 체커를 두는 마을 사람이다. 같은 가게, 같은 놀이가 누군가에게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상대의 동정을 알아보는 기회가 된다. 영화 속 수사는 이런 일상의 잡담을 거쳐 나아간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랭킨을 감싸는 것은 아니다. 메리의 아버지와 동생은 윌슨의 조사에 협력하고, 집에서 일하는 사라도 메리를 돕는다. 다시 울리는 종소리를 반기는 사람 곁에는 잠을 못 자겠다며 투덜대는 사람도 있다. 이곳의 평범함은 주민들이 똑같이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다. 랭킨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일을 하며 살아가는 틈에 들어와 있다.
웰스가 연기하는 랭킨이 불안한 것은 그 생활을 완전히 자기 뜻대로 만들 수 없어서다. 수리한 시계는 사람들의 눈에 띄고, 포터와 나눈 말도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다. 숨기기 위해 고른 일상이 오히려 그를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긴다. 동네의 신뢰를 얻은 만큼 자기 흔적도 늘어나는 셈이다.

에드워드 G. 로빈슨의 윌슨은 랭킨의 말에서 모순을 찾아내는 수사관이다. 하지만 메리를 설득하는 데에는 논리만으로 부족하다. 그는 범인을 잡으려면 아내의 믿음이 흔들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범죄를 밝히려는 정당한 목적이, 남편을 의심할 준비가 되지 않은 한 사람에게는 압박으로 닿는다.
이방인을 보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랭킨이 체포되기를 바라면서도, 메리가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을 수사의 성과로만 기다릴 수는 없다. 그녀에게는 자기 말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믿었던 사람과 살고 싶었던 생활을 잃는 일이기도 하다. 범인의 이름을 아는 관객도 그 과정을 메리 대신 건너뛸 수는 없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을 설명할 때 우리는 직접 겪은 일을 근거로 삼는다. 친절했던 기억, 함께 보낸 시간, 곤란할 때 받았던 도움은 쉽게 버릴 수 없는 판단의 근거다. 이방인은 그 기억이 거짓말에 이용될 때 벌어지는 일을 가까이서 보여준다. 교사이자 남편으로 살아가는 랭킨의 일상이 추격 장면만큼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식탁에서 지나간 말을 다시 떠올리는 윌슨과, 남편에게 들은 설명을 거듭 붙잡는 메리는 서로 다르게 기억을 사용한다. 두 사람을 함께 따라가면 사실을 알아내는 긴장과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고통이 한 영화 안에 놓인다. 범인의 정체를 일찍 알려주고도 이야기가 계속 궁금해지는 스릴러다.
① 식탁에서 누구를 비난하는가
랭킨이 독일을 비난하는 내용뿐 아니라 사람들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지도 들어보자. 윌슨은 대화를 마친 뒤 뒤늦게 한마디를 되짚는다. 처음 들을 때는 의심을 덜어주던 말이 다시 생각하면 왜 수사를 계속할 이유가 되는지, 대화 한 장면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② 메리의 경험과 남편의 설명
메리가 직접 겪은 일과 랭킨에게 전해 들은 사연을 구별하며 따라가 보자. 그녀가 남편을 옹호할 때 어떤 쪽을 근거로 삼는지가 중요하다. 가까운 사이를 지키려는 대답이 어느 순간 자기 경험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지 보면, 메리의 망설임을 단순한 고집으로 넘기기 어렵다.
③ 포터의 가게에서 오가는 말
윌슨과 랭킨이 각각 포터와 체커를 두는 대목을 살펴보자. 놀이와 잡담이 이어지는 동안 마을 소식도 오간다. 포터에게는 익숙한 일상이지만 조사하는 사람과 들키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그 말의 쓸모가 다르다. 평범한 공간이 수사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④ 시계를 고치는 사람을 보는 눈
랭킨의 시계 수리가 마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윌슨은 왜 그 취미에 관심을 두는지 비교해 보자. 같은 행동이 호의와 의심을 함께 낳는다. 시계탑이 눈에 띌 때마다 비밀 장소를 찾기보다, 모두에게 보이는 곳에서 랭킨이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디투어 (1945, 에드가 울머)
길에서 만난 사람의 신분을 가져다 쓰게 된 피아니스트가 자기 사정을 들려준다. 다른 이름을 쓰면 곤경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이름을 먼저 알고 있던 사람을 만나면서 문제가 생긴다. 신분을 바꾼 뒤에도 남의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어 볼 만하다.
창밖의 여자 (1944, 프리츠 랑)
로빈슨이 이번에는 살인 사건을 숨기려는 교수를 연기한다. 수사 과정을 아는 지식이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더 잘 알아보게 만든다. 이방인의 윌슨과 비교하면, 같은 배우가 상대의 실수를 찾는 쪽과 자기 실수를 들킬까 두려워하는 쪽을 오간다.
스칼렛 스트리트 (1945, 프리츠 랑)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는 출납원은 자신을 화가로 알아보는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상대가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믿고 싶어 하면서 그 관계의 실상을 놓친다. 이방인에서 남편에 관한 설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메리와 나란히 보면, 믿음에 섞여 있는 바람을 비교할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