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지 여섯 달이 지났는데도, 주인공의 목소리가 없었다. 〈밤쉘〉을 준비하던 알렉산드라 딘이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것은 헤디 라마르의 오래된 인터뷰 녹음이었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지 여섯 달이 지났는데도, 주인공의 목소리가 없었다. 〈밤쉘〉을 준비하던 알렉산드라 딘이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것은 헤디 라마르의 오래된 인터뷰 녹음이었다. 배우이자 발명가였던 라마르를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대신 테이프 속 라마르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딘은 그 목소리를 기존 원고의 빈칸에 넣는 대신, 만들어가던 영화의 구성을 바꿨다.
발견한 자료가 계획에 꼭 맞아떨어질 때만 반가운 것은 아니다. 공들여 만든 구성을 고쳐야 할 수도 있다. 딘은 그 수고를 받아들였다. 라마르가 무엇을 했는지 설명할 자료에 더해, 그가 자기 삶을 어떤 순서로 이야기하는지 들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나중에 패리스 힐튼을 찍을 때에도 이미 아는 유명인을 소개하는 일과 실제로 그 사람의 말을 듣는 일 사이에는 예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딘은 다큐멘터리 장편을 만들기 전부터 발명가들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여성 발명가들은 사람들이 자기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발명가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모습이 있었고, 거기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은 자기 능력을 설명하는 데서부터 애를 먹었다. 딘에게 라마르는 오래전 할리우드에서만 찾은 인물이 아니었다. 취재하며 들었던 곤란함을 다른 시대의 삶에서 다시 만난 경우였다.
라마르와 작곡가 조지 앤타일은 무선 조종 신호를 방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통신 방식을 함께 고안했다. 주파수를 바꿔가며 신호를 보내고 받는 아이디어였다. 〈밤쉘〉은 이 일을 라마르의 배우 경력과 함께 다룬다. 발명가라는 새로운 직함을 붙였다고 배우로 살아온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심은 그가 두 가지 일을 했다는 놀라움에서, 어떤 일은 널리 기억되고 어떤 일은 설명조차 필요해졌는가로 옮겨간다.
딘은 자료가 충분한지 의심했고, 발명에 관한 이야기를 남들의 설명에 기대어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흥미로운 인물을 발견했다고 바로 영화의 중심이 서지는 않았다. 초기 구성에서 중요했던 젊은 시절의 편지만으로는 긴 생애를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딘과 제작진은 라마르와 이야기했을 법한 사람들을 찾아 연락했다. 그렇게 1990년에 진행된 인터뷰 녹음을 발견했다. 자료를 갖고 있던 사람도 여러 번 이사한 뒤였고, 테이프들은 한곳에 정리돼 있지 않았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배우의 생애를 다시 만드는 데 필요했던 것은 더 유명한 일화보다, 흩어진 녹음이 아직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 목소리에 맞춰 구성을 고치면서 라마르의 회고가 영화를 이끄는 비중이 커졌다. 다른 사람이 정리한 삶을 듣다가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관심의 방향도 달라진다. 어떤 일은 길게 말하고 어떤 일은 짧게 지나갈 수 있다. 관객은 업적뿐 아니라 그 일을 겪은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밤쉘〉에는 라마르의 육성과 함께 다이앤 크루거가 읽는 편지도 들어간다. 두 목소리는 서로 다른 기록을 전한다. 생전에 남긴 녹음과 지금의 배우가 읽는 글을 나란히 들으면, 한 사람을 만나는 데 필요한 자료가 한 종류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라마르의 목소리를 찾은 뒤에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모두 걷어낼 수는 없었다.
편집 과정에서는 공들여 모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막는 대목을 덜어내야 했다. 딘은 편집자와 함께 그 선택을 해나갔다고 설명했다.
〈This Is Paris〉는 살아 있는 사람을 따라가는 작업이었다. 패리스 힐튼은 카메라가 낯선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만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딘은 촬영 초반,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모습을 거듭 찍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전에 보지 못했던 이야기가 저절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딘은 큰 조명과 여러 촬영 인력을 동원하는 대신, 자신과 작은 카메라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간을 늘리자고 했다. 때에 따라서는 함께 일해온 음향 담당자가 동행했다. 잘 갖춘 인터뷰 자리를 늘리는 것보다 일상을 함께 보낼 조건을 바꾼 것이다. 감독은 질문을 마치고 떠나는 대신 그 자리에 머무르며, 힐튼이 여러 상황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려 했다.
힐튼은 영화에서 청소년기에 시설에서 겪었다고 말하는 학대와 그 뒤에 남은 고통을 이야기한다. 딘이 이 사연을 알게 된 때와 관객이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때는 같지 않다. 감독은 자신이 상대를 알아가던 경험을 관객도 하기를 바랐고, 편집으로 정보를 드러내는 순서를 정했다. 오래 함께 지낸 시간은 그대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로 다시 만들어졌다.
주인공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완성본까지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힐튼은 편집의 통제권을 딘에게 맡겼다. 〈밤쉘〉에서 주인공의 목소리를 따라 구성을 바꿨던 감독은 여기서는 자신이 들은 내용을 관객에게 언제 전할지 선택했다.
〈밤쉘〉에 끌리는 첫 이유는 유명한 배우에게 발명가의 삶도 있었다는 뜻밖의 사실일 수 있다. 조금 더 오래 남는 것은 목소리다. 사진과 영화 속 모습으로만 알던 라마르가 회고를 들려줄 때, 새로 배운 직함만으로도 그를 다 설명할 수 없다는 느낌이 생긴다. 딘은 이 변화를 만드는 데 녹음과 편지, 주변의 증언을 함께 쓴다.
〈This Is Paris〉까지 이어 보면 자료를 찾아내는 작업과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을 촬영하는 작업의 차이도 보인다. 한쪽에서는 오래된 녹음 때문에 구성을 다시 짜고, 다른 쪽에서는 촬영에 들어오는 인원을 줄인다. 상대에 대해 충분히 알았다고 여기기 전에 영화 만드는 방식부터 고쳐야 했던 순간들이다. 딘의 경력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그런 수정의 흔적이다.
◆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누구인가 — 〈밤쉘〉을 볼 때 라마르가 직접 남긴 녹음과 편지를 읽는 크루거의 목소리를 구분해 들어보자.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도 녹음 당시의 말과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글은 느낌이 다르다. 화면의 사진이나 영상이 어느 시절의 모습인지 함께 살피면, 영화가 서로 다른 때의 기록을 어떻게 이어놓았는지 들린다.
◆ 새로운 이력 뒤에 남는 사람 — 라마르가 발명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안 뒤, 영화에서 무엇이 더 궁금해지는지 돌아보자. 특허의 내용일 수도 있고 그 일을 하던 생활이나 관계일 수도 있다. 놀라운 사실 하나로 인물 소개가 끝나지 않는 대목이 어디인지 찾으면, 다큐멘터리가 업적을 알리는 데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쪽으로 어떻게 나아가는지 볼 수 있다.
◆ 촬영을 의식하는 정도 — 〈This Is Paris〉에서는 힐튼이 대중 앞에 있을 때와 주변 사람들과 지낼 때의 차이를 살펴볼 만하다. 어느 하나만 진짜 모습이라고 미리 정할 필요는 없다. 누구와 함께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달라지면서 말과 반응도 바뀐다. 딘이 작은 촬영팀으로 시간을 보낸 선택을 그런 장면들과 연결해볼 수 있다.
◆ 알게 되는 순서 — 다큐멘터리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앞서 본 장면의 인상이 바뀌기도 한다. 〈This Is Paris〉에서 그런 경험이 생기는 대목을 기억해보자. 딘이 취재하며 알게 된 순서와 관객에게 전하는 순서는 다르다. 무엇을 알게 됐는지와 함께 언제 알게 됐는지를 생각하면, 기록을 엮는 감독의 선택이 더 잘 보인다.
◆ 〈밤쉘〉 — 헤디 라마르의 배우 생활과 발명에 관한 관심을 함께 다루는 다큐멘터리. 당사자의 녹음이 영화의 구성을 바꿨다는 사실을 알고 들으면, 새로운 정보를 얻는 순간과 한 사람에게 익숙해지는 순간의 차이에 주목할 수 있다.
◆ 〈This Is Paris〉 — 패리스 힐튼의 일상과 그가 말하는 과거의 경험을 따라간다. 오래된 기록을 찾는 〈밤쉘〉과 달리 촬영하는 동안 감독과 당사자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가까워지기 위한 촬영 방식과 완성본을 구성하는 선택을 함께 살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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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